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사 62:1-12
인천의 방주교회를 담임하시는 박보영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현재 60세인데, 38세에 예수님을 만나고, 잘나가던 대학병원의 의사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목회에 전념하시는 분입니다.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들 까봐, 아예 의사면허증을 찢어 버리고, 가지고 있던 30억 재산도 가난한 사람과 개척교회에 나눠 주고는, 버림받은 아이들 22명과 함께 살면서, 목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분이 목회를 시작하고 13년동안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3년이 지나면서, 간증 집회를 해달라고 하는 교회가 많아지고, 집회를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한가지 은사를 주셨는데, 부흥회를 인도할 교회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주님께서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말씀해 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후부터 집회를 가시면, "주님,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라고 묻는 습관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분이 한번은 미국에 부흥집회를 오셨는데, 두 교회를 가게 되었다고 해요. 첫 번째 교회에 집회를 하기 위해 맨 앞 자리에 앉았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죽은 교회다." 그래서 영의 눈으로 보니까, 교회 불이 깜깜하게 다 꺼져 있더라는 거예요. 예전에 주님께서 "죽은 교회다" 라고 했던 교회들도 조금의 빛은 있었는데, 이 교회는 아예 깜깜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을 하는데, 이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보다 더 뜨겁게 찬양하더라는 거예요. 다들 일어나 손들고, 찬양을 하며, 기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아멘, 아멘' 하는데, 예배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예배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좋은 교회인데, 주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너무 궁금중이 생기더라는 거예요.
예배가 마치고, 교회 중직자들을 다 모이라고 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시는데, "너희들은 내 곁에 있으면서 지옥을 향해 가니?"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집회를 마치고, 그 교회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목사님이 "이번 집회를 마지막으로 보따리를 싸려고 했습니다." 라고 말을 하더라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결심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박보영 목사님이 그 교회를 떠날 때까지, 그 교회는 깜깜했더라는 거예요.
이말은 지금 교회 분위기가 깜깜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랑이 있고, 없고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예요. 전도를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감동적인지, 아닌지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감동을 받으려면, 몇 만명 모이는 교회가 가시면, 성가대 찬양만 들어도, 그 스케일에 압도 됩니다. 그리고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 라고 말하게 될꺼예요. 정말 감동적인 예배는요. 분위기에 압도된 감동이 아니라, 내 심령이 울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이 교회에 한 두 명이라도 있으면, 깜깜한 교회는 면할 수가 있습니다. 목사를 비롯해서, 단 한 명도 깨어있는 성도가 없기에 그렇게 깜깜했던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또 다른 교회에 집회를 갔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7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건물이 없어서, 중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다고 합니다.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앞자리에 앉아서, "주님,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여쭈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 교회는 내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이 교회는 고난 가운데 세워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는데,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나를 증거하지 않고 있다. 나를 만나려면 좁은 길로 와야 하는데, 그 길을 가려고 하는 성도도 많지 않다. 그런데 이 교회는 나를 증거하며, 좁은 길을 간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완벽한 교회를 찾고 계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혹시 찾으셨다면, 여러분이 완벽하기 전에는 그 교회에 가는 것을 미루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교회에 나가면, 나 때문에 그 완벽이 깨질지 모르니까요.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있습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보시는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건물이 큰 교회도 아니고, 분위기 좋은 교회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을 길로 가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시대를 살피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된 신부 같은 성도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는, 주님께서 반드시 "내가 이 교회를 사랑하고, 세울 것이다"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꿈의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며, 다짐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 첫째로, 우리 교회는, 순결한 신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2장은 세상 끝 날에,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주의 백성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주 앞에 서 있는가를 예언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교회는 신랑 되신 주님 앞에 순결한 신부처럼 서 있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결한 신부처럼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랑을 만나는 그 날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다른데 한눈 팔지 마시고,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성도들로 가득 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선택합니다. 거리가 가깝다, 건물이 크고 멋지다, 프로그램이 많다, 주차시설이 편리하다, 사람들이 많아서 교제나 사업에 유리하다, 말씀이 좋다, 친한 분들이 많다…등등등…이유가 다양합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점심을 무얼 먹을까? 결혼은 누구랑 할까? 교회는 어느 교회로 갈까? 등등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점심은 무얼 먹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40일 금식기도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주님 순두부를 먹어야 합니까? 떡복이를 먹어야 합니까? 고민하지 않습니다. 점심은 그냥 아무거나 드시면 됩니다.
그런데 결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여자 성도님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거예요. "왜 그 남자와 결혼하셨습니까?" 그러면, "아, 그 남자의 집이 가까워서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그 남자의 집이 너무 멋있게 생겨서요. 그리고 그 집에 주차 시설이 너무 좋아서요" 그래서 그 남자와 결혼 했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 남자에게 나의 인생 전부를 맡겨도 될 것 같기에 선택을 한 걸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레스토랑에 한끼 때우는 점심식사처럼 그렇게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결혼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한번 결혼은 50-60년 후회하면 되지만, 교회의 선택은 영원을 좌우 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문제가 달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 신랑 되신 주님께서 기뻐하는 정결한 신부 같은 교회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세상에 그런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다고, 우리교회도 그런 교회와 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신부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는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목회 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꾸 사람이 생각이 쳐들어와 교회가 성장해야 되지 않겠니? '교회가 성장해야 되지 않겠니' 라고 본질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정신이 들면, "그래 한 영혼이 남아도, 그 영혼을 순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는 목회를 해야지" 라고 정신을 가다듬을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고민은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2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한영혼을 순결한 신부로 세우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목사를 비롯해서, 교회는 최고의 중매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중매쟁이 역할을 잘 못하면요, '뺨이 석대'가 아니라, 앞에 말씀 드린 교회처럼, 깜깜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게시록 19:9절을 보시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는 신부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한분도 빠짐없이, 순결한 신부들이 되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 두번째로, 우리 꿈의교회는 파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6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 성벽 위에 파숫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를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파숫꾼' 이란 단어의 뜻은?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망을 보는 사람입니다. 지금 같은 여름에 누가 우리집 수박을 따가는지 원두막을 짓고 망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저도 어렸을 때, 학교에 갔다 오면, 원두막에서 누가 우리집 '배'를 따가는지 망을 봐야 했습니다. 원두막에서 밤새 잠을 잤습니다. 한번은 도둑이 배를 따갔는데, 과수원 철조망을 절단하고는 차를 과수원 안에 까지 몰고 들어와, 그 일대의 배를 다 따갔습니다. 트럭을 대고 따 간 것 같아요. 과수원 안에 차 바퀴자국이 선명했습니다. 그렇게 따가는데도 모르고, 잠만 쿨쿨 잔 거예요.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깨어서 주님 언제 오실지 망을 보는 교회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시대를 살피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도 않고, 베드로후서 3:4절의 말씀대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죽은 이후로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영적으로 잠만 쿨쿨 자면 안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투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 사단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때로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때마다,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면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와 주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실 그때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넘어져 있다고 한다면, 경계에 실패하는 거예요.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이렇게 파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도 졸고 있고, 장로,집사도 졸고, 온 성도가 졸고 있으면, 깜깜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학자 칼바르트 (Karl Barth) 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자는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엔 신문" 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4장에 말씀대로, '시대의 징조' 를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이땅에 태어나실 때도, 동방의 박사들은, 학자들이었습니다. 하늘의 별을 연구하면서, 예수님이 언제 태어날 것이며,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별을 연구하며 별을 따라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초림을 목격한 복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 저는 너무 바빠서, 신문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드라마 보지 마시고, 뉴스라도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제도 뉴스에 노르웨이 에서 청년 하나가, 청소년들을 무차별로 살해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 주님이 금방이라도 오실 것 같지 않습니까? 정, 여러분들이 신문을 볼 시간이 없으면, 제가 대신 보아 드리겠습니다. 대신 여러분들은요. 성경이라도 제발 많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는 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파숫꾼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 처럼 부지런히 연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이 있는 교회는 분명히 불이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세번째는, 우리교회는 구원의 길을 예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배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이 막 뛰지 않습니까?
이렇게 상상 한번 해 보십시요. 큰 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큰 성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는데,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길이 너무 허술 한 것입니다. 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너무 위험한 거예요. 그래서 길을 고치고, 길 위에 있는 돌들도 제거하고는, 이제 대로가 완공 되었으니, "이쪽으로 오면 살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며, 십자가가 그려진 큰 깃발을 흔드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이런 모습이 '주의 깃발든 군사' 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습은 이런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영적으로 죽이는 교회가 아니라,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는 교회의 모습 말입니다. 무너진 길을 고치듯, 무너진 열심도 회복하고, 무너진 사랑도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첫사랑도 회복하고, 주님과의 친밀함도 다시 회복하고, 눈만 감으면 그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눈물 흘렸던 그때를 다시 회복하시고, 그냥 주의 전에 들어 오기만 하면 너무 기뻐했던 그때를 회복하며, 예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밤나무 중에 '너도 밤나무' 라는 밤나무 같지 않는 밤나무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한 마을에 밤나무 100그루를 하사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임금이 직접 주신거라, 죽을까봐 잘 키웠습니다. 어느 정도 밤나무가 자랐을 때, 임금이 그 마을을 방문해서 그 나무들은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도 한 그루가 모자란 거예요. 마을 사람들은 떨기 시작했습니다. 임금이 내리신 밤나무 하나를 잊어버렸으니 말이죠. 그런데, 그 마을에 재치 있는 한 사람이, 아주 볼품없는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저것도 밤나무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 너도 밤나무냐?" 라고 해서 그때부터 '너도 밤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너도 밤나무의 밤송이를 까보면, 밤과 비슷해서 밤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분 좋게 한입 깨물면, 그제야 진한 배반감과 함께 입안에 떫은 맛만 가득 찬다고 합니다. 그러면 '너도 밤나무냐?' 하며 집어 던져 버린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꿈의 교회를 보실 때, 너희들도 교회냐? 하실 까봐? 저는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진짜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열매는 많은 숫자를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열렸더라도 충실한 열매가 있느냐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주님은 그 열매를 보시고, 희망이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그런 충실한 열매들이 되어서, 마지막 시대 가운데, 순결한 신부 같은 교회, 주님 오심을 파수하는 교회, 구원의 길을 예비하는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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