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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새벽예배 - 로마서 2장 1-16절

by Peartree 2012. 12. 23.

지난주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인간에게 보여 주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 고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눈을 들어 자연을 보시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치도 아니하고,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를 다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그런 사람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역시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며,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판단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1절, 보시면,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라는 말씀에서 남은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고 '판단하는 사람'은 유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이 이방인을 판단하고 있는데, 어떤 판단을 하냐면, 유대인들이 보기에 이방인들은 모두가 '죄인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택한 '선민'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율법'을 소유하고 있었고, 약속의 자녀란 표시로 '할례' 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전에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다윗이 골리앗에게 한말 기억하십니까? "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그럴 정도로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두 가지는 '율법과 할례' 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이 '율법'과 '할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옵니다. 적어 두십시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볼 때 법도 없고, 구원 받지도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여, 늘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런데 3절 보시면,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 할 줄로 생각하느냐?" 네가 남을 판단하면, 하나님께서는 너를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모두다 죄인이며, 똑 같은 사람이므로, 그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을 잘못 인식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보시면, "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기록합니다. 즉, 율법은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주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절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께 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십니다. 그리고는 일어나신 다음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른이건 젊은이건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왼손에는 율법책을 들고,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남의 죄를 지적하는데 바빴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그들과 함께 여인을 향하여 지적하지 않고, 그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죄목을 하나 하나 적어내려 가지 않았을까?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몇월 며칠 어느 모텔 203호, 몇월 며칠 신라호텔 408호. 또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들고 나오는 그들에게 같은 율법으로 '살인하지 마라' 라고 쓰셨을 것 같기도 하구, 아니면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성경 구절을 쓰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정확한 것은 천국에 가서 예수님께 여쭤 보십시요.

 

그러므로 9절 보시면, 악을 행한자는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헬라인 (Gentile : 이방인) 이라 할지라도 동일하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며, 10절에는 선을 행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악한지, 선하지,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알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에게는 율법이란 가이드라인을 주셨는데, 왜 이방인에게는 주지 않았나요? 의문이 가시겠지만, 이방인에게는 양심의 법을 주셨다고, 1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 보시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읽으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죄를 미워하시며, 악을 미워하시며,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율법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만드신 분의 본 성품이 그 안에 양심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없어도 율법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성품이 있는데, 그것이 '양심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율법에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였으면, 우리의 양심도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 라고 우리 속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고 하였으면, 우리의 양심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속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거짓말할 때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며, 맥박이 뛰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로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 속에 양심이 무뎌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꾸 양심이 무뎌지다 보면, 나중에는 죄에 대하여 담대한 마음이 생겨,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만 거짓말만 해도 양심이 얼굴을 통하여 나타나는데, 나중에는 더 큰 죄에도 얼굴이 굳어져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딤후 4:2절 말씀대로,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양심을 속이는데 보통 이렇게 속인다고 합니다.

①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건데 뭐.

② "벌써" 저질러진 일인데 뭐.

③ "그 정도는" 괜찮아.

④ 먹고 살자면 어쩔 수 없지.

⑤ 이번이 "마지막이야."

여러분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거든 마귀가 미혹하는구나 생각하고, 예전에 알려준 3초의 법칙, 3초안에 여러분의 생각에서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유대인과 이방인, 율법과 양심의 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6절 보시면,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여기서 '내 복음'은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그 복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지막 심판의 날에 사람들의 은밀하게 지은 죄까지 드러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서로 판단하는 죄를 범치 말고 말씀은 듣고 끝나는 자들이 아니라 행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