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히 11: 32-40
현재 영국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이안 머레이 목사님이 쓴 [부흥과 부흥주의]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 책에서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 성도들과 세속전인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교회 안에 진정한 성도들 보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더 많아지다 보니까, 자연히 교회는 그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거룩성이 약화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엔 교회와 세상 사이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즘 교회 안에는, 겉 사람만 변화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속 사람이 변화 되려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고, 결국에는 그런 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 다운 교회가 되려면, 교회 안에 프로그램을 바꾸고,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 한사람 한사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때, 교회에 믿음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 진다고 말합니다.
즉,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한말 시대에 서양 문명이 막 들어올 때, 어느 대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비누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때가 잘 씻긴다고 자랑을 하며,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비누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때 독립 운동가 이상재 선생님도 있었는데, 이 분이 비누를 받아 들고는 갑자기 칼로 비누를 깍아서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비누를 준 대감이 "여보게 이 사람아 그건 때를 씻는 물건이지 먹는 물건이 아닐쎄" 라고 하자, "알다 마다요, 당신은 이것으로 얼굴의 때를 씻지만, 저는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겉으로만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은, 힘이 없습니다. 조금만 시험이 닥치고, 고난이 오면, 쉽게 믿음을 포기하고, 저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이 변화 변화된 사람들은, 강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하는 이상재 선생처럼, 어떤 시험과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믿음의 선배들을 여러 명 기록하고 있습니다.
32절을 보시면,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선지자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다가 죽어 나갔는지, 말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거예요.
성경은 이들이 믿음을 어떻게 지켰는지, 사연이 많아, 다 말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잠깐, 이 분들에 대해서 살펴보면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이 네 사람은 선지자는 아니고,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왕도 없었고, 선지자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무정부시대, 무지도자 시대, 그래서 자기 맘 내키는 대로 사는 시대가 그 시대였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타락했던 시대가 그 사사시대입니다. 그래서 왕이나 선지자가 없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임시방편으로, '사사' 라는 것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이끌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프랑스의 잔 다르크나, 한국의 유관순 열사 같은 사람들로 보시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했다고 할 지라도,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기드온의 300용사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의 용사들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 시대를 이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이 기준이 되어, 자기가 옳다 하면, 그렇게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교만한 상태고, 가장 위험한 신앙상태입니다. 그런데, 나라 전체가 거의 다가 이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그렇다고 목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사는 것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러한 시대에, 그래도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대도, 사사시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이 주인이 된 시대, 사사시대의 끝은, 사울이라는 왕을 세우면서 끝이 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사 시대와 같은 이 타락한 시대에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끝이 날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사사처럼 살겠다' 라는 각오를 하고 사셔야 한다는 거예요.
어제도 뉴스를 보니까,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들의 경선을 보니까, 미트롬니 라는 후보가, 오하이오에서도 선두로 달리고, 뉴햄프셔에도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미트롬니는 이 사람은 골수 몰몬교도 입니다.
예전에, 미국의 토크쇼인 래리킹 쇼에서, 래리킹이 lake wood church의 조엘 오스틴 목사와 이터뷰 할 때, 래리킹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미트롬니가 몰몬교도인데, 몰몬교도 기독교입니까?' 라고 질문 했을 때, 조엘 오스틴 목사가 '몰몬교도 기독교' 라고 생각한다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토록, 몰몬교의 대표적인 정치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미트롬니입니다.
하여튼, 이 사람이 공화당 대선주자가 되면, 오바마나 미트롬니가 대통령이 되는데, 무슬림 대통령이거나, 몰몬교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
미국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신앙은 뒷전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저와 여러분들은, 사사들처럼, 믿음을 지키며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사사들과, 선지자들이 어떠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는지 한 가지만 찾아 보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38절에 보시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5절부터 38절까지 이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과 고문과 학대를 받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렇게 당해보지 않아서, 우리의 선배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사실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35절을 보시면, 여자들이 "악형을 받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Torture' 그러니까, 이것은 고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고문을 당하면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이 빠지겠어요.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나 예수 안 믿겠다고, 배신하는 사람들도 나와야 고문 할 맛이 나는 건데, 하나도 무서워 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니까, 감당할 수 없었던 거예요.
여러분, 고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세요? 고문의 목적은 고통을 주고,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배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통을 줘서, 예수를 욕하고,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느 분이 미래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환상을 보고, 써 놓은 글이 있습니다.
때는, 7년 대환란 기간이었습니다.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문실로 잡혀 들어가 피부가 벗겨지면서, 죽어가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지금 당장이라도, 예수를 부인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놓아 주고, 그렇지 않으면, 피부를 벗기는 기계가, 피부를 벗겨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게 중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욕하고,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순교를 당한다고 합니다. 한번은 엄마와 아들이 같이 잡혀들어 온 거예요. 엄마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면 안된다. 라고 하며 신신 당부하며, 죽어갔습니다. 죽는 광경은 아주 끔찍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때, 고문하던 병사가, '예수를 부인하면 지금 당장 살려주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아들이 결심한 듯, '내가 지금 죽으면, 그 순간 나는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며 죽음을 택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고문하던 병사는 '나 이짓 그만 할래 하나 같이 죽음을 택하잖아' 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고문은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를 부인하게 만들어, 살려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군인들은, 죽음을 택하는 믿음의 성도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거예요.
사단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은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단이 감당하기 쉬운 그리스도인들, 또 다른 하나는 사단이 감당이 어려운 그리스도인들.
예를 들어요, 예배에 자주 빠지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이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불평 불만이 가득한 그리스도인들, 사단이 좋아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단이 귀에다 무엇인가 속삭이면, 그대로 듣고,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이 좋아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언이설로 꼬셔도, 꿈쩍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사단이 싫어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이런 그리스도인을, '세상은 감당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사탄의 고민' 이라는 글입니다. 사탄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만약에 사단이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글을 쓸 것 같습니다.
난 정말 그 녀석이 싫다.
그런 녀석은 처음 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를 열심히 하는 것은 인정한다.
거기까진 내가 봐준다.
하지만, 왜 기도를 1시간씩이나 하느냐 이 말이다.
도대체 기도를 하는 멍청한 녀석들은 이해를 못하겠다.
거기까진 내 인정한다.
그런데 왜 기도 내용이 그 모양 그 꼴이냔 말이다.
도대체 자기를 위한 기도가 별로 없다.
자기와 상관없는 다른 친구들을 위해 왜 기도하냔 말이다.
더 이해 못할 일은 그 녀석은
맨날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거기까진 괜찮다.
왜 말씀을 그렇게도 꼼꼼히 보냐 말이다.
대충대충 보고 대충대충 생각하면 될 걸 가지고 말이지,
더 환장하겠는 건..
그 읽은 말씀을 그대로 지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짜증나고 힘이 드는건..
그 친구에게 실패를 줬을때야.
실패를 주면 그 녀석은 더 잘 일어나는거야.
꼭 오뚜기같이 말이야..
부디 소망하기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단이 싫어하는 저와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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