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굴의 교훈
시편 57편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이 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면서 쓴 시입니다. 삼상 21:15-22:1 절 보시면, 다윗이 블레셋에서 잡혀서, 미친광이인척 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숨은 곳이 아둘람 이라는 동굴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신히 목숨을 건진 다윗에게 또다른 위기가 찾아 온것입니다. 사울이 밖에서 다윗이 동굴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꼼짝없이 독안에 든 쥐 같은 신세 였습니다. 피할데도 없고 언제 죽어도 죽겠구나하고 다윗은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이 순간 만큼은 죽음을 초월해서 캄캄한 동굴에서 펜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지만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이 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안좋냐면, 4절 보십시요. “내 영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자신이 사자들에 둘려 싸여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 바로 직전이라는 것입니다. 6절 보시면, 다윗을 잡으려고 그물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디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1절 보시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기” 원한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주의 날개 아래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요, 예전에 보시면 논에 집단을 겨우내내 쌓아 놓는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 집가리가 불이 낳는데, 암탉이 까맣게 타죽어서 발로 툭 차니까, 그 속에서 병아리들이 와르르 기어 나오더랍니다. 암탉의 날개 그늘도 이렇게 안전한데, 우리 주님의 날개 그늘은 얼마나 안전하겠습니까?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의 삶속에서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그물처럼 앞에 진을 치고 있다면, 가장 안전한 장소인 십자가 그늘 밑으로 달려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는 승리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도피성”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악한 동기가 없이 실수해서 사람을 죽였을 때 피해자가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자를 찾아다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피하여 살 수 있게 만든 장소가 이 도피성이었습니다. 이 도피성은 제사장에게 속한 땅으로 살인자가 이 성문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와서 잡지 못하고 죽이 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보복 자가 뒤 쫓아 올 때 이 죄인은 얼마나 빨리 뛰어가겠습니까? 그 성에 들어가기만 하면 안심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우리의 도피성이며, 날개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주님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시를 쓰면서 아마도 이렇게 쫒겨 다닐 바에야 주님 계시는 영원한 천국에 가면 더 이상 도망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지게 되면, 붙잡고 있는 현실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전능 하신분을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마음께로 마음을 향하는 것을 가지고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라고 두번씩이나 거듭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마 이러한 순간에 하나님께 결단하지 않으면 시기였을 것입니다. 확정된 마음이 어떤 것인지 한국의 신학자 박윤선 박사님은 다윗에게 있어서, 확정이란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다윗은, 한번 죽을 것을 각오하고 또 그것에 대하여 마음을 준비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확정이란 주님을 믿고 안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다윗이 죽을 각오하고 마음에 안심을 찾았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토록 하고 싶은 찬양이겠죠? 이 찬양은 음악이 아닙니다. 찬양은 리듬이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찬양입니다. 오늘 9-11절 보십시요. 마음껏 하나님을 높이면 찬양합니다. 이찬양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캄캄한 동굴에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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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 있어서 이 아둘람 굴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큰 교훈을 준 장소였습니다. 우리 꿈의 성도님들에게도 이러한 아둘람 굴 같은 장소에 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매일 아둘람 굴입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라고 하는 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굴이 있슴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 굴이 없으면, 우리는 교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굴이 있기에 주님이 계신 곳을 사모하며 십자가 아래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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