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자
고후 5:20-6:1
어느 찬양 전도사님이 어느 주일날, 지방에 있는 모 교회에 찬양집회를 갔다가, 하도 화장실이 급해서 목사님께 인사도 못하고, 화장실로 곧바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 볼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가 옆 칸에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생각하기를 '그래도 내가 그리 유명한 사역자는 아니어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그래도 그렇지, 무안하게 시리 화장실 안에서까지 인사할 필요는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다정하게 "네, 안녕하세요?" 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했는데, 칸막이 너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인사만 건넨 것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식사는 하셨어요?" 라고 묻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도대체, 이분은 누구시기에 화장실에서 밥먹는 얘기를 하는걸까? 생각하며 찬양사역자 체면도 있고 해서, "네, 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밥과 우동으로 대충 먹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모르지만 그쪽은 식사를 하셨나요?" 라고 묻자, 그분의 대답에, 이 전도사님은 완전히 굳어 버리고, 잘 나오던 변도 멈추어 버렸다고 합니다.
옆 칸의 있는 사람이 뭐라고 했냐면, "저, 저기요, 전화 끊어야 겠습니다. 옆에서 이상한 사람이 자꾸만 말을 걸어서요"
이글의 제목이 '휴대폰 나빠요' 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 가급적이면, 화장실에서는 전화를 사용하지 맙시다. 이렇게 자기에게 말 거는지 알고 오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자' 라는 제목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지 말자' 라는 말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4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많이 고치셨는데,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 소경, 앉은뱅이, 심지어는요, 죽어서 장례 행렬을 가는 도중에, 관속에서 살아난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은지 나흘이나 되서,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병자 말고도, 마음을 고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리가 제자로 변하기도 하고, 창녀가 성녀로 변하고, 강도가 구원을 받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성경은 그 후에, 그들이 어떻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가, 5년후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요? 귀신들렸던 사람이 5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하시는 분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호기심이 없거나, 이런 거 생각할 틈 없이 바쁘다거나.
그런데 호기심도 많고, 시간도 남아 도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작가인데, 그의 이름이 '오스카 와일드' . 자주 들어보셨을 거예요. 아주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 나름대로 추리를 해서, 단편소설을 만들었습니다.
그 책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과거에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몇 년 후에 다시 만나는 장면을 추리해놓았는데,
한번은,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는데, 그에게 다가가 "나를 본적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네 그렇습니다. 저는 본래 앉은 뱅이였는데, 예수님께서 고쳐주셔서 이렇게 걷게 되었습니다. 제가 앉은뱅이였을 때는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 살았는데, 건강해지고 나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또 누가 나를 환영하지도 않고, 그래서 이러저럭 하다보니 타락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한 여자를 만났는데, 이 여자는 창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가가서는 "아니, 네가 창녀일때, 내가 너를 용서 하고 구원했는데, 아직도 창녀란 말이냐?" 하고 꾸중하듯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물론입니다. 제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되어서, 창녀 생활을 청산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고, 갈데도 없고, 할일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워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다시 옛날 직업으로 돌아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고 하죠.
또 한 곳에서 싸움질 하는 조폭을 만났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옛날에 장님이었는데, 눈을 뜨게 해준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네는 어떻게 해서 조폭이 되었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 죄송합니다. 저는 원래 장님이었는데, 주님이 눈을 뜨게 해 주었지요. 그때는 너무 감격하고 감사했지요. 그런데 눈을 감았을 때는 몰랐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까, 참 아니꼬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을 쓰나 보니 조폭이 되었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소설이지만,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까지는 너무 좋은데,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보다, 받은 그 은혜를 지켜가며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죠.
마라톤 선수가 중간에 아무리 잘 달렸을 지라도, 마지막 결승점까지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고 성령을 체험하고,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맛 보았을 지라도, 중간에 타락하면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3:3절에는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고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꾸중을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을 장거리 경주에 비유하며,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에게는요. 반드시 결승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Final Line 까지, 가야 구원을 받는 거예요. 최후 승리를 얻는 거예요.
저번에 제가 우리 이문자 성도님에게 '예수님 믿으시죠?'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럼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확신에 찬 대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전 매일같이 기도하기를, ' 하나님, 이 믿음이 끝까지 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끝까지 지키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헛되이 받지 말라' 라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까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공짜로 주었는데, 그 은혜를 잘못 알고, 오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잘못 오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 편지를 쓸 당시에,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요, '하나님의 은혜' 에 대해서 완전 'Misunderstand' 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어떤 교회였습니까? 너무나 많이 들어서 다 잘 아실꺼예요. 초대교회중에 가장 문제가 많았던 교회가 바로 이 고린도교회였데, 이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적타락과 우상의 제물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다 어디서 비롯되었냐면, '하나님의 은혜' 를 완전 잘못 이해 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 고린도란 도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는 지금의 '그리스' 라는 나라의 항구 도시인데, 지금의 '코린토스' 라는 도시입니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차타고 1시간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어디나 항구도시를 가면, 항상 두 가지가 성행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매춘이고, 또 하나는 미신입니다. 이 뱃사람들이 배타고 바다를 나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매춘이 성행했고, 또 바다에서 고기가 잘 잡히고, 폭풍이 몰아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바다 수호신이 있었습니다.
저도 바닷가에서 군대를 보냈는데, 한국에 가시면, 월성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읍천이라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군대안에 있는 교회를 다니지 않고, 주일이면, 군데 밖에 있는, 교회를 다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마을은 꽤 큰 마을이었는데, 교회는 단 하나였고, 성도가 100여명 됐습니다. 그런데 다 젊은 부부들이었어요. 그래서 참 이상하다. 이 젊은 사람들이 어부들인가 했더니, 이 사람들은 다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었고, 그 동네 사람들은 거의 없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토록 바닷가 도시는, 하도 미신을 믿어서, 크리스챤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고린도 도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미신과 매춘이 들끌었던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상에서 짓고 있는 죄들을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짓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들이 뭐라고 하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를 받았기 때문에 괜찮다" 라고 한다는 거예요. 우상숭배를 하고, 간음을 하고, 술 취하고, 방탕하고, 도박을 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다 용서함 받았다' 라고 한다는 거예요.
너무 많이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순종' 이란 책을 쓴 '존 비비어'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 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를 마치, 자신의 죄를 숨겨주는 큰 가리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분명, '목사님 !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지? 무엇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는데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십시요. 서두에 말씀드린, 문둥병자, 귀머거리, 소경, 앉은뱅이, 이 사람들이 고침 받는데, 그들이 한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보기에 불쌍하니까? 예수님께서 찾아 가셔서 고쳐 주신 것입니다. 병고침 받기 위해서는, 헌금하라고 하신적도 없고, 40일 금식하라고 하신 적도 없고, 밤새 철야기도하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냥 불쌍해서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사람들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들' 이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가 '하나님의 은혜' 에 반쪽입니다. 이 반쪽만 알고 있으면, 은혜만 받으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반쪽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 사단에게 속고 있는 거예요. 이 반쪽 은혜만 굳게 붙들고 있으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처럼, 하나님께서 무조건 용서해 주시겠지 하면서, 여전히 타락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입술로는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이라고 하며, '거룩한 삶' 을 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은혜' 의 나머지 반쪽이 무엇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보통, '구원 받았다' 라고 할 때,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것으로 구원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상은, 사단이 심어준 사상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게 만들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멸망으로 끌고 가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성도는, '타락하고, 방탕하며,' 그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는데도, '예수님을 믿었으니' 상급은 없더라도, 겨우 천국에는 들어가지 않냐? 라고 말합니다. 이건 천만에 말씀입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정말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살으라고 해도 살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안숙자 권사님에게, 하나님의 말씀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사십시요. 한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방탕하면서 '주님 사랑해요' 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너, 나를 사랑하는거 맞냐?' 라고 물어보신다는 거예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 같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1장에 보시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간 다음에, 예수님을 마주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똑같이 세번 물어 보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즘 한국 말로 바꾸면, '베드로야 ! 네가 나를 사랑하긴 한 거냐?' 옛날에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를 배신하지 않았느냐?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냐? 그러면, 앞으로는 절대로, 타락하지 말아라, 배신하지 말아라, 나를 사랑한다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나머지 반쪽은, 그 받은 은혜를 지키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폴워셔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의 반쪽은, 좁은문으로 들어가게 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십자가가 아니였다면, 그 문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은혜의 반쪽은, 좁은문을 통과 했으면, 좁은길이 나오는데, 그 길로 조심스럽게 가야하는 것이, 나머지 반쪽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좁은 길을 갈 때도, 내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주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하며,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가야 하는 길이 좁은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갈 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두개의 반쪽은혜가 합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반쪽 은혜만 철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좁은문만 통과하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두에서 '오스카 와일드' 의 소설에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타락한 사람들은, 반쪽짜리 은혜만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 반쪽 가지고는 천국에 까지 가기 힘들다니까요. 마귀가 가만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저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든 교회나 신학자들이나,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지금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마지막날에 관한 징조가, 하나로 집결되는 시대는 없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1:25-28절을 보시면,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 중에 곤고하리니, 그때에는 사람들이 무서워 하므로 기절할 것"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준비 안된 사람들이 허겁지겁 두려워 기절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 끝까지 붙들고, 지키며 살아가신다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가 되는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머리만 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사단도 어떻게 해서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나락으로 떨어 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방법중에, 가장 잘 먹히고, 그럴듯하게 써 먹는 것이, 이 두번째 반쪽은혜를 오해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 7장에 보시면,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는 믿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시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만 외치며, 구원의 좁은 길로 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은혜를 오해하고, 사단에게 속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반쪽 은혜만 붙들지 마시고, 다른 한쪽은혜까지 붙들고, 끝까지 말씀을 지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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