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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도미네) - 요한복음 13:31-38

by Peartree 2012. 12. 26.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도미네)

요한복음 13:31-38

 

지난 시간에는 '유다의 배신' 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 을 사단이 유다의 생각속에 심어 주었는데, 그만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받아 들임으로, 주님을 팔 결심을 하고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 한 조각을 받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밤' 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밤' 이란 앞으로 유다가, 겪어야 할 앞날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지옥은, 캄캄한 곳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한 줄기 빛조차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을 태우는 유황불은 있어도, 빛은 없습니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옥의 있는 유황불의 색깔이 검붉은 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통의 불꽃은 있어도, 그 불꽃에서 빛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천국은, 빛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어둠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비추는 빛이 온 천국을 환화게 비춥니다.

그래서 결국, 유다가 간 길은, 빛이 전혀 없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성경은 '밤' 이라고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유다가 이렇게 떡 조각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남은 11명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 새 계명은 어떤 계명입니까? 34절을 보시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죠.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불과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밖으로 나간, 이 유다가, 이제 몇 시간 있다가, 병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올 거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할 말이 참 많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많은 말씀 중에, 첫 번째가,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베드로가 가만히 듣다가 보니까,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예요.

33절을 보시면,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이런 말도 하시고,

35절에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는 말씀도 하시고, 분위기가 이상하죠. 영영 다시는 보지 않을 것 처럼,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그러니까, 36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묻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 도대체 어디로 가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라는 말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베드로는 그냥 궁금해서 물은 것인데, 이 한 마디가, 굉장히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헬라어로, 그러니까, 지금의 그리이스 말로, "쿼바디스 도미네" ……………영화로 제작이 되어 더 유명해진 성경 구절입니다.

'쿼바디스' 라는 영화를 다들 보셨을 겁니다. 1951년에 제작되었습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한창일 때, 미국은, 이런 명작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베드로가 '쿼바디스 도미네' 하는 장면과,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쿼바디스 도미네' 라고 한 말은,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베드로가 '쿼바디스 도니네' 할 때는, 베드로가 초대교회 당시에, 폭군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얼마나 핍박했던지, 기독교인이라면, 닥치는대로 잡아다가, 경기장에 몰아 넣고, 굶주린 사자를 풀어, 물어 뜯게 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도, 사람인지라, 로마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도망쳐 가는데, 베드로의 눈 앞에 십자가를 무겁게 지고 가는 주님의 모습의 나타납니다. 이 때 베드로가 깜짝 놀라서 주님께 소릴 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영화에서는 베드로가 핍박을 피해 도망치다가, 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화이야기를 소개하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지기 싫어하는 그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지러 로마로 간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아닙니다. 주님을 두번 십자가 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다시 로마로 가겠습니다.' 하고 하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당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을 맺습니다.

 

물론 영화와 오늘 본문의 말씀과는 거리가 멀지만, 37절에, 베드로가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라고 고백한 대목은 같은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니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8절에,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네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는커녕, 나를 모른 다고 세번씩 말하면서, 목숨을 구걸할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시면, 주님의 말씀대로, 베드로가 주님을 세번 부인하죠.

 

그러면 도대체 주님께서 왜, 베드로가 부인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까?

 

앞에서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시죠. 여기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34절을 보세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앞으로 내가, 죽었다가, 부활한 후에, 하늘로 올라 갈 것인데, 내가 없더라도, 너희들끼리, 서로 우애주며,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 용서하고, 서도 도우며,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한다' 고 고백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너희들끼리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가식' 이고, '가짜'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정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진짜 나의 제자라고 말씀합니다.

35절에 보시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말을 바꿔 말하면, 교회 안에서, 또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험담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라고 할꺼라는 거예요.

반대로, 서로 사랑하면, '분명 저 사람들은 그리스인들 맞어!' 라고 할거라는 거지요.

 

그러면,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은 무엇으로 구분합니까?

행위로 구분합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요한1서 3:10절에,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또 18절에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그래서요. 진짜 사랑은, 행함으로 실천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화 '쿼바디스' 에서도,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하지 않고,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다시 로마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랑은 행위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로만 하면서, 꿈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사랑을 실천하면, 꼭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예방의학 권위자인 피터 한센이라고 하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건강 하려면 몇 가지 조심할 것이 있다. 첫째는 적당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둘째는 적당하게 운동을 해야 하고, 세 번째는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 "담배, 술, 화내는 것, 게으름 피우는 것, 이런 나쁜 습관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러면 건강하다." 고 했습니다. 거의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얘기인 것 같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이것은 50%고 나머지 50%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이라 했습니다.

그래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랑이 식은 교회는 성장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말씀대로, 사랑이 없으면, 주님의 제자들이 아니죠. 그러니까, 교회 안에, 주님의 제자들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초대교회시대에, 고린도 교회가, 그렇게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고, 성도도 많았지만, 사랑이 없으니까, 바울이, 뭐라고 그럽니까, '너희들 그렇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너희들 교회가 그렇게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로타리 클럽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 모두가 주님의 사랑 받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베드로는, 37절에, 이렇게 호언 장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님, 저를 얕보지 마십시요. 주님 가시는 길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실패 했습니다.

왜 실패 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나중에,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행위를 동반해야, 그것이 진짜 사랑인줄 깨닫게 되고, 그때 기꺼이,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 귀한 성도님들도, 사랑의 십자가 잘 짊어 지시고, 좁은 길로 잘 걸어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