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예수여 오서옵소서
요한계시록 1장 1-3
22장 1-7
20불
짜리 지폐와 1불짜리 지폐가 일생을 다하고 폐기되기 위해 연방은행에 들어가게 되었다. 분쇄기를 앞에 두고 둘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회고합니다.
20불짜리 지폐 왈:
짧지만 보람찬 인생이었네.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참으로 많이도 다녀 봤지.
식당, 술집, 호텔, 백화점, 보석상... 안가본
데가 없네.
라스베가스도 가 봤고, 크루즈도 타 봤다네.
자네는 어땠나?
1불짜리 지폐 왈:
나도 마찬가지야.
여러 군데 바쁘게 많이 다녀 봤지.
침례교, 감리교, 천주교, 안식교, 회당, 구세군...
하여간 교회란 교회는 안다녀 본 데가 없이 다 두루 구경했다네.
작년 세계적으로 경제가 Slow Down 하면서 가장 인기 있었던 책은 경제에
관한 책이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만 하면 먹고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의 시대라고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돈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아야 돈을 벌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경제에 관한 책은 앞날을 예측하는
책이 대세라고 합니다. 앞으로 금값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해서 금을 사두는가 하면, 아랍산유국의 동향을 파악해 오일값을 예측해 오일에 투자를 하고, 지구가 환경재앙으로 인해 흉년이 있을 것을 예측해 곡물에 투자를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앞다투어 앞날을 예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우리의 신앙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성경에 나온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준비하는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노아는 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요셉은 7년 흉년을 대비해 곡물
창고를 지어 대비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 성전건축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생각이 아마 한시도 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면서, 중간 중간 내가 예루살렘에서 죄인들의 손에 팔리워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우리의 앞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젠가는 우리의 인생도 끝이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영화가 전개 되면서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드라마를 보면 더욱 궁금합니다. 주인공이 어떻게 될까? 죽을까? 살까? 저 커플이 이루어질까? 아님 불행하게 끝날까? 어떤 때는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반드시 끝나야 하듯이, 성경은 모든 만물에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창세기는 이 모든 만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책이라면 계시록은 세상이 어떻게 끝날것을 말씀하고 있는 책입니다. 만물이 어떻게 끝나겠습니까? 베드로후서 3장 7절에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만물이 불로 멸망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언제냐? 예수님이 이땅에 다시 오실때가 세상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이 계시록에 집중되어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 언제가 가장 재미있습니까? 마지막 장면이죠.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에도 감독들이 마지막을 어떻게 끝을 내야 고민을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우리의 인생드라마가 아름다운지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 시작은 그럴 듯 하게 잘 시작했지만 마지막이 너무 안좋게 끝을 맺은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있습니다. 구약에는 대표적으로 사울왕을 들수 있습니다. 사울왕이 처음에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지 삼상 9장 21절 보시면,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려 하니 사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겸손함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교만하여져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가룟유다를 보십시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영광스런 12명에 들었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신뢰성이 있었기에, 돈궤를 맡고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비참하게 자살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오늘은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 계시록의 주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입니다. 1장부터 22장까지 다 읽은 다음 결론은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크리스천을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까? 마태복음 15장 1,5,10절 보시면,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5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잘새, 10절-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다힌지라…………예수님이 우리의 신랑되시고, 우리의 그분의 신부이기에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신랑을 기다리지 않는 신부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기다리지 않는 신부는 부정을 저질렀거나, 애정이 식은 신부입니다. 주님은 이런 신부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준비된 신부는 주님 오실때 공중에서 주님과 함께 혼인잔치가 벌어지며, 천국으로 우리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렵 혀진 신부는 준비하지 않았으므로 잔치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이 땅에 그대로 남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시록은 왜 쓰여졌습니까?
1절보시면,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말씀합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며, 속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일어날 수도 있고 안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히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그런거 신경쓸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도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밭아 나가봐야 하고, 소를 시험해야하고, 장가가야 하고 모두가 바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어김없이 반드시 속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시록은 누구에게 전달하라고 쓰여진 책입니까?
계시록은 예수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에게 주님이 오심이 가까웠으니 읽고 예수님 믿으라고 쓰여진 책이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계시록 22장 16절 보십시요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자, 누구에게 쓰여진 책입니까? 교회에게 쓰여진 책입니다. 왜 쓰여졌다고요? 장차 일어날 일을 보고, 준비하라고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때에 우리 주님의 관심은 온통 교회에 있습니다. 왜입니까? 교회가 주님의 신부로 마지막에 들림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혼은 앞둔 신랑의 관심이 온통 신부에게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합니까?
말씀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7절 말씀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라라” 주님이 오셨을 때 내 말대로 살았는지 살지 않았는지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까? 내가 속히 오리니 내 말을 믿는자가 복이 있다가 아닙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 말을 공부하고 달달달 외우는자가 복이 있다가 아닙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말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순종하며 사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보시는 것은, 주님은 다른 것 보시지 않습니다. 너희가 내 말대로 살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를 보십니다.
요즘의 크리스쳔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요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 땅에서는 위로를 받을지 몰라도, 주님 앞에 섰을 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위로가 올무가 되어 주님앞에서 섰을 때 벗어날 수 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본주의 크리스천’ 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분명히 말씀에 나와있는데도 불구하고 ‘아, 이건 그런 뜻이 아니야’ 라고 스스로 편하게 해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걸레조각으로 만드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말씀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 주님 제가 정말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심각한 말씀입니다. 지금 많은 신자들이 ‘주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천국 간다’ 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봅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천국 갈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마태복음 7장 21절에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성경에 종이가 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고 너무 편하게 살면서 천국 간다고 기대하시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살아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부담이 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말씀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천국으로 날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두 날개가 필요한데, 하나는 믿음이란 날개고, 다른 하나는 회개라는 날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회개는 말씀을 지키다가 지키지 못할 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오직믿음으로 천국 간다는 복음은 반쪽짜리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꿈의 성도님들은 말씀을 바로 알고, 지키며 나갈 때 주님앞에 올바로 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요한계시록 22장에는 ‘I am coming soon’ 이라는 구절이 3번씩 거듭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심은 장래에 벌어질 분명한 사건입니다. 20절 보시면 제일 마지막으로 ‘내가 속히 오리라’ 말씀하실 때 요한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너무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가 주님이 오신다고 하기에 즉시 오서오세요 라고 하는 뉘앙스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주님 아직이요, 아니면, 주님 지금은 안돼요 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말씀대로 살며, 때로 그렇게 살지 못할 때에는 눈물로 회개 하며 준비한 사람은 주님이 기다려 지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모두다 말씀을 지키며 준비하는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설교자의 창고 > 비전나리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받는자 밖에 요한계시록 2장 12-17 (0) | 2012.12.23 |
---|---|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 8 - 11 (0) | 2012.12.23 |
마지막 때 3 : 생명나무에 참여하기까지 계시록 2:1-7 (1) | 2012.12.23 |
느헤미야 7장 설교 (0) | 2012.12.22 |
끝까지 사랑하자 시편 109편 1-8 (0) | 2012.12.22 |
위기가 찾아 온다면 시편 102편 1-7 , 23-28절 까지 (0) | 2012.12.22 |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시편 95 편 전체 (0) | 201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