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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파도가 밀려올 때 - 요한복음 6:14-21

by Peartree 2012. 12. 25.

파도가 밀려올 때

요한복음 6:14-21

 

지난주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구운 생선두 마리로 남자, 장정만 5000명을 먹이시고, 12바구니를 남기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15절을 보시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다 아시고는, 15절에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의 차이점입니다.

 

몇 달 전에,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가수가 '약물중독' 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많은 연예인들이 마약을 복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의 그 허탈감이라는 것입니다.

무대에 설 때는, 세상이 자기가 최고입니다. 수많은 팬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면, 세상의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른 사람과 똑 같은 한 인간이거든요. 집에서 혼자 있으면, 그 화려한 무대가 너무 그리워서, 고독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인기가 떨어지고, 무대에 자주 서지 못할 때는, 그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약을 먹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살하는 것이죠.

 

지금 예수님이 이렇게,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수 만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니까,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어떻게 하십니까?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이모습이, 겸손의 왕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 기적의 사건이 있은 후에, 제자들은, 배를 태워,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라고 하시고는, 예수님께서는 수 많은 팬들을 피해 산으로 피하시다 시피 하신 것입니다.

사실, 피하신 것은 맞는데, 더 정확한 표현은,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시는, 화려한 무대가 마쳐지면, 주님께서는, 홀로,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습관을 따라 산에서 기도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배타고 가버나움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는 혼자 산으로 기도하시러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배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 가는 도중에, 큰 바람을 만나고, 파도와 싸우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셔서, 구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큰 바람과 파도 속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진리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몇 가지 찾아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큰 바람과 파도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도 고난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의 일을 하면, 형통하게 된다는 오해' 입니다. '예수믿으면, 잘 풀린다.' 그렇습니까?

'교회 다니는 집이 왜 그렇게, 하는 일마다, 안돼!' 라는 소릴 들으면,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있기는 한 건가? 아니면,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고 해서, 형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요. 형통과 복을 구분해야 합니다. 형통은, 무엇이든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업을 하면, 성공하고, 직장을 다니면, 금방 진급을 하고, 하는일 마다, 술술 잘 풀리는 것이 형통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형통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형통보다는, 영적인 복을 받습니다.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복 받았어!'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잘렸더라도,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요)

세례요한 같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할 일을 잃어버렸습니다. 형통이 아니라, 완전 불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저가,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보세요.

지난주도, 직장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 가진 것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 좇아 다니다가, 예수님 믿고, 영적인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셔서,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주일에도 일해야 된다면, 형통은 할지 몰라도, 영적인 복과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요, 이 형통이 복인 줄 알고, 주의 일 하면, 주님께서 가정도 책임져 주시고, 직장도 책임져 주시고, 부족한 것 하나 없이 해 주신다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은, 분명히, 다른 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먼저 가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100% 순종하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니,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가는 중인데, 최소한 파도는 일어나지 않아야 정상 아닙니까? 밤새 순풍이 불어 노를 젓지 않아도, 가버나움에 딱 도착해야지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더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불어 닥쳤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번이 아니예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주님께서,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복음만 전하면, 형통해야 되는데,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복음 전하면, 최소한 먹을 것은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먹고 살기 위해서, 천막을 만들며, 남의 집에 언쳐 살았습니다.

최소한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야 되는데 말이죠.

 

여러분, 주님께 순종했는데도, 고난은 온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니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다가, 뭐 좀, 잘 풀리지 않으면, 별거 아니네, 하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처음에는, 이런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닐 때는, 완전 형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후에, 잘 되었습니까? 평생, 집 한채 없이, 짐승처럼, 떠 돌아 다니다가, 십자가에 죽고, 불에 타 죽고, 단두대에 죽고, …… 이제 형통입니까?

 

우리는요. 좀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삶 가운데, 파도는 온다는 것입니다. 교회 오다가도, 딱지를 뗄 수 있고, 교회 다녀도, 장사가 잘 안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어렷을 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다 복을 주시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을꺼 아닙니까? 라는 철없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해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짜 믿음은, 고난 가운데, 폭풍가운데, 살려고 노를 저으면서, 눈을 들어, 주님을 찾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인 거예요.

 

  1. 그럼, 폭풍 가운데, 두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이런 고난 가운데서, 위대하신 주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위대하신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욥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했듯이, 고난은 우리에게, 주님과 더욱 가깝게 되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로켓을 타고, 달나라를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우주인' 이라고 부르죠, 이 우주인들이 하는 말이, 달나라에서 지구를 보는, 그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가 달을 보면, 달은 작고, 흑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가 엄청나게 크고 총 천연색이라 합니다. 그래서 달에서 지구를 보면, 왠만한 것은 다 보인다고 해요.

예를 들어, 만리장성이 육안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다를 보면,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한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그래서, '우주인' 들의 눈에는, 아리조나의, 그랜드캐년도, 캐나다의 록키산맥도 시시해 보일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던, 우주인들이, 달나라에 가면, 아하 ! 분명히, 이 우주를 만드시고, 조정하시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전능하신 손이 저 지구를 붙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연을 다스리시는 주님이 더 대단해 보이십니까? 아니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이 더 대단해 보이십니까?

죽어서 나흘이나 지나,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보고, 제자들이 더 놀랐습니까? 아니면,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더 놀랐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느 쪽이 더 놀랄 일이겠습니까?

 

마가복음 4:41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막, 배가 침몰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주무시다가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람을 꾸짖으시면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라고 하니가,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죽은자를 살리는 것과, 자연을 다스리는 것, 이 둘중에, 어떤 것이 더 대단한 건지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 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렸을 때, 제자들이 두려워했습니까? 놀라지 않았습니다.

'뭐 이정도 쯤이야, 매일 있는 일인데, 메시야면, 할 수 있지, 선지자면, 죽은 사람 정도는 살려야 되는게 기본 아니겠어'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을 다스리는, 예수님을 보고는, 완전히 놀라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19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 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과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주님과 떨어져서, 고난 가운데 있다보니까, 위대하신 주님이, 새롭게 보이는 거예요. 주님께서 그 배에 계속해서, 타고 계시는 상태에서, 자연을 다스리신 것과, 주님이 없는 상태에서, 물위를 걸어오셔서, 자연을 다스리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매일 먹은 밥도요. 풍요로우면, 고마운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매일 먹는 밥이, 마지막 남은 한끼 식사라고 생각해 보세요. 감회가 새로울 것입니다.

아! 이 밥 때문에 내가, 여태까지 살았구나!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고난은, 주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주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갔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영어성경은, 'three or Three and half mile'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폭풍 가운데, 3마일을, 노를 저었다는 것은, 거의 초죽음, 실신 직전이었던 것입니다.

아니, 살려주실 려면, 진작 일찍 오셔서, 구해주셔야지, 다 죽게 되니까, 나타나십니까?

 

왜 그러셨습니까? 이 모든 일이 오직 주의 은혜로만 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간사합니다. 만약에 무엇이든지, 쉽게 되어봐요.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도 우연히 되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동안 먹었던 약이 이제야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나았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운이 좋아서, 사람을 잘 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일이 풀렸을 때만, 하나님이 도와 주셨다고 말하고, 쉽게 문제가 풀리면, 그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고, 우연히 쉽게 풀렸다고 믿기 때문에, 주님은 나중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끝이야말로 하나님의 시작이 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실 time 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낙망하지 마십시오. 낙망한 그 순간이야 말고 당신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주님을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풍랑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바다는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야 정상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쉽지 만은 않습니다.

이 고난의 바다 같은, 세상가운데서, 우리가 붙들고 의지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주님이 우리의 배의 키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시면,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