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기자의 마지막 강조
야고보서 5:14-20
지난주에 우리는 '고난당할 때 기도해야 하며, 즐거울 때 찬송해야 한다' 라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마지막으로, 병들었을 때, 그리고 진리를 떠난 자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4절에 보시면 야고보가, "병든자가 있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병든자가 있으면, 먼저,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장로는 지금의 목사입니다. 목사의 심방을 받고, 기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너희의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성도가 아픈데, 마음 편한 목사는 없을 것입니다. 마음 같으면, 한번 안수해서 병마가 떠나고, 펄 펄 뛰어 다녔으면, 좋겠는데, 그 내면에 어떤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병이 낫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질병을 통하여 무엇인가 성도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성도가 회개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목사가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16절에 보시면 병낫기 위해서 해야 할것은, 목회자의 기도도 있어야 하지만, 본인 당사자들이 "죄를 서로 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서로 고하라고 한것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서로고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지은죄는 하나님께 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 상호간에 상처를 주었거나, 다투었을 때, 에는 서로간에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화해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병자를 위하여 기도하려고 모인 사람들간에, 서로 미워하고 있으면, 기도의 능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곳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 성경구절을 잘못 해석해서,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고해성사는, 신부에게 죄를 고하면, 그 자리에서 죄가 사해졌다고 신부가 선언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 사할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데, 카톨릭에서는 신부가 '죄의 사죄권' 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죄를 용서해줍니다. 그러니까, 신부의 권한이 막강하죠.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가 죄 사함을 받아느니라" 하시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도 죄 사할 권세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인간인 신부가 죄 사한다는 것은 이단 중에 이단인 것입니다.
카톨릭에서 죄인들의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는 '사죄경'을 읇은다고 합니다.
그 '사죄경'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아주 잘못된 이단사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처럼 서로 죄를 자백하고, 서로 병 낫기를 기도하면,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신부도 아니고, 목사도 아닙니다. 성도간에, 또는 성도와 목사간에 죄를 고백했다 할지라도, 결국 사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성도간에 서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할 때,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은밀한 죄들을 성도간에 서로 나눈다면, 문제만 더 커질 확률이 많습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아서, 비밀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16절 하반절 보시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는 힘이 많으니라" 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한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과 막힌담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 엘리야처럼 기도 하는 것 마다 '역사하는 힘' 이 많다고 야고보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육첵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혹시 내가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혹시 나에게서 하나님이 마음 아파 하시는 것이 있는지, 신앙을 스스로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 계시기에 분명히 알게 해 주십니다. 뭔가 내 안에 거룩한 부담감이 생기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 내가 헐어버려야 할 담인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가 제일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진리에서 떠난 자들의 문제' 입니다. 역시 제자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병낫는 것도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절과 마지막절을 간단히 요약하면,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영혼을 죽이게 된다' 라는 말입니다. 즉, 전도하여야 한다 하고 말씀하시며, 야고보서를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한 서신서입니다. 왜 행함을 강조했습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위해서, 그러면 우리는 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까?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한국의 남자들을 누구나 군대를 가는데, 지금은 21개월인데, 21개월동안, 먹이고, 입히고, 훈련하는 이유는 군인다운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막 군대에 들어간, 신병이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군인은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듯이, 성숙하지 않은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에 야고보기자는 야고보서 내내 잘 훈련된 성도가 되기를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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