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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뒤돌아 서지 맙시다 - 왕하 5:1-14

by Peartree 2012. 12. 26.

뒤돌아 서지 맙시다

왕하 5:1-14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본문의 말씀은, 많이 들어본 말씀입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문등병이 들었는데, 엘리사를 찾아가 고침 받는 장면입니다.

 

이 문등병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입니다. 게다가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 사람들이 아주 싫어 하는 병중에 하나입니다. 암이라는 병은 요즘 의술로 고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되지 않죠. 그래서 암환자를 만나면, 손도 만지고, 안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나병이라고 하는 문등병은, 한번 걸렸다 하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것입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조차 버림 받는 병이 문등병입니다. 왜냐하면, 전염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문등병이 걸리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사람' 이라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가 거리에 나가려면 계속해서, '나는 불결한 사람입니다.' 라고 외치면서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근처에 가지 않고, 피할 수 있게 말이죠.

 

그런데 오늘, 사회적으로 부러울 것이 없고, 왕에게도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나아만 장군이, 문등병에 걸린 것입니다. 아마도 성경 문맥을 보면, 이 나아만 장군은, 문등병에 걸린지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장군을 하고 있고, 1절을 보시면, 큰 용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직 손이 썩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창이나 칼을 잡고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시간이 지나면, 이 나병은, 손가락부터 썩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손가락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얼굴이 녹아 내리는 것 같이, 문들어 집니다. 그러다가 결국에 온 몸이 썩어들어 가면서 죽는 병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아만 장군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문제점이었습니다. 이 병만 치료하면, 부러울 것이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러는 중에, 포로로 잡혀온 하녀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3절에 보시면,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등병을 고치리이다."

 

포로로 잡혀온 하녀의 이 한마디를 우리는 '복음' 이라고 말합니다. '기쁜소식' 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소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이 어떻게 합니까? 곧바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오늘날, 이 나아만 장군이 들었던 '복음' 이 얼마나 많이 전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겉은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모두가 나아만 장군 처럼, 영혼이 병들어 썩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복음' 을 듣고, 나아만 장군 처럼, 곧바로, 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복음' 을 듣고, 찾아가면, 고침을 받는 것은, 확실한데 말이죠.

마찬가지로, 지금도 '복음' 듣고, 주께로 나오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9절을 보시면, '엘리사의 집 문에 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시험이 있습니다. 어떤 시험이었냐면, 한 나라의 장군이 왔는데, 엘리사가 반갑게 맞아 주고, 환자니까, 집에도 들여서, 쉬게도 해 주면서, 대화도 해야 하는데, 엘리사가 나아만을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나아만이 화가 많이 났습니다. '감히 장군이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그래서 병이건 뭐건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종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더 큰일도 하라면, 해야 되는 판인데,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몸을 담그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습니까?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 말을 듣고, 몸을 일곱번 잠그니 어린아이 살 같이 깨끗하여 졌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지금, 믿지 않는 불신자가, '복음' 을 듣고, 교회를 찾아 왔는데, 교회에 오니까, 목사가 쳐다 보지도 않고, 성도들도 반겨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당장에 교회를 욕하고 돌아가, 다시는 안 나올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 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잘 넘겨야 합니다. 주일도 말씀을 드렸지만, 무엇이 그 영혼을 사랑하는 행동인지, 잘 구분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을 가장 사랑하는 행동은, 나와서 반갑게 맞아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게 하고, 병을 고침 받게 하는 것' 이 가장 크게 사랑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오늘 나아만은 어쨓거나 뒤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죽음에서, 건짐 받으려면, 뒤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교회에 나왔다, 한 두가지 시험 때문에, 돌아 선다면, 그 보다 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뒤 돌아보지 말고, 주님 가신 길, 잘 따라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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