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은교회
계 3:1-6
캐나다 노인들에게는 "깨워주기 회"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65세에 정년은퇴를 하는데 은퇴하면 5년내에 거의 반수 이상이 죽습니다. 직장이 있어서 출근할 때는 아침 7시에 일어났으나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 마음 푹 놓고 얼마동안은 8시까지
평안히 자다가 그 다음에는 9시까지, 그 다음에는 10시, 11시, 12시까지
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잠이 계속 늘어 하루 세끼 먹던 식사를 두끼로 줄이다가 얼마 후에는 하루 한
끼로 줄이고 하루 8시간 자던 사람이 20시간까지 자는데
그때쯤 되면 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잠이 좋아 계속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다가 그만 곧바로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대개
그런 분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로서, 신문은 문 밑으로 넣고 가니 모르지만 우유는 전날에 배달한 우유가
그대로 있으면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여 들어가 보면 죽어있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어디고 100미터만 가면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데도 은퇴 후 할 일이 없으니 잠밖에 잘 것이 없어 결국 잠자다 갑니다. 그리하여 일거리를 주면 그토록 고마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 후에 할 일을 미리 마련해놓고 은퇴하므로 그런 사람들은 90세 이상 장수합니다. 그런데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죽어가므로 서로 '깨워주기
회'를 조직하여 당번이 된 사람은 앉아서 회원들을 깨워주는 전화 걸기에 바쁩니다.
성경에는 졸다가 망신당하고, 죽은 경우들이 여러 번 있습니다. 구약에 힘센
장자 삼손이 드릴라라는 여인의 무릎에서 자다가 머리털 깍기고 힘을 잃고 죽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신랑을 기다리던 열처녀가 모두 잠들었을 때 신랑이 온 사건도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깨어나라고 계속해서 권면하는, 소 아시아의 일곱교회중에 다섯번째 교회인 사데교회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는 대부분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참고 인내하는 교회였고, 서머나 교회는 마귀가 옥에 던져 시험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버가모 교회는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데교회는 다른 일곱교회와는 달리 여려움도 고난도 전혀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늘 평안했던 교회,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살아있는 교회 같았던 교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1절 보시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 라고 하시면서, 칭찬과 격려는 스킵하시고, 책망부터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어려움과 고난은 나쁜 것 만은 아닙니다. 그 고난으로 인하여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며, 도와주게 되므로 반대로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핍박과 고난으로 예수님 믿기가 어려운, 중국, 북한,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기독교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같이, 고난 없이 풍요로운 나라는 감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고난이 전혀 없던 사데교회는 일곱교회중에서 가장 타락한 교회가 되었고, 1절의 말씀대로 죽은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들어 가는 교회는 다시 물을 주면 살 수 있습니다. 병들은 교회 같으면
썩은 부분을 도려내면 살 가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교회는 어떻게 살릴
재간이 없습니다. 다시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데 교회가 회복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겉은 살아 있는것 같아 보이지만 속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 죽었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겉모습이 살아있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너희 교회가 죽었다고 말하면, 반기를 듭니다. 우리가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죽었을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모임과 각종행사도 활발하고 많은 신앙적인 모양들을 갖추고 있는데, 죽었다니, 당체 그런말 하지 말라고 합니다. 믿을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교회 상태를 점검해 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사데교회가 이렇게 착각에 빠져서 신앙 생활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2절 보시면, Wake up! 좀 신앙의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너희들 거의 다 죽었다. 이제 살아있는 부분이 아주 조금 남았는데, 그것을 강하게 만들지 않으면 결국에는 다 죽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2절 보시면,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드립니다. 찬송도 드리고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예배당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찬송을 따라 부르지만 마음은 멀리 있습니다. 기도 시간에 눈은 감지만 마음은 산란합니다. 이런 예배를 온전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29:13 “이 백성이 나를 가까이 하여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배 이기에 형식은 있지만 성령의 감동이 없습니다. 껍데기는 있지만 알맹이가 없기에 죽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라기에 재미난 표현이 있습니다. 말라기 1장 8절 보시면, 사람들이 예물을 드리는데 좋은 것은 자기가 다 먹고 가져다 팔고, 눈멀고, 팔다리 없고, 병든 제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져다 바칩니다. 하나님께서 하는 말씀이 그것을 총독에게 선물을 해보라 받겠느냐? 총독이 기뻐하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런 것만 내게 가져오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늘 3등이었던 것입니다. 내 할것 다하고 다른 일 다하고 그래도 남고 시간 있으면 주님께 헌신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 송아지 2마리가 태어 났습니다. 너무 기뻐서 남편이 하는 말이 한 마리는 하나님께 드린다고 합니다. 아내가 어떤 것을 드리냐고 물으니 나중에 보면 안다고 합니다. 갑자기 한 마리 송아지가 죽었습니다. 남편은 통곡을 하며 웁니다. 왜우냐고 물으니 하나님것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향하여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데, 다시 살아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중에 하나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절 상반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3절에도,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깨어나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깊은 침체의 늪에서 깨어나서 영성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깨어날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깨어 기도할 때 죽은 영혼이 돌아오는 부흥이 일어나며 복음이 지구촌을 향해 편지처럼 확산되는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휘필드와 웨슬리 형제들이 깨어 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을 부어 주셨고 그들을 통해 복음이 지구촌에 확산되게 된 것입니다.
1907년 평안 장대현 교회에서 성령의 은혜로 길선주, 조만식 등의 성도들이 깨어 날때 그때부터 교회는 부흥되었고 당시 1%도 안되는 교회가 삼일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 역사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깨어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부흥과 복음화에 일꾼이 되지만 깨어나지 않으면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여 엄히 책망하시겠다고 합니다.
당시, 사데의 성곽은 외부의 공격으로 함락될수 없는 난공불락의 도시였습니다. 사데는 지형적으로 거의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져 어떤 강력한 군대가 와서 공격해도 쉽게 함락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이 공격을 당할 것을 예상 못했듯이 사데가 공격 당하여 함락 될것을 전혀 상상치 못했습니다. 미국이 안일함에 빠졌던 것처럼 사데도 안일함에 빠져 파숫군들이 깨어서 파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제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이길수가 없어 사데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자에게 후한 상을 약속했습니다.
알렉삭더의 군사들은 열심히 그 성을 관찰했는데, 사데 성곽에서 파수를 보던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자기 투구를 떨어뜨리자 짐승이 다니는 작은 절벽의 길로 나서 철모를 주워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밤에 보초병들이 깨어있지 못하고 잠자고 있을 때 그 길로 기습 공격을 하여 그 성이 함락되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안전하다고 방심한 사데의 역사처럼 오늘날 우리가 안일에 빠져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밤의 도적처럼 주님이 오셔서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16:15절에,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다윗은 한가할 때 죄를 지었다. 전쟁에서 돌아와 한가할 때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음욕이 생겨 죄를 짓고 넘어집니다.
60년대 70년대 먹고 살기 바쁘고 생활이 쪼들릴때 없어도 감사하고 가정에 훈훈함이 넘쳤으나 충분히 먹고살고 평안해 진 오늘날 청소년들이 가는 곳이 어디며, 주부들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남편들이 가는 곳이 어디 입니까? 세상이 너무 평안하니까? 사람들의 영혼은 더럽혀져 있고, 그들이 입고 있는 신앙의 옷 조차도 얼룩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되어도, 희망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들을 지구 어디에선가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 보시면, 엘리야가 이세벨의 낫을 피하여 숨은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의 선지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제 나만 혼자 남았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다시 살 소망이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하소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엘리아야! 걱정하지 마라’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4절 보시면,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의 함께 다니리니”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데 교회에 깨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안하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더라도, 타락하지 아니하고, 깨어 주님과 동행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정절을 굳게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5절 보시면, 이렇게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라고 소망의 약속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1, 흰옷은 순결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의신부의 자격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민(ermine, 족제비의 일종)의 털은 순백이어서 비싼 털옷의 장식으로 사용된다. 어민은 자기의 털을 깨끗이 간수하는 것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이 본능을 이용하여 사냥꾼들은 어민이 사는 곳의 출입구에 더러운 물질들을 발라 놓는다. 어민은 오물이 없는 한 입구에 사나운 사냥개가 버티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털을 간수하기 위해 깨끗한 입구로 나온다고 한다. 즉 몸을 더럽히느니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다.
2. 생명책에 이름이 흐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자녀됨의 확실한 보장의 말씀입니다.
3. 하나님 아버지 앞에 시인한다. 주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는 그날까지, 심판의 자리까지 함께 동행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꿈의 교회 성도 여러분,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살아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면, 죽은 교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장하는 것 같고, 바쁘게 움직이고, 모이기도 많이 모이고, 큰 건물도 몇 천억씩 들여서 짓고 있지만, 주님은 그 교회들을 향하여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실까요? 모든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 라는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꿈의 교회는 투산의 사막땅에서, 성도도 몇 되지 않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기관도 없습니다. 여선교회 남선교회도 아직 없습니다. 교회가 약해서 성도들이 부담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 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였는데, 주님께서 너희교회는 죽었다라고 하시면, 다른 교회보다 더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교회는 반드시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 혼자 되지 않습니다. 온 성도가 같이 같은 마음, 같은 말, 같은 소망을 가지고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자는 성도들이 아닌, 늘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어서 주님 오심을 놓치지 않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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