찿아 구원하여
누가복음 19장 1-10절
3일 동안 굶은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어설프게 쭈그리고 있는 토끼를 보고 한 발에 낚아챘습니다. 이때 토끼가 호랑이를 째려보면서 한 마디 합니다. "이것 놔 짜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호랑이는 얼떨결에 토끼를 놔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상상도 못할 황당한 말에 호랑이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로 방황하던 호랑이는 드디어 또 그 토끼를 발견하고는 역시 한발로 낚아챘습니다. 그러자 토끼가 말합니다. "나야 짜샤!" 또 다시 충격에 휩싸인 호랑이는 그 토끼를 놔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호랑이는 다시는 절대 놓아주지 말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토끼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겁없는 토끼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다른 토끼였습니다. 호랑이가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있는데 이 다른 토끼가 던지는 말에 호랑이는 그만 쇼크를 받아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토끼가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소문 다 났어 짜샤!"
소문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소문에는 좋은 소문도 있지만 좋지 않은 소문도 있습니다. 이 소문을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세리장이며, 부자인 삭개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매국노 같은 사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로마에 빌붙어 세무서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지워 그중의 일부는 로마로
일부는 자신의 주머니로 착복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여리고를 통과하신다는 소문이 삭개오의 귀에 들린것입니다. 복음이 들린것입니다. 기쁜소식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삭개오는 권력도 있었고, 부요함도 있었고, 무엇하나 부족하것이 없어보이는 사람 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에게 말 못할 영적인 공허함과
가슴 한 구석에 사회로부터 소외감으로 인한 외로움이 늘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영적인 공허함과 외로움은 돈으로 권력으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통장에 수십억씩 있으면서도 그 외로움을 채우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쪽으로 달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것 같은 지점을 미리 예상하고 뽕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예수님이 지나 가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가 9절에 보시면,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같은 죄인 삭개오도 구원을 받게 되는데, 어떻게 해서 그가 주님으로부터 그동안의 모든 죄를 한 순간에 용서함 받을 수 있었는지 몇가지를 살펴보고져 합니다.
-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중대한 기회는 자주 있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인생의 가장 큰 기회를 붙잡은 사람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4복음서 보시면, 자기에게 오는 기회를 붙잡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비롯하여 12제자들이 기회를 붙잡은 사람들입니다. 12두해를 혈누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의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삭개오는 정말 그의 삶이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매국노라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의 돈을 빼앗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에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문으로 들어던 그 예수님. 누구든 그분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병이든 고침을 받으며, 좌절과 근심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그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고 오늘이 그 기회를 잡는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기회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옛날 희랍에, 그리스에 시락쿠스라는 거리에 이상한 동상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동상은 날개가 있는데, 날개가 어깨 죽지에 와서 달린 것이 아니라, 발에 가서 달려있어요. 그리고 앞머리는 아주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고 이 동상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 리스퍼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기회. Appotunity.
그대는 왜 날개를 발에 달고 있는가? 더 빨리 사라질 수 있도록.
그대의 앞머리는 왜 이렇게 무성한가? 내가 올 때 쉽게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도록.
그대의 뒷머리는 왜 대머리인가? 다시는 붙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기회는 그런 것입니다.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불신자들이 인생 살면서 예수 믿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모두가 후회를 하듯이 지옥문 앞에서 얼마나 후회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먼저 믿은 성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열심히 주님 섬길 기회도 많이 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교회 부담된다고 오지 않고 큰 교회로 향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작은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힘내십시요. 선데이 스쿨 없다. 유스그룹 사역자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요. 모자라는 많큼 하나님께서 친히 교육하시고 키워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작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가까이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사람들입니다. 이 기회가 여러분에게 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예수님께서 날 찾아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삭개오 이야기를 읽으면 성경의 이야기로는 참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삭개오라는 사람이 자기 권력과 자기 명예와 자기의 부를 가지고도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얘기인데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다 보면 결론이 바뀝니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이 내 앞에 지나가기만 해봐라,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 처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예수님을 불러야지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예수님께서 앞에 딱 뽕나무 앞에 오더니, 삭개오를 올려다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삭개오야. 이때 삭개오가 받았을 충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저분이 내 이름을 알아. 나를 만나지도 않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저 예수. 저분은 누굴까?
성경을 읽다 보시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마리아야.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귀신들린 여자, 욕심 많았던 여자. 그래서 이름도 막 달라 마리아. 막 달라 마리야. 그래도 그 욕심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여자. 그런데 예수님이 이 여인의 이름을 부르시고 만나주시고, 후에는 성녀로 변화됩니다. 마리아야, 삭개오야, 나사로야, 사람들의 이름을 개인별로 하나 하난 부르시는 예수입니다. 주님의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하나하나 다 아시고 지금도 나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여기쯤 읽으면 우리가 이 이야기는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란걸 알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고 싶어하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이것 아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시는 것 보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더 알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시는 것보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더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실려고 하늘 영광 다 버리고 내려 오신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오늘 삭개오 처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를 찾으시던 주님은 오늘도 나를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이부분의 이해를 돕기위해 적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들이 땅에 떨어진 곡식을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한 사람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곡식을 쫒아 먹은 새들이 하나둘씩 픽 픽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냥꾼이 새들을 모아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또 땅에 곡식을 뿌려 놓고 갑니다. 그것도 모르고 새들이 또 내려 앉아 곡식을 쫒아 먹습니다. 이 사람이 새들을 막구 쫒아버립니다. 너희들은 이것을 먹으면 죽어…그러나 이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날아갔다는 다시 땅에 내려와 곡식을 먹습니다. 한참을 했는데도 이 새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이 사람의 입에서 이 말을 합니다. 내가 새가 되어 새의 언어로 알려 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성육신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친해지고 싶어서, 우리를 더 알고 싶어서 오셨다는것입니다.
- 결단이 있었습니다.
5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삭개오야 속해 내려오라" 그리고 삭개오가 어떻게 응답을 했습니까? 6절에 보시면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님도 급하시고, 삭개오도 급합니다. 꼭 한국 사람 같습니다. 우리가 다 급한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그러나 신앙의 결단은 정말 느린 것이 이시대입니다. 교회한번 나오라고 하면 철뚝같이 약속하고, 그리고 못나간다고 하고, 사람의 진을 다 빼놓습니다. 오늘 삭개오 보세요. 예수님의 부르심에 바로 결단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결단도 그렇게 급하게 하실수록 좋아요. 신앙의 결단도 급할수록 좋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사람이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런지 알 수가 없다고. 그래서 오늘이 은혜 받을 만한 때고,바로 지금이 구원 받아아 할 시간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급할수록 좋아요.
어떤 목사님이 교인 한 분이 교회에 나왔다, 안 나왔다. 그러시는 분이 있어요. 신앙이 참 신앙이 없으니까, 가끔 나왔다, 안 나왔다. 그래서 한번은 찾아 갔었요. 전화 걸어도 안되고, 밤에 가면 있겠지, 밤중에 아파트로 습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무개 목삽니다라고 문을 두드리니까, 목사님 음성을 듣자 마자, 갑자기 조용해 지더래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그러니 어떻게 해요. 할 수 없이 아무개 목사 다녀갑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다 성경구절을 하나 써놓았어요. 요한 계시록 3장 20절. 나중에 목사님 가시고 난 다음에 그 분이 문 열고 보니까 쪽지 하나가 있단 말이죠. 아무개 목사 다녀갑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이게 뭘까. 성경을 찾아보았어요.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리라. 좀 미안했겠죠.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 교회에 갔어요. 그래도 차마 목사님 뵙기는 어색하고 그래서 목사님 사무실에다 이 교인이 쪽지 하나를 남겨놓고 갔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도 오늘 교회 다녀갑니다. 그 아래에다 창세기 3장 10절 그랬대요. 목사님도 희한하거든요. 교회는 가끔 나오는데 어떻게 창세기 3장 10절을 다 알까. 그래서 뭔가 목사님도 찾아 보았더니, 창세기 3장 10절에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삭개오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가정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오시자 마자,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셔다 놓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누구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습니다.
요즘 사업 잘한 사업가가 자기 재산의 한 4분의 1 정도를 환원하는 것은 훌륭한 사업가의 윤리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4분의 1 정도가 아니라,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겠다고. 이게 사실이라면 변한 거죠. 이 사람은 굉장히 변한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이 사람을 앞에 놓고 예수님이 너 재산 절반 나눠. 앞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 뭐 이렇게 소위 도덕적인 설교를 한 것이 아니예요. 너 이제부터 착한 사람 돼야 돼. 이런 말씀하신 것이 아니예요. 이런 도덕적인 윤리를 설교하지 않았는데도, 이 사람이 자발적으로 인생을 바꾸겠다고, 선언합니다. 진정한 결단의 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회개는 말로만 용서하여 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된 것을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잘못 산 것을 고쳐놓는 것입니다. 형제와 화목하기 전에 제단에 예물을 가지고 나오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진정한 회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죄인이 있었으며,
그 죄인이 주님을 만나야 사는데, 주님께서 친히 찾아가 주셔서 만나 주시고,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그 사랑에 우리는 지나온 날 들을 회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고,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그 말을 바꾸면 이런 얘깁니다. 오늘 네가 구원을 받았고, 오늘부터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하나님의 딸이야.
너는 이제 죄 용서받았고 하나님이 아들과 딸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토록 바라는 것이란다. 주님은 이 삭개오 이야기를 통하여 아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 우리를 계속해서 대화하시고 알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새들처럼 주님을 피하여 달아나지는 않았는지. 주님 붙들기 원합니다.
- 우리의 삶가운데 아직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시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늦기전에 주님과 결단하길 원합니다.
바빠서, 힘들어서, 게을러서, 마음이 없어서, 결단력이 부족해서………. 여러가지 문제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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