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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한 규칙들: 시험 - 약 1:12-16

by Peartree 2012. 12. 26.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한 규칙들: 시험

약 1:12-16

 

차 한대가 사고를 당해서 그만, 그 안에 타고 있던 세 남자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천국문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을 베드로가 가만히 보니까, 너무도 불쌍한 거예요. 한 사람은 세상에서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고, 또 한 사람은 너무나 무시를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걱정과 근심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너무 불쌍해 보이니까, 베드로가 다가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살려 줄테니, 소원 한가지씩 만 말해 보라' 고 합니다. 그러자,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은, "나는 평생 지지리도 못살았으니, 이번엔, 부자로 펑펑 쓰게 해 주십시요"라고 소원을 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알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은, '나는 평생 무시 당하고 살았습니다. 이번엔, 권세를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게 해 주십시요"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번에도 '알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번째 사람은, '저는 돈도 싫고, 권세도 싫습니다. 걱정 근심이라면 지긋지긋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곳에서, 예쁜 아내와 토끼 같은 자녀들을 낳고, 무병 장수 하면서, 평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엔 베드로가 한참을 고민하더니,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곳이 있으면, 나좀 알려주게나, 있다면, 내가 가겠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의 개념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평안하게 죽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의 개념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험' 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영어 성경은, 이 '시험' 이란 단어를 크게 세가지 의미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test' 입니다. 이 'test' 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test' 를 잘 치루면, 좋은 점수를 받듯이, 잘 통과하면, 축복의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번째, '시험' 이란 단어는 'temptation' 으로 표현합니다. 한국어로는 '유혹' 이라는 단어가 적절합니다. 이 'temptation' 은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성도를 멸망시키려고 주는 시험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이 'temptation' 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예수님을 멸망시키려고 시도한 거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면, 멸망합니다. 가룟유다 처럼 말이죠.

세번째는, 오늘 본문 12절에 나오는, 'trial' 입니다. 한국어로는 '시련' 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test'도 잘 치루면, 상이 있고, 'temptation' 도 이겨내면, 승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trial' 은,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참고 견디어 내면, '복이 있을 것이며,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면류관을 받아쓰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있을 동안에, 반드시 이 '시험' 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시험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시험가운데 살아갑니다. 만약에, 우리 성도들에게, 시험이 없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믿음 생활 더 잘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4절을 보시면, 시험을 통하여,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시험을 통하여,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업그레이드 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시험을 치루고, 대학교에 들어가듯이, 우리 그리스도인 에게도 이 시련과 시험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교회 나오세요!' 라고 하면,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있어서요, 그런 거 다 해결하고, 좀 평안할 때, 그때 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건강할 때 나가겠습니다.'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시련과 시험만 없다면, 당장이라도, 교회 나가겠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항상, 시험과 시련의 연속입니다.

 

'정말, 나는 시험도 없고, 걱정도 없고, 지금이 최고다.' 라고 하는 분이 계시면, 시험이 없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건 더 큰 문제입니다.

성경에 다윗 왕을 보세요.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나라에 전쟁에 그칠 날이 없고, 하루도 편안할 없이 없을 때는, 쫓겨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굴속에 숨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썼습니다. 그 와중에 말이죠. 그런데 전쟁이 그치고, 목숨을 노리던 사울도 죽었어요. 시험거리가 다 사라졌습니다. 평안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 이웃집 여자와 간통죄를 저지르고 말죠. 다윗에게는 걱정 근심이 없는 것이 시험이었습니다. 시험이 없는 것이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관문입니다. 12절을 보세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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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세상 사람들의 기준은요, 시험과 걱정이 없이 사는 것이 최고죠, 그러나 우리 주님은, 걱정과 시험이 오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왜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까? 시험을 견디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축복이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날 나방 한마리가 번데기껍질을 찢고 세상으로 막 나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게 번데기껍질을 뚫고 나오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나오기 쉽게 껍질을 찢어주었다고 해요. 그랬더니, 나비가, 쉽게 나오기는 커녕,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찮은 나비도, 시련이 없으면, 약해져서, 결국은 죽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값비싼 구두는 가장 많이 두들겨 맞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값비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

하여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험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성경은 구체적으로 '이러 이러한 것이 시험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시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절을 보세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험에는 여러 종류의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다릅니다. 교회마다 다릅니다. 시험의 종류는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없는 게 시험입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입을 것 입지 못하면, 그것이 시험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돈 많은 것이 시험입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어디 쓸 데가 없으니까, 세상 쾌락을 위해서 펑펑 쓰고, 카지노에 가서, 슬롯머신 속으로 계속해서 돈을 밀어 넣습니다. 이런 분은, 돈 많은 것이 시험거리입니다.

 

어떤 분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 시험입니다. 주일 예배 드리고 싶은데, 몸이 불편해서 교회에 가지 못하면, 얼마나 시험이 들겠습니까? 저의 할머니가 제가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이 있는데, 저의 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리어커에 태우시고는 교회에 가신 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의 아버지께서도 참 많이도 아프셨어요. 그래서, 저도 저의 아버지를 경운기에 태우고, 교회에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경운기에서 교회까지 또 업고 들어가 자리에 앉혀 놓으면, 예배를 드립니다. 또 예배 마치면, 또 업어서, 경운기로 태워 오고, 그러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럴 때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견디어 내면,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지만, '예수 믿었는데, 건강은 커녕, 왜 이렇게 몸이 약한지, 모르겠다.' 하고 예수님을 떠나면, 시험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분에게는 너무 건강한 것이 시험일 수 있습니다. 너무 건강하다 보니까, 자기 자신을 너무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필요 없게 되고, 믿음생활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너무 건강해도, 역시 시험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시험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이 시험들을 이겨 낼 수 있습니까?

 

14절을 보시면,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 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사람이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이유는 자기 욕심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은 우리 내부의 적이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내 안에 있는 자기 욕심 때문 이예요. 마귀가 유혹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목사 때문에 시험들은 것도 아니고, 옆에 앉아 있는 교우 때문도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핑계를 대며, '누구 누구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고요. '나 때문' 입니다.

 

열심히 믿음생활하고, 교회에서 충성하다가,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성도들을 보면, '나 때문' 이라고 말하는 성도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자기 욕심'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이 어느 날 한 청년을 찾아와 열 개의 병을 보이면서 "이중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의 병에만 독약이 들어 있는데, 열 개 중에 하나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지만 생명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사탄은 청년의 눈앞에 산더미 같은 돈을 쌓아 놓고는 유혹을 했습니다. "그래, 딱 한 번만 하는 것이다. 이번 한 번이면 평생을 고생 안 해도 될 테니까!"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한 병을 골라 마셨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설마 이것이 독약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다시는 이 짓을 말아야지." 중얼대던 청년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면서, 다음 번에 언제라도 아홉 개 중에 하나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그 돈으로 오랜 방탕 생활을 보냈습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사탄을 불러내기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고민했으나 나중에는 어느 병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백발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딱 두 병이 남았습니다.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돈이냐, 죽음이냐!" 노인은 마침내 남은 두 중에 한 잔을 마셨습니다. 노인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노인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탄은 남은 마지막 한 잔을 훅하고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독약이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라는 나의 독약에 이미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그리고 돈만 아는 바보로 만들었지. 그리고는 사단은 유유히 웃으며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 욕심 때문입니까?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시험들을 이겨 낼 수 있습니까?

 

16절에 보시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이것을 외부의 적이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외부의 적은 사단을 말합니다. 이 사단은 속이는 영이예요. 거짓말 하는 영입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가장하고, 우리는 속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이후로, 6000년이 넘게 속이는 일만 해왔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속이는 전문가입니다.

 

성도들이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 믿음으로 이겨내려고 하면, 뭐 그렇게 힘들게 신앙생활 할 필요가 있냐고 하며, 쉽고 편한 길로 가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또 이렇게 속입니다. '그것 봐라! 예수를 열심히 믿는 데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 일이 잘 풀리지도 않지, 걱정거리는 여전하지, 너 무엇하러 그렇게 열심히 다니냐?' 이렇게 속입니다. 보통 여기에서 많이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 속아 넘어 갑니다.

 

여러분! 사단이 우리를 속일 때, 전형적으로 쓰는 '네 마디' 가 있습니다. 잘 들으시고, 혹시 내 안에 두 마음이 싸우고 있을 때,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면, '아하! 내가 지금 사탄에게 속고 있구나!' 알아차리시고, 시험을 이겨내셔야 합니다.

  1. 첫째는, '이 정도 쯤이냐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여러분, 큰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잡힐 때는, 큰 먹이 물다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손톱만한 지렁이 물다가 잡히는 거예요. '요 정도 쯤이야!' 하다가요.
  2. 두 번째는, '딱 한번인데 뭘' 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3. 세번째는, '너는 아직 젊어,' 라고 하며 속입니다. 그 말을 굳게 믿고, 젊은 시절 허송세월 보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4. 네번째는,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뭘그래' 남들 다 편하게 사는데, 너 혼자 그렇게 특별하게 살려고 하냐, 믿어도 적당하게 믿고, 교회를 다녀도, 적당하게 다니는 거야! 이 말에도,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이 속고 있습니까?

 

여러분, 사단에게 속아 시험에서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 때문에, 시험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왜 기뻐해야 합니까?

이 시험이, 축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전에, 강해설교의 권위자이신, 워렌 워어스비 목사님의 비서가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너무 안타까워서, "내가 당신을 위하여 어서 빨리 이 시련을 벗어나서 회복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만 그 비서가 그러더랍니다. "목사님, 그렇게 기도하지 말아주세요. 오히려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을 내가 온전히 이룰 수 있는 사람 되게 하기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더랍니다.

여러분, 시련과 시험 중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련과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고, 잘 견디어 내시어,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 받아쓰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