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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12월 18일 새벽예배설교: 야고보의 탁월한 점 – 약 1:1

by Peartree 2012. 12. 24.

야고보의 탁월한 점

야고보서 1장 1절

 

지난주에 약 16주에 걸친 로마서 강해가 끝이 났습니다.

오늘부터는 약 10여주에 걸쳐 토요일 새벽에 야고보서를 강해 하면서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약성경에 야고보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에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가 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진 제자. 이 사람의 아버지가 세베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이사람은 예수님의 열두제자였지만,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인물입니다. 그의 별병은 작은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나이가 어려서 작은 야고보인지, 키가 작아 작은 야고보인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주의 형제 야고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복 형제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예수님이 메시야이신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읽은 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복형제 야고보는 어떠한 사람이며, 그에게 위대한 면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야고보는 겸손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아주 특별한 구절이 소개 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여러분! 이 구절에서 무엇인가 느껴지는 바가 없습니까? 지금 야고보가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아우' 라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는 아니었지만 늦게 예수님을 믿은 바울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 이라고 서신서 여러 곳에 소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겸손한 종이었기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종이라고 한 것과 지금 야고보가 종이라고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완전히 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면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은 얼마든지 가능한 고백입니다.

 

반면에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며 가족으로 30년 넘게 한 집에서 죽 같이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에게 은혜를 입었다 해도 한 가족이신 예수님보고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라는 고백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형제나 자매중에 어려서부터 같이 성장했고, 같은 밥상에서 밥먹던 형제가, 하루 아침에 메시야라고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를 주인으로 섬기기가 쉽겠습니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봐서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예수님께서 제일 큰 형님이라고 동생들을 못살게 굴고, 때리고, 좋은 것은 혼자 다 차지하고 했더라면, 아무리 예수님이 메시야라 하더라도 주인으로 부르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은 평생을 가족에게도 훌륭한 인격으로 사셨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충분히 그러한 삶을 사셨겠지요.

그러나 한 가족이었던 예수님을 주인으로, 또 그의 종이라고 고백한 야고보는 겸손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의 별명이 무엇이었냐 하면 '낙타 무릎'이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다보면 다른 짐승들은 눕거나 서 있는데 낙타만은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일어날 때도 무릎을 확 펴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무릎을 많이 꿇기 때문에 무릎이 튀어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가 워낙 무릎을 꿇고 기도를 많이 해서 그 무릎이 낙타처럼 툭 튀어 나왔다고 해서 '낙타 무릎'이라고 하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성이 깊은 사람이었고, 또한 영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지금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당시의 복음에 대한 잘못 이해되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야고보서를 쓴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16주 동안 로마서를 공부했습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믿음으로 모든 구원이 다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믿음만 강조한 나머지 그들의 행위는 난장판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계모와 부정한 짓을 하고, 로마서 보시면, 동성연애를 하고, 마귀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하면서,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는 다고 하며 타락한 생활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가 그런 잘못된 복음의 이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야고보서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행위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그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어야 합니까? 그냥 입으로 나는 예수 믿어, 이렇게 시인하면 믿는 것입니까? 아니면 조금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믿어, 이 정도 겠습니까? 우리가 죄에서 구원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성경은 '온전한 믿음' 일고 말합니다. 이 온전한 믿음은, 성숙한 믿음입니다. 이 성숙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성도로 살게 하기 위한 주옥 같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주부터 이 야고보서를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어떤 것인지 하나 하나 발견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