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4월25 주일예배 가이사랴빌립보의 신앙고백 마 16장 13-19

by Peartree 2012. 12. 20.

영원한 논리와 황제의 논리

 

마태복음 16장 13-19

 

본문은 시기적으로 3년반에 걸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주님께 남은 사역이 있다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스라엘의 지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도시는 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두개의 호수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제일큰 호수로서 사해가

있습니다. 이 사해는 남쪽에 위치해있고, 그 옆에 예루살렘 수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호수 또는 디베랴 바다라고도 하는 호수가 북쪽에 있고 그 옆에

나사렛이란 동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 사역은 거의 이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내려 오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정반대 방향인 북쪽의 가이사랴빌립보 지방에 이르렀다고 1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가신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위치적으로 이스라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호수는 없지만 해발 345m 의 헬몬산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 수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라는 왕이 이곳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로마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랴의 이름뒤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도시이름을 '가아사랴빌립보' 라고 지었습니다.

당시의 로마 황제의 칭호를 붙인 도시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도시에나 황제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시에 황제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 했습니다.

첫째, 로마 황제의 위용에 걸맞는 규모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조그만 도시에다 황제의 이름을 붙이면 황제에 대한 모독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반드시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자리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이사랴빌립보' 란 도시는 한마디로 거대한 도시였으며 도시에 들어서면 황제의 신전이 인간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도시에 예수님의 일행이 나타난 것입니다. 황제의 도시 사람들에 비해 갈릴리 빈민 출신의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색은 유행과 세련에 뒤떨어진 마치 거지 같이 차림이 옹색했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황제 신전의 문지기가 훨씬 더 값진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엄청나고 거대한 도시의 한 복판에서 행색이 남루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좀 물으실려면 병자나 귀신들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내가 누구냐?' 라고 물으실 일이지, 하필 거대한 신전과 동상들이 있는 도시에서 물으셨을까요?

이렇게 세상에 위대한 것들이 있는데도,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는지 제자들에게 그 대답을 듣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갈릴리 촌구석에서 드려진 것이 아닙니다. 황제의 신전이 인간을 압도하는 황제의 도시를 배경으로 주님께 드려진 고백이기에 더 위대한 것입니다.

 

저는 북한에 다녀온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덜 강요한다고 들었는데, 몇 년전만 해도 북한에 관광을 가면 목사든 누구든, 김일성

동상앞에 줄을 맞춰 서야 하고, 북측 안내원의 구령에 맞춰 한번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말에 의하면 그 거대한

동상 앞에 서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 작아지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 질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거대한 황제의 신전이 보이는 도시에서 주저함 없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저 신전의 안쪽에 거대한 동상이 구원자가 아니고, 비록 거지 같은 몰골일 망정 나사렛 예수가 구원자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개의 새끼는 언제나 개의 새끼입니다. 부자의 저택에서 사람보다 더 비싼 음식을 먹으며 호강한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논리로 사람의 자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입니다. 심지어 거대한 신전에 앉아 있는다 할지라도 사람인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역시 응당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초라하게 우리 앞에 서 있을 지라고 그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고백은 오늘날 거대함과 부유함을 따라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도전을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에 주님은 너무기쁘셔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세가지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1.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친히 세우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이 반석위는 반석과도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18절 보시면 누구의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까? 내 교회, 예수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고, 교회의 머리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인 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 세상을 압도하는 거대한 황제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주님의 논리를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이 거대하고 크게 보여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세상이 편안하고 부유해도 상관없습니다

이 교회는 거대한 황제의 신전 같은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초라하고 보잘것 없어 보일지라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모임

이기에 베드로처럼 절대 주눅들지 않고 담대하게 주는 살아계시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John Wesley) 선생님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주님과 교통하며 기도하다가 깊이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복음 운동인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였나 보군요. 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이번에도 천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이오?" 천사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인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것이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진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1. 18절 –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천명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어찌 죽음의 권세 혹은 사단의 권세가 교회에 득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단은 교회를 향하여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분열입니다. 어찌됐든 모이면 교회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교회를 흩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분열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역시 그 속에 '가이사랴빌립보' 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황제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단은 교회가 거대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만 추구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교회가 유명해져야 한다는 인기주의를 추구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꾸 이 황제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힘을 잃게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힘은 예수그리스도를 추구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꿈의교회가 주님 한분이면 충분한 교회가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주님께만 초점을 맞추어 그분을 추구하다 보면 세상이 거대한 신전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1.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고 푸는대로 하늘에서도 그대로 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응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로마 카톨릭에서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로마 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풀 수 있다는 천국가는 티켓을 팔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면죄부라고 부릅니다. 그 교황의 직인이 찍힌 종이

한 장만 사면 이 땅에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며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돈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성 베드로 성당을 20년동안 지었습니다. 마치 가이사랴빌립보에 있는 황제의 신전 처럼 지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외관에만 치중할 때 주님은 밖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계신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들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까?

열쇠는 어느곳에 들어갈 때 참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밖에 나갔다 집으로

들어 오기전에 주머니에 열쇠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열쇠를 준비를 합니다.

마태 복음 3장 2절은 세례요한이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한 내용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4장 17절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한

내용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천국의 열쇠는 '회개' 입니다.

거의 대분분의 신학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회개한 사람이 가는 곳이고 지옥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교회는 회개의 눈물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변화가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건물이 큰 교회가 변화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큰 동상이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한 순간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 당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은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스라엘의 많고 많은 도시와 마을 중에서 황제의

도시인 '가이사랴빌립보' 를 택하시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질문을 던지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압도하게 만드는 거대한 신전과 동상에 앞에서 황제의 논리를 뛰어 넘어 보이지 않는 영원한 논리를 제자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영원한 논리를 발견하면, 앞에 서있는 예수님이 아무리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을 지라도 그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꿈의 성도님들이 이런 영원한 주님을 발견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