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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12월8일 수요찬양설교: 진실한 사랑과 빗나간 사랑 - 막 14:3-11

by Peartree 2012. 12. 24.

진실한 사랑과 빗나간 사랑

마가복음 14:3-11

 

1844년 독일에서 출생한 니이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부친은 목사였지만 그가 5살때 뇌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후 그는 할머니 가정에서 어머니, 이모, 여동생들 틈에서 매우 엄격하게 기독교 환경 속에서 자라나죠.

그리고 독일의 본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바젤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교수가 되어서, 그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기독교의 규율 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하는 일,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오는 질문이나 감정의 표현 따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향으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는 가장 무서운 무신론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끝내 그는 정신이상자가 되고, 사지에 마비증세가 오면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러한 예는 비단 니이체 뿐만이 아닙니다. 니이체처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 6백만을 죽이는 악명높은 정치가요 독재자요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사랑을 받거나 사랑해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와 함께 예수님을 돈 몇푼에 팔아넘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여자는 마리아고, 한 남자는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이틀 전 수요일 저녁때였습니다.

3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등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고 계신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위에 부었습니다. 이 여인은 요한복은 12장에서 '마리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향유는 예수님의 발등상까지 흘러내리고, 흘러내리는 그 향유를 이 여인은 자기의 머릴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절에 보시면,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미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왜 이 비싼 것을 낭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다음절에 보시면 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꾸짖듯 말합니다. "이 향유를 삼백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이 한 사람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요한복음 12장 보시면, 이 사람이 ,가룟유다,입니다.

요한 복음 12장 4절,5절과 6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4절 "제자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유다 말하되" 5절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 향유를 차라리 돈으로 바꿔 예수님께 가져 왔으면, 가난한 자들을 도울수 있는데, 왜 낭비를 하고 있냐는 것이죠.

 

지금 유다의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부 옳은 말같이 들리지 않습니까?

삼백데나리온,

이거 그당시 굉장히 큰 돈이거든요. 지금도 큰 돈이지요.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까, 거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약 3만불정도 되는 돈이니 큰 돈이지요. 이 엄청난 큰 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줘 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제 할 수 있겠느냐? 아주 합리적인 말이고, 설득력 있는 옳은 말 같이 들리지요. 그러나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훔쳐갈 돈이 줄어든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유다의 생각을 주님을 꿰뚫어 보시고는 가식에 찬 유다의 말에 편을 들지 않습니다.

6절 보시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오히려 그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위도 함께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이틀전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백성을 끔찍히도 사랑만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으시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레슨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보문은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에게서 사랑에 대한 뚜렷이 다른 두 가지 시각과 두 가지 견해, 서로 다른 행동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떠한 사랑이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마리아의 사랑입니다.

 

얼마전 미국의 '엘튼존'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가운데 '바람속의 촛불' 이라는 노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시대를 살다간 두명의 여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라고 해서 엘튼존의 노래가운데 최고의 앨범 판매 기록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노래속의 두 여인은 '마릴린 먼로' 와 '프린세스 다이애나'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의 이야기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마리아' 라는 여인은 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9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가인 '라투렛'이란 사람은 교회역사를 연구하면서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은 "신학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심지어 목회자도 아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께 사랑을 바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바로 그들이 교회를 지킨 주인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도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의 다른 인물과 다르게, 위대한 큰 일은 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향유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은 것 밖에는 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향유의 값은 꽤 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행한 것에 비해 예수님은 과분할 정도로 칭찬하시죠. 왜 그렇게 과분하게 칭찬 하신 것입니까? 이 여인의 삶의 배경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누구입니까? 마리아, 그의 언니 마르다, 그의 남동생 나사로, 나사로는 죽었다가 4흘만에 예수님께서 살려준 사람이죠. 예수님께서 이 세남매를 정말 각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들이 사는 곳은 베다니인데, 예수님께서 오고 가면서 이곳에 들러 쉬셨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 보시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학자들은 그 나사로가 이 나사로일 것이다 라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여튼, 이 세 남매는 정말 거지처럼 가진 것 없이 주님만 사랑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사랑하는 주님이 죽으실 때가 되자, 집에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향유를 부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부자가 30,000불짜리 향유를 깨드리면, 사람들은 아무말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낭비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 같이 가난한 마리아가 이 비싼 향유를 부으니, 사람들이 Shock 이 되서 더 비난한 것 같습니다. "너희들 주제를 알아야지, 그 돈이면 너희 세 식구가 2-3년은 먹고 살겠다. 너희들은 낭비하고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비난 한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 우린 뭐라고 해야 하나요? "가난하면 사랑도 못합니까?" 가난하면 교회 나오지도 못합니까? 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가운데 가난했던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전 서민들, 가난한 병자들이 예수님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빈부 귀천을 따지지 않으시니까요.

이런 마리아의 행동은 분명 세상사람들의 눈으로는 낭비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것은 낭비가 아니라 헌신이었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지 선물 할 때 아깝습니까? 그렇지 않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저녁을 밥을 준비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터진 옷을 꿰메는 것, 시간 낭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제가 제 아내에게 처음으로 반지를 선물할 때, 저희 외삼춘 댁에 가서 일주일 내내 배밭에서 삽질해서 번 돈으로 반지를 선물했습니다. 힘들게 번 돈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사람이 보기에, 수요일 교회 나오고, 주일날 오고, 새벽에 오는, 이런 것들이 모두 시간낭비, 물질 낭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마음을 주의 사랑 받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 마리아의 심정이 그렇습니다. 누가 뭐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 영혼을 살리신 주님, 내 오라비의 생명을 되돌려 주님, 이 주님에게 이 향유보다 더 비싼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는 이런 마리아 같은 사람들에게 의해 지켜져 왔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사람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2) 두번째는, 가룟유다 거짓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룟 유다의 잘못된 시각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믿어 왔던 주님이 십자가에 죽는다고 가끔 말하니까,

아마도 예수님이 더 이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돈궤에 손을 대서 훔쳐가는 버릇도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마태복음에서는, 유다가 이미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로 당국자들과 계약을 맺은 상태라고 고발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공금을 횡령한 자라고 규탄하고 있습니다.

 

단테는 지옥 중의 지옥, 지옥 밑바닥에 갈 사람을 가룟 유다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왜 이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도둑질을 하고, 지극히 차갑고 계산적이었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다는 애초부터 성공을 원했지 예수님을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그의 성공을 찾아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 예수님 자신을 사랑해서 좇아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은 갈망하면서도 구원자는 갈망하지 않습니다.

복은 원하면서도 복을 주시는 예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공병"입니다. 성공병이 사람을 망치고, 결국에는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없는 성공은 헛된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유다는 똑똑하면서도 한없이 어리석은 바보 중의 바보였던 것이죠.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요, 둘째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요, 셋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는 미국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성공을 사모하며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 가지를 성공하면 다른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또 다른 성공을 위해 또 다시 기도합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잠시 나와 함께 있다가 곧 성공을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을 향하여 바삐 떠나가는 나그네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을 만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 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패도, 두려움도, 죽음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암살 당하던 날 그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유품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링컨의 이름이 수놓인 작은 손수건 한 장과 시골 소녀의 주머니칼, 그리고 링컨 대통령을 칭찬한 기사가 적힌 낡은 신문 조각입니다. 

그 기사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역대 정치인들 중에서 최고의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

링컨' 같은 위대한 정치인도 자기를 격려하는 신문 조각, 손수건 한 장, 주머니칼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비난 받고 외로울 때마다 그것을 꺼내 보면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니, 이 위로의 말 한마디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위로하십니다. 마리아를 격려하고 위로 하셨던 그 예수님이, 지금 똑같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로 하신 것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데, 가룟유다처럼 계산적으로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심장 폐부를 살피시며, 생각까지고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이면 족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그 사랑 변치 않으면, 우리 주님은, 우리가 세상사람으로부터 비난 받으며, 비록 연약해 보여도 '나는 너 만큼은 기억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앞에 꼭 기억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