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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면류관을 받아쓰기 위한 규칙들:고난 - 계 2:8-10

by Peartree 2012. 12. 26.

면류관을 받아쓰기 위한 규칙들:고난

계 2:8-10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한 규칙들'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거듭남' 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경기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경기 규칙을 잘 지킨 사람이, 천국에 반드시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고난' 이라는 소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의 말씀을 보시면, 당시에 서머나 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네 환난과 궁핍은 내가 안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가난으로 인하여, 힘든 생활고를 겪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가난하게 살았냐면요. 직업이 없고, 불경기라서, 가난했던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서머나 교회의 담임목사는, 사도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이란 분이,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는 '황제숭배' 를 강요하는 사회였습니다. 서머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황제의 동상 앞에 가서, '가이사는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것을 거부하게 되죠. 그래서 당시에, 서머나 교회의 담임목사인 폴리캅 목사님을 잡아다가, 화형을 시킵니다. 그리고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사업장은 빼앗기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도 다 빼았겼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적인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속 사정을 주님은 다 아시고는, 9절에, "네 환난과 궁핍을 내가 안다" 라고 위로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잣대로 보면, 네가 가난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지만, 내 눈에는 네가 부자로 보인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부자의 기준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일생" 이란 아주 유명한 장편소설을 쓴, 프랑스 작가 모파상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여자의 일생' 이라는 이 소설이 히트를 치면서, 일약 억만장자가 됩니다.

그후, 그는 지중해에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 노르망디에 대 저택을 있었습니다. 파리에는 호화 아파트를 갖고 쉴새 없이 애인을 바꾸며 살았습니다. 그의 은행에는 쓸수 있는 여유로운 돈이 항상 넉넉했지만 그는 안질병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1892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잃은, 그는 종이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 그는 정신 병동에서 몇 달을 알 수 없는 소리로 허공을 향해 절규하다가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의 무덤의 묘비명에는 그가 말년에 자주 말한 한 마디가 기록되어 있는데,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라고 묘비에 이 한 문장을 남기고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는 부자의 꿈을 이룬 것 같았으나 실상은 가장 처절하고 가장 가난한 인생을 살다 간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하고 처참하게 인생을 살다간 부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은 요즘, 한 달에 평균2,000명씩 자살한다고 합니다. 가난해서 죽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실상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풍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의 굶주림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그 반대로, "가난한 것 같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들"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삶을 살지만, 실상은 부요한 사람들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시는데, 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절을 보시면,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고난은, 가난으로 인하여 생기는 생활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고난이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돈 걱정 없는 세상, 모기지 걱정 없는 세상, 자녀들 걱정 없는 세상, 남편 걱정 없는 세상, 건강에도 전혀 걱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본적으로 Account 에, 100만불만 있고, 집은 페이오프 다 되고, 자녀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이 잘 되어 다니고, 하는 비즈니스는, 매달, 흑자를 내고, 다니는 직장은 한달 생활하기에 충분한 월급은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추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오늘 주님이 말씀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자 말고, 영적인 부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몇 달 전에, 북한의 성도들이, 남한 목사님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소개가 되어서, 남한의 목사님들을 많이 부끄럽게 한 편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기를, 남한에서, 북한에 식량을 원조하고, 남한에 있는 성도들이 북한 지하교회를 위해 기도함으로 해서, 그나마 북한이 굶어 죽지 않고, 지하교회도, 급속도로 성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그나마 크리스천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남한의 1천만 성도들의 기도덕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정도로 북한을 도울 수 있을 만큼, 남한이 잘 살게 되고, 크리스천 인구가 급증하게 된 것이, 북한의 남아 있는 성도들이, 남북이 분단된 이후 60년동안이나, 계속해서, 눈물의 기도였다는 것을 우리는 까마득히 몰랐던 거예요.

 

남한은 이제 잘 살게 되니까, 북한을 위해서 기도한지, 불과 10-20년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성도들은, 60년 동안, 남한을 위해 기도해 왔다는 거예요.

 

그 편지의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남한의 성도들이, 우리처럼, 배고파하지 않게 하여주세요. 우리처럼, 숨어서 예배하지 않게 해 주세요. 남한의 성도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이 기도를 60년 동안 한 거예요. 그러면서 끝에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우리가 남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전해주십시요"

아니, 지금 누가 누구를 염려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자유도 없고, 가난으로 찌든 그들이, 지금 자유롭게 잘살고 있는, 남한을 위해 기도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 진정한 부자입니까? 우리 주님의 눈을 보실 때에는, 분명히,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이, 훨씬 부유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도 얼마나 가난과 핍박이 심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황제의 동상 앞에 가서, '가이사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이 한마디 고백하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 되었습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며, 그들과 타협하며 살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자는 부자가 아니란 걸, 깨닫고는, 가난한 부자로 살기로 맘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받아 쓰려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는 다윗의 고백처럼, 이 고난도 내게는 유익합니다. 라는 고백으로 살아야 합니다. 혹시, 지금 고난 중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님 저는 영적인 부자로 살기 원합니다. 고백하시길 바래요. 그런 고백과 함께 고난의 삶 잘 견디어 살다가, 주님 만나는 그날에, 주님으로부터, '실상은 네가 부자였다' 는 그 한마디로 인하여, 면류관 받아 쓰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7년전에, 어떤 분이, 캐나다로 이민 와서, 주님을 만나고, 그 동안 겪었던 일을 간증으로 쓴 글이 있어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받고, 예수님을 믿으면 뭐든지 다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것이라 기대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말씀을 볼 때마다 갈등을 한 것은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누구도 세상적인 축복을 받은 자는 없었고, 오히려 핍박 받고, 순교하였으며, 어렵고 힘든 일만 겪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삶이 진정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인가...? 하며 고민했었지요.

 

그러나 이 곳 캐나다에 와서 7년을 지내는 동안, 육적으로, 심적으로, 영적으로 참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자녀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마음이야 고난을 좋아 하겠나요...? 모든 사람은 다 똑같지요.

그러나 편안함과 풍성함과 세상이 주는 축복이 나를 주님으로 부터 멀게 한다면

난 반드시 고난을 택할 것입니다. 이미 저는 고난을 통해, 그것이 정녕 축복임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 없이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다음에 부활의 영광이 있듯이, 모든 성도들은, 이 땅에서 고난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이 온다고, 주님 버리면, 지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저희 집은 과수원을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불필요한 가지들을 톱으로 자르고, 가위로 쳐냅니다. 만약에 나무들이 통증을 느낀다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그래야만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 고난을 감사하십시요. 지금 겪는 고난이, 훗날에, 면류관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에는 어떤 종류의 고난이 있습니까? 크게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고, 둘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은, 면류관과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당하는 고난 이예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이 허약해지고, 그래서 병이 나고, 그 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 그건 주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 아니 예요. 그런 고난은 상급이 없습니다.

 

오늘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철저히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겪어야 했던, 생활고였습니다.

당시에, 서머나란 도시는, 가난한 도시가 아니였어요. 아주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가내 수공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건강하면, 직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협회라는 것이 있죠. 음식점을 하면, 요식협회, 세탁소를 하면, 세탁협회, 의사협의회, 병원협회, 축구 협회, 등등. 교회도 교회 협회, 목회자 협회, 침례교 협회, 감리교 협회, 장로교 협회……

우리는 최소한, 이런 협회에 한 두개는 가입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무 협회도 들지 않았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백수협회' 가 있습니다. 놀고 먹는 협회에요.

 

이 협회를, 조합이라고도 하는데, 이 조합이, 당시에도 있었는데, 그것을 '길드' 라고 불렀습니다. 이 길드에 가입하면, 길드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협회의 Rule 이 있듯이 말이죠. 그런데 그 길드에서, 이방신전 앞에, 제물을 갖다 바치며 제사하고, 모든 조합원들은, 그 의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직업은 많았지만, 서머나 성도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주님을 위한 고난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손해 보는 거예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런거 신경 쓰지 않고, 일해서 돈 벌면 되요. 대신 면류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이방신에게 제사하며, 일 할바에야, 차라리 가난하게 살자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도 PCUSA 장로교단이, 동성연애를 지지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죄' 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Support'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보수성향의 장로교회가 그 교단에서 탈퇴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지금까지 500개 넘는 교회가 탈퇴해서, 'Fellowship of Presbyterians' 라는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500개 넘는 교회는 정말 용감한 교회들입니다. 교회가 교단을 탈퇴하려면요. 교회 재산, 건물 다 포기하고, 성도들만 나와야 해요. 그게 장로교 법입니다. 그래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손해보지 않겠다는 거예요. 고난 당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 포기하고 나오는 교회들이 그래도 많이 있다니, 좋은 일입니다.

 

요한 계시록 18:3절을 보시면, 이 동성연애로 인하여, 땅이 더럽혀 지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계 18:4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단체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손해가 보더라도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받을 재앙을 같이 받을 거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단이 동성연애를 지지 하지만, 나는 지지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라고 말합니다. 그건 그분 생각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서 나오라고 말합니다. 그들과 함께 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술집에 밤새 앉아 있으면서, 술만 안 마시면 되잖아요.' 하는 말과 같은 겁니다. 좀더 심하게 표현하면, '함께 도둑질 하며, 망만 보고 있었지, 물건만 손대지 않으면 되잖아요.' 하는 말과 같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그 '길드' 라는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사업도 포기하고, 직장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했던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려고 불이익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을 지키려고 불이익을 감수하는 성도가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최 우선 순위에 두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성도가 몇 명이나 되냐는 거예요.

오늘 성경은, 우리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불이익을 받아도, 기쁨으로 견디는 성도들이,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으로 점점, 믿는 성도들의 활동범위는 좁아 질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서머나 교회시대와 같은 시대가 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 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면, 그 때에,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될 것입니다. 우리 꿈의 성도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런 고난을 통과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