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치유자
시51: 1 ~ 19
미국의 어느 미식축구 팀 코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코치하던 팀이 잘 나가던 시절에 그의 주변엔 친구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팀 성적이 떨어지자 자기 주변엔 온통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만 많아져 갔습니다. 친구들도 다 떠나갔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그의 아내에게서 조차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외로운 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애완용 개를 기르기 시작하죠. 그리고 어느 날 자기 개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으며 "이제 내 친구는 너 밖에 없구나"말을 하자, 개가 꼬리를 흔듭니다. 마침 옆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아내에게 어떤 위로라도 받아 볼까 하는 마음에, 아내를 훔칫 보며 그는 다시 개를 향해 "우리 집에 너 같은 친구가 하나만 더 있으면 좋으련만"하고 중얼댔습니다. 그랬더니, 그날로 아내는 그에게 개 한 마리를
더 사다 주었다고 합니다. 곁에 있는 배우자 조차 친구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직장에서, 친한 친구에게서…….
헨리 나우웬의「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회의 신부로 전 세계 모든 목회자들의 영성을 깨워주는 위대한 학자이며, 치유 목회의 거장으로 불려지는 큰 인물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님을 상처받은 치유자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백성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제자들로부터 배신의 상처를 받았으며
마지막 십자가의 상처를 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살이 찢겨지고 피 흘리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상처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러한 상처를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모든 상처를 홀로 체험하시고 결국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위대한 치유자가 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상처를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가 어떤 상처를 받으면 받은 만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며 책에 결론을 맺습니다.
혹시 가난 때문에 아픔을 겪는 분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 아픔이 사명이 되어 배고픈 이웃들을 치유하고 도와주는 사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의 쓰라린 상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을 가슴에 품고 원망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병마로 인하여 신음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내 주변에서 그런
질병으로 고통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좋은 치유자가 되라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를 상처로 두지 말고 그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비로서 저와 여러분들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야
되는데 본문은 그 방법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아픈 상처를 드러내야 합니다.
환자가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픈 곳을 감추어서는 안됩니다. 닥터에게 가면, 아픈 증세를 낫낫히 고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의사의 치료가 시작됩니다. 병원의 닥터에게 아픈 곳을 숨긴다면 절대 치료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기의 죄를 낫낫이 고하고, 토설하는 회개하는 시입니다. 잘 알다시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죄를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이 여인을 아내로 삼으려고,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의 최전방에 서게
하여 전사하게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강력한 왕의 권력을 가지고, 충성스런 부하를 시켜 완전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음 푹 놓고 있던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의 간음죄와 살인죄. 그의 죄는 평생에 씻지 못할 큰 상처로 남게 되죠.
이 일로 말미암아 다윗은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에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죄책감으로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고통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6편 6절을 보시며,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상처로
인하여 밤마다 눈물로 밤을 새우며, 아침에 일어나면 눈물이 침대를 띄우며,
요를 적실 정도로 고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치료해도 치료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죄의 상처, 그러나 다윗이
이 죄의 상처를 치료받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4절 보시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만병의 의사되신 하나님께 상처를 드러낸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치료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아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비록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죄의 상처를 낫낫이 드러내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치료해주시지요. 그 상처를 혼자 해결하려고 고민고민 하다가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하면, 치료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나를 아프게 했던 상처들이 있다면 내 속에 감추지 두고,
고민하고, 아파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내놓을 때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 둘째, 입술을 열어 주를 찬송해야 합니다.
14절 보시면,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또 15절 보시면,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지금 이 다윗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금 뼈를 깍는 회개를 하고 있는 마당에 노래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예요. 왜 다윗은 이 회개의 기도에 노래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이 찬양을 통해서 기쁨을 되찾으며, 노래함으로 상처를 반드시 치유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는 찬양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겠다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상처받은 것이 묵상이 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서운한 마음, 미운 마음이 더 커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
받지 않고 남을 위해 기도해 주기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마음속에서 찬양이 흘러나와야 기도도 됩니다.
그리고 그럴때, 원망이 사라집니다. 분한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다윗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Counselor를 찾아 가지 않았습니다. 이 아픈 기억들을 잊어보겠다고, 친구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아픈 기억들을 잊어보겠다고 쇼핑하러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를 찬송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방법들을 사용해면, 겉으로는 치유가 된 것 같지만, 잠시 수그러 들은 것 뿐입니다. 언젠가 그 아픈 기억이 스쳐 지나가면 잠재하고 있던 원망, 미움, 배신감, 분노 이런 것들은 다시 밖으로 들어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수그러들고, 그러다가 또 표출되고,……..
그래서 완전히 치유되기 위해서는 이런 안 좋은 생각들을 완전히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기쁨으로 채우로 채우면 다시는 그런 안좋은 생각들이 들어올 틈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치유의 특효약인 것입니다.
- 세번째는, 상한심령을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이 상처를 하나님께 치료받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이라고 제일 먼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예배하면, 다윗 다윗하면 예배입니다. 다윗이 최고로 잘한 것이 있다면, 회개와 예배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최고로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창조이래 변함이 없는 불변의 진리일 것입니다.
그런 다윗이 지금 16절 보십시요.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당시의 최고의 제사인 태워서 드리는 제사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니,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17절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있는데, 상한심령이라는 것입니다. 상한심령.
상한심령은 영어로는 '브로큰 하트(broken heart)'라고 하는데, 마음이
산산조각이 난 것을 뜻합니다. 마치 큰 쇳덩어리나 망치로 바위를 내리쳤을 때 바위가 부서지듯이, 마음이 부서지고 깨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령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고통스럽죠.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럴때가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부부의 갈등문제에서, 직장문제, Financial 문제, 건강문제,
이렇게 여러가지 문제로 고통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의
심령은 상한심령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낙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심한
경우에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때인 것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한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이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것보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치료해주시고 싶으셔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처가 될 때마다 주 앞으로 달려 나와야 합니다. 멀어지면 더 이상 치료받을 길이 없습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불쌍한 소녀가 수용돼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회복불능'이라는 판결을 받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외롭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한 나이 많은 간호사가 매일 과자를 들고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얘,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야. 내가 있잖니?"
6개월 동안 한결같이 찾아와서 소녀를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웃음을 되찾고 정상이 되었습니다.
간호사의 사랑으로 회복이 된 이 소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신문에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린 소녀의
스승이 되어 그를 훌륭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이고 그의 스승이 되었던 소녀의 이름은 바로 앤 설리번입니다. 후에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설리번 선생은 "나도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상처입은 사람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꿈의 성도님들 모두, 혹시 남에게 말 못할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주님께 내어 놓으시고, 기쁨으로 찬양하며, 심령이 회복되어져서, 모두가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 되시기를 주의이름을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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