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서 난 의
로마서 9:30-10:10
어느 임금이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초대장에 왕을 위해서 가장 많이 헌신한 한 사람을 뽑아서 큰 상을 주겠다고 써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왕이 자기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얼굴에 화장을 하거나 멋있게 차려 입고 왕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잔치 중간에 약속한 대로 왕을 위해서 가장 많이 헌신한 한 사람을 뽑는 순서가 되었는데, 왕은 신하들을 시켜, 손님들의 손을 다 조사해서 손이 가장 거칠은 한 사람을 뽑아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뽑혀 왔는데, 다름 아닌 왕궁에서 일하는 청소부 할머니였다는 것입니다.
이 할머니의 두 손은 평생을 왕궁에서 힘든 노동과 청소를 하느라,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임금은 그 노파의 거칠은 두 손을 보고 이 할머니야 말로 나를 위해 가장 많이 헌신하고 고생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큰 상을 베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황제와 청소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요, 부활하신 주님을 몰라보는 제자들에게 “내 손과 발을 만져 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자기를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는 “내 얼굴을 똑 바로 잘 보라” 고 할 텐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내 손과 발을 만져 보고 나 인줄 알라” 고 하셨어요.
이것은 아주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얼굴이 비슷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 주님의 모습과 닮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과 발의 흔적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주님의 징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 손과 발을 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흔적은, 우리를 주님과 연결시켜주는 고리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헌신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2절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본래 사도바울은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수치의 십자가고, 저주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힘없이 죽은 한 선동꾼이나 사형수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이 십자가를 이해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십자가가 나를 위한 죽음의 십자가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십자가를 확실히 믿은 사람이었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고 고백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속에는 유대인의 피가 흘렀습니다. 유대인들을 보면 내 동족이고, 동포였습니다. 그래서 늘 그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저들도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1-2절에 사도바울의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그러니까, ‘내가 유대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성령님이 증인이시다’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10:1절을 한번 찾아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사도바울의 소원은 유대인들이 구원 받는 것이었습니다. 동족들의 구원, 동포들이 구원 받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럼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있습니까?
1) 첫째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으라고 설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0:2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열심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방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9:32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6살부터 율법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읽고, 들어서 성경박사가 됩니다. 물론 그들의 성경은 구약성경입니다. 유대인들은 신약 성경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구약성경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Old Testament 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Old Testament 가 있다는 것은 New Testament 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구약성경을 Old Testament 라고 하지 않습니다. Hebrew Bible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경은 Hebrew Bible 밖에 없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복음이 집중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도 간혹 복음이 들어있지만,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또는 율법에 대해서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은 구약 39첩과 신약27첩을 잘 다려 먹어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구약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무지하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는 또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 보세요. 그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어요.
또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백성이라고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를 다 소유한 것처럼 여기고, 다른 사람을 소경으로 취급하고,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을 어두움에 있는 자, 어리석은 자, 어린아이로 취급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렇게 교만해져서 감사하지도 않고 스스로 자만하여져서 무익한 것들만 자랑하였습니다.
믿는 방법이 올바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9장 전체를 보시면, 바울이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8절에 보시면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리라”
유대인 혈통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9:7절에도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말씀합니다.
여러분, 올바로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얼마나 열심입니까? 우리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우리보다 더 많이 성경을 연구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중요한 한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야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을 그들은 놓치고, 지금까지 엉뚱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지 않으면 거기에는 구원은 없었습니다.
성경적 지식은 알기는 많이 아는데, 복음이 모르기에 그것은 죽음 믿음인 것입니다.
계란으로 말하면 무정란입니다. 병아리를 부화할 수 없는 죽은 계란이었던 것입니다. 그 계란은 사실상 생명이 없는 계란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것입니다. 복음이 없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올바로 믿어야 한다고 2절에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자기 의를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라고 설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이고 자기의 의는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의는 로마서 3:22절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의는요, 자기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지금의 유대인들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19:16절에 한 부자 청년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뭐라고 묻냐면,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묻습니다. 여기 보시면, 이 부자 청년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있었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의 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라 무엇인가 열심히 지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10: 9-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구원해 주시는데, 그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야 구원 얻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의로는 오히려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시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의 의를 내세웠습니까? 그러면서, 세리와 창녀는 죄인 취급했습니다. 사실 모두가 죄인인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를 한 개라고 내세울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께 말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워드 피트만이라는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 했는데,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말이었다고 그의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의로와야 얼마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습니까? 죄인이지요.
그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끝까지 믿음 변치 않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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