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고전 1:1~8
여러분! 병원에 다 한 두번은 가보셨을 거예요. 병원에 놀러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죠. 병원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수술하고, 치료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면, 환자들의 표정이 그렇게 썩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정밀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면, 더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의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숨기지 않습니다. 환자가 암에 걸렸는데, 암이라고 말하면, 환자가 기뻐하지 않을까 봐, '별것 아닙니다. 집에 가셔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재밌게 인생을 사십시요.' 라고 말하는 의사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당장에 수술 날짜를 잡자고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의사는 직무유기입니다. Sue 를 당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사람의 영혼을, 진단하고, 수술하고, 치료하는 곳입니다. 목사는 병원의 의사와 같아서, 맡겨진 양들의 영혼을 진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치료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도들이 기분 나뻐 할까봐, 성도의 상태를 말하지도 못하고, 조그만 교회 같은 경우는,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옮길 까봐, 말을 못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직무유기 입니다. 그 영혼을 위해서는 반드시 말을 해 주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병원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진단하고, 치료하여, 살리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가족 같이 평안한 교회' 를 추구합니다. 어느 교회 슬로건은 '고향 같은 교회' 라고 슬로건을 내건 교회도 있습니다. 물론, 새신자가, 처음에 발을 디딜 때는, 어색하니까, 가족 같이, 고향에 온 것 같이 평안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렇게 평안한 상태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죄를 지적하지 않으면, 평안하겠죠. 교회에 나오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마음은 평안하겠죠. 그런데 이 평안에 계속되면, 암이 말기가 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 분은 '우리 교회 목사님 설교는 너무 편안해, 그냥 듣기에 너무 좋아!' 이렇게 말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어떻게 들리십니까? 좀전에 말씀 드렸던, "별 것 아니니까, 집에가셔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재밌게 인생을 사십시요" 이렇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분은, '우리 교회 목사님 설교는 매일 같이 회개 하라고 해, 회개 할 것도 없는데, 자꾸 회개 하라고 해, 그래서 듣기 싫다' 고 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어떻게 들리십니까? 의사가 '빨리 수술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라는 소리로 들리지 않습니까?
2001년 미국에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 뉴욕의 맨하탄 있는 타임스퀘어교회의 Carter Colon 목사님이 울면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는 주일학교 소풍이 아닙니다. 좋은 시간을 이어가자고 초대하는 곳도 아닙니다. 이곳은 영혼들을 위한 전쟁터 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교회로부터 도망가십시요. 왜냐하면, 당신의 영혼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번영에만 집중하는 복음들로부터 도망치십시요.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이 영광 받는 교회들로부터 도망치십시요. 영혼구원에 침묵하는 교회에서 도망치십시요. 회개를 외치지 않는 교회로부터 도망치십시요. 당신의 죄가 편하게 느껴지는 교회로부터 도망치십시요. 당신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당신이 살면서 지었던 죄가 있는데, 그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악마의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라고 설교했습니다.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동영상을 올려 놓았습니다.
이 설교는 대단한 설교가 아닙니다. 그냥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말한 것 뿐입니다. 이 시대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단하게 생각되어 지는 것입니다.
병원처럼, 죄를 드러나게 해서, 말씀으로 치료하는 교회, 죄가 편하게 느껴지지 않고, 죄에 대해서 부담감을 주는 교회, 그런 교회였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라옵기는, 우리 꿈의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교회는 그런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당장 뛰쳐나오고 싶었던 교회, 죄인들이 찾아 와서는, 어, 여기가 교회야, 세상이야, 구분을 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과 아주 잘 어울렸던 교회. 초대교회들 중에 가장 소문이 안 좋았던 교회, 교회 내부적으로도, 온갖 고질적인 문제들로, 바람잘 날 없던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사람의 생각 같아서는, 그냥 close 해야 맞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 5:1절을 보시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음행이 어느 정도였냐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로, '교회가 세상보다 못하다' 라고 하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런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이정도 되었으면,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아닌 것이예요.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본문 2절을 보시면, 성경은, 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교회같지 않은 교회인데,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교회" 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비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터넷에는 기독교를 '기독교' 라고 부르지 않고, 창피스러운 말이지만, '개독교' 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참 많아 졌습니다. 정말, 뭐 하나, 자신 있게 내 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SBS 방송에서, 대형교회를 고발하는 방송을 내 보냈는데, 그 방송을 보면서, 세상의 방송이, '마지막 시대다' 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가 침묵하고 있으니까, 대신세상이 우리를 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의 깨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개혁이 일어났었습니다. 1500년대 종교개혁이 그랬고, 1800년대, 미국의 대각성 운동이 그랬습니다. 교회 안에 깨어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안은 쿨쿨 잠들어 있고,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깨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시대의 교회가 고린도 교회 같지 않은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우리 주님은 여전히 그런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교회" 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흠 많고, 문제 투성이인 고린도 교회를 우리 주님이, 왜 포기하지 않으시는지 그 이유를 본문에서 두 가지 만 찾아보고, 우리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주님께서 고린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고린도교회가 있는, 고린도는 각 민족과 나라들이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으로 뒤섞인 자유 분방한 도시였습니다. 지금의 캘리포니아의 LA 나, 뉴욕 같은 도시였습니다. 해안 도시라 경치도 좋고,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그 돈을 어디에다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문란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많으면, 타락하기 쉬운거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고린도인 같다' 라고 하면, 부도덕한 삶을 산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여자 같다' 하면, 매춘부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이곳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교회" 가 존재하고 있던 거예요. 이것이 우리 주님이'고린도 교회' 를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입니다. 사회가 이렇게 썩어 가는데, 건강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그 교회마저 없다면, 사단 마귀의 소굴이 될것이 뻔하기 때문에 주님은 놓치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문제 있는 교회였지만, 다 문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봐줄 만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였냐면, 그 안에 '거룩한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주님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통하여, 타락한 도시에 행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 할 수 있다고, 주님은 기대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이렇게 깨어있는, 거룩한 성도들 때문에, 그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라고 말씀하신 다는 것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교회처럼 보이지만, 회개를 외치고 있으면, 그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몇 명되지 않지만, 죄인들이 모여서 변화가 일어나면, 그것이 교회 존재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고린도 같은 세상입니까? 하지만, 거룩한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한 사람 만 있어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래, 너희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다' 라고 불러 주신다니까요.
그러므로, 여러분 ! 세상의 잣대로, 교회를 평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건물과 성도수로 교회를 평가하지만, 우리 주님은, 깨어있는 거룩한 성도가 몇 명 있는가를 보십니다. 앉으나 서나, 주님 생각 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십니다. 들어가고 나가면서도, 늘 거룩하려고 애쓰는지, 죄에서 돌이키고 애쓰는지, 구원의 커트라인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항상 생각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이 병이 걸려서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슬픔에 잠긴 식구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가게 주인은 천천히 식구들을 돌아보면서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여보, 당신 어디 있소?" "예, 저 여기 있어요." "딸애는 어디 있느냐?" "예, 아빠, 여기 있어요." "아들아! 아들은 어디 있니?" "아빠의 사랑하는 아들, 여기 있어요."그러자 가게 주인은 마지막 유언이나 다름없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가게는 누가 보고 있단 말이냐?"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죽어가면서, 가게를 걱정하는 사람처럼, 교회를 걱정하고, 내 영혼을 걱정하는 사람,
이런 성도가 있는 한, 아무리 연약한 교회라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너희도 하나님의
교회다.' 라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고린도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였기에,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고린도 교회는 교회라고 부르기 조차, 창피할 정도로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전후서가 다 그런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을 잘 하시려면, 고린도 전후서를 읽으시면,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들이 있었냐면, 사도적 권위에 대한 도전, (바울이 목사의 자격이 있냐 없냐)따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어서 냉냉했어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기도 하고, 교인들 사이의 파벌싸움, 빈부 차별도 있었고, 음행의 죄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로 눈쌀이 찌푸려지게 되는 문제들로 가득찬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절에 보시면, 사도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는, 고린도 교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린도 교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세상에 이런 교회가 있나? 이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나?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시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6:18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붙잡고 계시지만, 끊임없이 사단 마귀가 교회를 공격해 올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주님이 오셔야만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불완전하고,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정상입니다. 그 문제가, 좀 심한 교회가 있고, 심하지 않은 교회가 있는, 그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는 그 문제가 좀 심각한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감사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감사의 제목이 뭐였나면,
7절에 보시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렸다' 는 것입니다. 즉,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 성도들 때문에, 예수님은 이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아직까지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약점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무던이도 힘썼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사도바울이 지켜 보니까, 너무 감사한거예요. 성도가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목회자는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주의 날을 사모하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시대의 분위기가요. 주의 날에 대해서 설교를 하면, 나와는 상관 없는 말씀으로, 내가 사는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 무시하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무시해야 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밤중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분은, 아예,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냐,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다니, 손오공도 아니고,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냐?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만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닙니다. 예언입니다. 100%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예언이예요. 이 예언을 한 두번 말한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300번 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7장에 나오는 노아홍수 사건은, 주님의 재림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120년동안, 방주를 짖는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설마, 산 꼭대기에 있는 방주를 띄울 정도로,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겠지? 그런데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예수님은 감란산 에서 500명의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붕 떠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도, 이와 똑 같은 방식으로 오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이, 기독교의 중심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랑을 기다리지 않는, 신부를 보신적 있으십니까? 혹 있다면, 그것은 신부가 아닐 것입니다.
평생을 경건한 삶을 산, 호나티우스 보나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해가 뜨면, 창문을 열며, '주여 ! 이 아침에 오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밤이면 창문을 닫으며, '주여 ! 이 밤에 오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항상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혹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혹 그것이, 세상이 너무 재미있어서 인가요? 아니면 아직 주님 만날 준비가 되지 안아서 인가요? 저 역시 준비는 안되었습니다. 준비가 된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혹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거룩한 삶을 시작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도, 그렇게 준비는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거룩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그 문제 많은 교회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좋은 날을 기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상교회는 그 어떤 교회라도 크든지 작든지 약점들이 있고 문제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머나교회 같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교회가 있는가 하면, 오늘 고린도교회 같이 거의 교회다운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든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세상의 모든 교회들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처럼 부족한 교회도, 주님은, 어쩌면, 우리 중에 몇 몇 사람 때문에라도, 참고 기다리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소망하기는, 우리 꿈의 모든 성도들이, 깨어있는 거룩한 자들이 되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복된 사람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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