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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12월 11일 새벽예배설교: 교회의 일꾼들 - 로마서 16장 1-23

by Peartree 2012. 12. 24.

교회의 일꾼들

로마서 16장 1-23

 

세 사람의 일군이 교회 예배당을 짓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세 사람에게 "무슨 일들을 하고 계시나요?"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대답하기를 "보시면 모르겠소?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소." 말합니다. 둘째 일군은

"돈을 벌고 있소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 사람은 공간적, 지리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세 사람의 관점은 굉장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본문에는 로마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바울은 이 마지막 장에서 지금까지 자기와 함께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고 동역한 일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려 33명의 교회일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과 숫자가 같아서 외우기 쉬우실 것입니다. 이중에는 남자가 24명 여자가 9명, 싱글도 있었고, 부부도 있었습니다. 유식한 사람도 있었고, 무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귀족도 있었고, 노예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교회를 위해서는 한마음이 된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언인지 본문에서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이들의 공통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3절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7절에도, 8절에도 주안에서, 9절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계속해서 8번씩 강조하고 있습니다.

'In Christ' 이 단어는 바울신학의 핵심입니다. 이 뜻에는 세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란 뜻,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 계속 거하고 있는 사람, 세번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이 없는 사람이 교회의 일군이 되고 직분을 받게 되면, 이 직분을 교회 계급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이 교권주의로 전락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 직분은 상하 계급 구조가 아닙니다. 수평적 구조입니다. 서로 돕고, 동역하는 상호보완적 구조라는 것입니다.

 

  1. 그래서 우리가 두번째로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들은 모두 동역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3절 보시면,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9절에도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21절에도 "나의 동역자". 이 동역자란 말은 같은 팀 이라는 것입니다. 팀 안에서는 계급이 없습니다. 포지션만 있을 뿐입니다. 예를들어, 축구팀이면, 한 팀안에 11개의 포지션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팀의 주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장은 그냥 팀을 대표하는 것 뿐이지, 팀 구성원에게 명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코치만 명령할 수 있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코치되신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한 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보시면, 바울이 그의 동역자들에게 위에 앉아서 명령을 내린적이 없습니다. 서로의 약한 점은 보완해 주고, 도와주는 것이 이들의 사역이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제가 영어가 부족하니까, 주님께서 영어와 한국어 능통한 이은민 목사님을 동역자로 보내 주셔서 팀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정에 은사가 있으신 분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성도를 위로하는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베푸는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오시면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모두가

동역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33명이 모두가 바울과 함께 사역한 동역자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동역하였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고 있지만,

3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개척할 때 자기들의 집에서 개척할 수 있게 집을 내 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절에 뵈뵈라는 자매는 바울의 편지를 배달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22절의 더디오라는 사람은 바울이 감옥에서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자, 바울이 불러주면 편지를 대신 써준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더디오가 이렇게 반응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가 편지나 불러주는 대로 쓰는 사람입니까?". 만약 뵈뵈가 "내가 편지가 갖고 왔다 갔다 하려고 집사가 된 줄 아십니까?" 이렇게 되면 초대 교회가 바르게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작은 일을 작은 일로 여기지 않고 주의 위대한 사역으로 알고 함께 동역한 드림팀 이였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는, 이들의 공통점은 서로 사랑은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찾아보십시요. "문안하라" 그렇죠? 거의 매절마다 "문안하라" "문안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 보시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의 미국인들처럼 입을 맞추며 서로 문안 인사를 했습니다 (holy kiss). 한국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 식으로, 악수를 하며, 허그도 해주고, 어째를 감싸주고 하면, 너무나 보기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분위기 좋은 로마교회에도 위기가 닥치기도 합니다.

17절 보시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8절 보시면,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당시에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배만 섬기고, 공교하고,(교묘하게) 아첨하는 말고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교회는 나오지만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믿지 아니하고, 나오면서, 아주 순진한 성도들에게 부르러운 말로, (잠언에 나오는) 아주 미끄러운 말로, 걱정해 주는 척 하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이런 사람들을 바울은 20절에 '사단' 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평강의 하나님이 물리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마귀의 헬라어로 '디아볼로스' 입니다. 디아는 가운데라는 뜻이고, 불로는 던진다라는 뜻이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자꾸만 가운데 던져서 헤쳐놓고, 이간 시키는 것이 마귀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전문적으로 하는 마귀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구요. 19절에 '평강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 성도 가운데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며, 서로 문안인사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먼 훗날에 주님께 열심히 충성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여러분의 묘비에, 어떻게 비문을 새겨주기를 원하십니까? 한국식으로는 '고00성도 여기 잠들다' 그런데 외국에는 재미있는 비문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부지런한 내 딸 여기에 잠들다. 부활의 때에도 제일 먼저 일어날 것이다"라고 새겨 놓은 것도 있고, "참 말 많던 내 아내 드디어 입을 다물다."라는 비문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내 여기에 잠들다 제발 내 아내를 깨우지 말아다오"라는 비문 같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비문은 어떻게 쓰여지기 원합니까?

오늘 바울이 이 33명의 동역자들, 한사람 한사람 문안하며, 이제는 언제 볼지도 모그로, 바울은 감옥에 있고, 천국에서나 볼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데, 이중에서 묘비에 쓸만한 문장이 몇 개 발견됩니다.

10절 보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O O O"

12절 보시면, "주안에서 수고한 O O O"

 

이런 주의 일꾼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