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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2월 17일 주일설교:외식하는 자들아 마가복음 7:1-9

by Peartree 2013. 2. 14.

외식하는 자들아

마가복음 7:1-9

 

2000년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과 가장 많이 충돌 했던 사람들이 외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식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외식이란 전통에 얽매이는 것 을 말합니다. 형식에 너무 치우치는 것 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어느 교회가 체육관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아이들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며 막 뛰어 놀았습니다. 그러니까, 보수적인 교회 장로님들이 어떻게 주일에 그렇게 뛰어 놀 수 있냐?고 하며 운동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쪽에서는 왜 안되느냐? 아이들이 주일날 모처럼 교회에 와서 자유롭게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됐느냐? 반발하니까,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절충안으로 내놓은 것이 그러면 운동을 하되 땀 나지 않을 때 까지만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땀이 나면 운동이고, 땀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우리는 율법주의 라고도 하며, 외식이라고도 합니다.

 

외식이란 겉모양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만 번지르르 하게 예수 믿는 것 같아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외식주의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 여러가지 법들을 지키느라 피곤하기만 하지,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사람이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 14절을 보시면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 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라는 바울의 고백을 볼 때 사도바울도 이같이 외식과 전통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여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과감하게 버려버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외식하는 자들에게 수도 없이 그렇게 외식과 전통을 경고하셨습니까? 외식은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사단의 전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성경 읽는 것, 교회 가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마지막 무기가 바로 외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기도를 외식으로 하게 하고 성경을 외식으로 읽게 합니다. 교회 출석을 외식으로 하게 하고 봉사를 외식으로 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6:5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러니까, 외식이 뭐냐 문제냐면,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속은 썩은 것이 문제인것입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믿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건 자기과시였습니다. 성경은 열심히 읽는 것 같아 보였지만,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 읽은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의 한국기독교목회자 협의회 에서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습니다. 어떤 조사였냐면 왜 교회에 가십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응답자의 39%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32%가 구원 받기 위해서, 19%가 건강, 재물, 성공 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라고 답한 32%를 제외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와 축복 받기 위해서라고 답한 58%는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고, 교회 출석하고,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 겉모양은 그리스도인들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구원은 없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왜 외식과 전통에 빠진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하냐면, 첫째는 복음서에 그런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단에게 자주 속아 넘어 갑니다.

성도들 간에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오해하게 만들고, 질투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의 뒤에는 사단의 힘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속아 넘아 넘어가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을 욕하고 돌아서도요,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는 사람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외식과 전통에 사로 잡히면, 그것이 최고로 믿음 생활 잘 하는 것인지 알고, 절대 남의 말 듣지 않습니다. 옆에서 제대로 알려 주면, 너나 잘 믿으라  ‘고 합니다.

제 예기가 아니라 성경에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올바른 길을 그렇게 알려주어도 눈도 꿈쩍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예수님에게 이단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같이 살면 구원 받지 못하고, 자기들 같이 살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외식과 전통 따지다가 다 지옥에 갔습니다. 그래서 외식과 전통에 빠지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외식과 전통이 왜 위험한 것인지 본문에서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재로 외식과 전통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았어요. 그리고 5절을 보시면 이들이 예수님께 와서는 따지듯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8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말씀합니다.

 

우리가 바깥의 것에 집착하다 보면, 안쪽의 것은 소홀히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치다 보면, 그 내용은 소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손을 안 씻고 떡 먹는 것 을 가지고 시비를 거냐면, 그것이 전통이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거룩한 마음으로 나아간다는 상징으로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겐 손 씻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손을 씻음으로 해서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 간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이 되다 보니까, 어느새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손만 씻으면 마음도 깨끗해졌거니 생각하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전혀 하나님께 있지 않은데도, 손만 씻으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이고 외식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세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여러분! 이렇게 전통과 형식, 외식에 사로 잡히면, 하나님 만날 수 있습니까?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없어요. 그래서 이 전통과 외식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이 전통과 외식을 지금까지 죽어라 지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시죠? 유대인들입니다.

 

지금도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습니다. 좀전에 땀나면 운동이다 라고 말한 어느 교회의 장로님들처럼, 지금도 유대인들은 겨드랑이에 땀 나면 노동이라는 법을 만들어 놓고, 그거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되도록이면 거울도 보지 않습니다. 거울 자꾸 보다 보면, 머리 만지게 되고, 머리 만지다 보면 겨드랑이 땀이 나면 노동이라 큰일 납니다.

0.3 Mile 이상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퍼도 안식일은 피해서 아퍼야 합니다. 아니면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합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문제입니다. 계단에 올라가다가 겨드랑이 땀나면 안돼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옭아매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요한복음 8:32절에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는 주 안에서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자유 하다고 해서 막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사단이 만든 전통과 외식에 대해서 만큼은 해방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전통에 얽매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도신경 외우는 교회만 고집하며 찾아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목숨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성스러운 예배당에서 왜 드럼을 치냐고 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왜 십자가가 없냐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안 해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드럼은, 시편에 모든 악기를 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술집에서 치면 세속적 악기가 되지만 교회 안에서 치면 찬양악기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도 없어도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피 공로는 전혀 관심도 없는데, 십자가만 걸어 논다고 하나님 기뻐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미국 개신교회들 가운데 십자가 없는 교회가 더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형식이요, 전통이요, 외식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묵도로 시작해서 축도를 끝나야 만이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1시간 내내, 울다가 일어나도 예배인 것입니다. 1시간 내내 찬양만 하다 헤어져도 예배인 것입니다. 어떨때는 1시간 내내 목사가 설교만 하다 시간이 없어 그냥 축도 없이 끝내도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으면 그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손이나 깨끗이 씻고, 껍데기 모습으로 앉아만 있는 다고 해서 예배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사야 1:11-12절을 보시면, 이렇게 전통만 지키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세요.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은 신앙의 겉모습 보다는, 신앙의 내용이 알찬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겉은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 주님 보시기에 알곡 같은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외식과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시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말씀합니다.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배도 오래 드리다 보면 예배의 전통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묵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축도로 끝나는 과거의 예배, 그것을 하나의 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예배 드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가다 보니까 전통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나를 드리는 거예요.

 

정말 찬양을 드릴 때 찬양의 가사가 나의 고백이 되어서 진심으로 찬양의 고백을 드렸는가 말입니다. 또 대표기도자 대표기도를 할 때, 함께 기도에 공감하며 하나님 그래요, 맞아요, 저 기도가 바로 내 기도예요.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세요.라고 함께 공감하며 기도했는지? 아니면 그냥 듣기만 하셨는지?

또 말씀을 들을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로 듣고 그 말씀 앞에 결심하고 작정하셨는지?

이게 예배를 드린 사람이예요. 이것이 진정한 예배자 인 것입니다. 여기에 전통있습니까? 외식이 들어올 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음 드리지 않고, 속이 Dry 하고, 가슴을 찢는 회개 없으니까, 겉모습에 치중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에 와서도 정말 중요한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근데 그건 관심 없고 다른 거에 관심 있으면 안돼요.

 

어떤 분들은 예배가 끝나면 주보의 글씨가 틀렸다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없는 것 같지만 그런 분들 있습니다. 다행히 저희 교회는 그런 분들이 없습니다. 저희 교회는 주보에 헌금하신 분들의 이름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인 교회들 중에 적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난주 십일조 했는데 왜 내 이름이 주보에서 빠졌냐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이름 빠졌다고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주보 작성하는 사람이 실수 했거니 생각하시고 넘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예요. 교회에 와서 예수님 만나지 못하니까, 죄없는 주보만 뚫어져라 살펴보다가, 철자법 틀린 거나 찾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전통에 얽매이다 보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손을 씻지 않고 먹었느니 안 먹었느니 하는 시시한 것 가지고 싸우기나 했습니다.

이렇게 전통에 얽매여 외식하게 되면, 예수님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도 분명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꿈의교회 만큼은 이 비본질 적인 것. 기독교 신앙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가지고 시간 낭비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속이는데, 이 중요하지 않는 것 죽을 때까지 잡고 있게 하다가 지옥에 떨어지게 만든다는 거예요.

전통과 외식은 사단에 철저히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전통과 외식에 자유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본질인 예수님만 끝까지 붙들고 있다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