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 때에
막 13:1-13
어제 달력의 11월을 넘겼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장을 남겨놨습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투산에 온지도 거의 1년이 되갑니다. 이렇게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을 보며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들 하십니까?
저는 주님 만날 날이 더 가까워지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지금까지 주를
위해 뭐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만약 내일 지구의 종말의 온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했습니다. 한 철학자의 이 유명한 말이 어렸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렸었는데, 사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저도 그렇게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루 남겨 놓고, 그동안 먹지 못한 것, 해보고 싶은 것 실컷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원수 같은 사람에게 원수 갚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저라면, 그동안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았던 것 회개하고, 믿는 형제 자매들에게 천국에서 만나자고 작별인사하고, 혹시 주변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예수 믿어야 한다고 전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주님 만날 준비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말세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말세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어떤 분들은 말세 하면,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여,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가정도 돌보지 않고, 열심히 모아둔 돈을 흥청망청 물쓰듯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신앙이 좀 있다는 사람들은 흰옷입고 산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주님 만날 준비한다고 했던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죠. 또 어떤 사람은 말세에 대해서 상징적으로만 해석해서 실제로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이 종말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절 보시면,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이 성전은 헤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46년 동안이나 정성을 들여서 개축을 한 것입니다. 한 건물을 46년 동안이나 공을 들여서 개축하였다면 그 건물이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답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그 성전을 보면서 지금 예수님께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 이 성전 대단하죠. 예수님 이 돌 기둥좀 보세요, 이렇게 엄청난 성전을 지었으니 절대 하나님은 성전을 허물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성전 때문에라도 인류의 종말 같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이 건물들은 보느냐 돌 하나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말씀하시죠.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심각해 진것이죠. 그러니까, 제자들의 생각이 바뀝니다. 아니 이렇게 아름답고 견고한 성전이 무너진다면, 그렇다면 이 세상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구의 종말이 올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3절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핵심 멤버 4인방,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가 조용히 예수님께 나와 묻습니다. 4절 "예수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고, 이런 일이 벌어 지려고 하면 그 전에 어떤 징조 (Sign) 있습니까? 이 질문을 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세상 끝 날의 징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미혹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때,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 처처에 지진과 기근의 소식이 들릴 때" 이런 소문을 들을 때가 종말을 징조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 맞는 말입니다. 이런 징조가 바로 종말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종말에 대해서 보다 더 심각한 단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소문과 징조는 말세의 끝이 아니라, 8절에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말의 징조는요 사실 이미 예수님 당시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전쟁. 기근, 지진 이런 징조들은 수도 없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란 지금 이 시대가 아니라 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즉 말세가 가까이 왔으니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말세는여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아닙니다. 말세는 이미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말세의 징조들을 어떤 것입니까?
19절에 봅시다. "이는 그 날들은 환란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겠고, 후에도 없으리니"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최후의 징조입니다. 또 24절 보십시요. "그 때에 환란 후에 해가 어두어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 25절에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런 징조는 과거에는 없던 징조들입니다. 마지막 최후에 있을 징조들이죠.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기 바로전의 사건들입니다.
26절에 보면 "그 때에 인자가 구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속에서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로, 6절 미혹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들의 대표적이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혹케 하는 것입니다. 본문 22절 말씀 보시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이 구절에서 '행하여'라는 말은 영어로 'Perform' 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말은 '연기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표적과 기적을 연기하는데 탁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대표적인 무기인 '남을 속이는 것'으로 최대한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을 미혹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은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한국의 이단대책 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는 40-50명의 재림 예수가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신천지라는 교단의 이만희 교주, 자기가 Jesus Chrust Morning Star 라는 정명석 지금 감옥에 있죠. 통일교 문선명, 이러한
가짜 재림주가 있죠.
또, 예수님이 몇월 몇일 날 오신다고 말하는, 신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보면, 굵직 굵직 하게 예수님의 재림 날짜 때문에 소동을
격었던 적이 수십번 정도 예수있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몬타누스라는 사람은 자신이 성령이라고 하고,
19세기 미국에서도 윌리암 밀러는 1844년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했다가 불발로
끝나자, 다시 날짜를 조정하여 오늘날 만든 단체가 '제칠일 재림 안식교' 입니다.
1978년 미국 흑인 목사 짐존스는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여 신자들을 이끌고
남미의 밀림에 정착하여 공동 생활 하다가, 그 안에서 반대자를 살인하여
은폐하고, 결국 CIA 의 조사를 받자 전 신자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하여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죠.
이들의 결말은 공통적으로, 자살 아니면, 가정 파괴, 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방랑자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더 비참한 것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속임수에, 미혹에 빠진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21절에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하여도 믿지 말라" 26절에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 진짜 예수님이고 다른 것 들은 다 마귀의 속임수라는 것이죠.
- 두번째는, 믿음이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이 말씀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면 절망하고 낙심하고 두려움에 빠지고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때에는 믿음이 없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고난을 주는 이유는 고난중에 우리들의 입술을 통하여
믿음의 말을 함으로 그 믿음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보여주기 위한 뜻이 있습니다.
9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 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니" 왜 믿는 사람들이 창피를 당하고, 매질을 당하고, 핍박하는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니" 현대인의 성경 번역본은 "나를 증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과 환난 중에서 믿음의 말을,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 11절 말씀처럼 성령님께서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다는 것입니다.
말의 힘이 대단합니다. 말로 인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니 말입니다. 그 말이 또한 성령께서 내 속에서 가르치시는 말이면 얼마나 능력이 있겠습니까?
가정의 행복도 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꾸며 보십시오.
부부간에 대화가 막히면 결코 행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한 가정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자녀의 성공도 부모의 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자녀가 되고, 힘주는 말을 하면 힘 있는 자녀가 되고, 신앙을 심어 주는 말을 하면 신앙 좋은 자녀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말로 죽어가는 영혼을 세우며, 가정도 든든히 세우나가야 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13절 하반부 말씀을 보면,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을 가지고 그 모든 고난을 이기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참기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쉽게 참을 수 있는 것을 참고는 인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내가 아닙니다.참을 수 없는 때 참는 것이 진짜 인내죠.
본문 19절 보시면, 마지막 때의 환란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그런 환란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환란이 후에도 없으니라"
너무 견디기 힘든 환란이라, 그냥 두면, 사람들이 다 견디지 못하고, 마귀에게 복종할 것 같으니까, 20절에 "만일 주께서 그날들은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초대교회 때, 콜로세움이라는 로마 원형 경기장에, 크리스천들을 모아 놓고, 사자의 밥이 되는 고난은 마지막 때 있을 고난을 그림자로 미리 보여준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대못이 박힌 널판지를 걸어가는 것도 마지막 때 있을 고난의 그림자입니다. 지금도 북한과 미얀마 같은 곳은 인내해고 견뎌야 구원 받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초림하실 때, 2살 이하의 아기는 다 죽였습니다. 집집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환난이 닥친 것이죠. 백성들은 빈곤과 가난에 허덕였습니다. 질병은 왜 그렇게 많았는지, 게다가 이 헤롯은 적그리스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역사는 번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이거 못지 않은 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을 말합니다. 환란정도가 아니라 재앙입니다. 믿음이 없는 성도들은 견디기 어려운 정도일 것입니다. 구원 받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피부로 직감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그 때의 환난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환란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황폐화 시키죠. 예수님의 예언이 완벽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는 우리 시대에 일어날지, 아니면 수십년, 아니 수백년 후에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한가지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처럼, 주님 바라보며, 인내하며 사는 것, 이런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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