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게 실망하지 마십시요
눅7: 18-26
오늘 본문 28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 보다 큰 이가 없도다" 라고 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세례요한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자를 고치는, 능력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광야에서, 천국 복음을 외치는 광야의 걸인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낙타가죽 옷을 걸치고, 메뚜기를 잡아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까, 거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거지와 다른 것이 있다면, 천국 복음을 외쳤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외친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회개' 를 외쳤던 것이예요. 이렇게 말이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
또 주님께서 요한을 자랑스럽게 칭찬하신 이유를 찾는 다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요, 막 6:18절을 보시면, 그 나라의 왕인 헤롯이 지나가는데, 왕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것은 악한 일이다' 라고, 책망을 합니다. 지금 같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욕해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어제도 인터넷 영상에, 18살, 여고생이 70세가 넘은
대통령을 욕하는데, 보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시대는 언론의 자유다 뭐다 해서 괜찮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군주국가였습니다. 왕이 그 나라의 주인이었어요. 그래서, 왕에게 말 한마디 잘 못하면, 생명이 위험했습니다. 그런거 뻔히 알면서도, 요한은 왕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죽을 것 알면서도, 담대하게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이렇게 요한이 왕에게 담대하게 나아가, 그의 죄를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외치다, 감옥에 갇히게 되더라도, 분명히 능력의 예수님께서, 구해 주실 것' 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TV에서 '호랑이 잡는 사냥개' 라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잘 훈련된 사냥개 여러 마리가, 호랑이를 좇아가 잡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사냥개 여러 마리라 할 지라도, 호랑이 한 마리를 당해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냥개들이,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뒤에서, 주인이 Shot Gun을 들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뒤에서 봐주는 분이 있기 때문에, 제아무리 호랑이라 할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동물들도 알고 있던 것입니다.
지금 세례요한이 왕 앞에서, 그의 간음죄를 고발할 수 있는 그 담대함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그분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뒤를 다 봐 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요한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겁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본분 19절을 보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하라"
지금, 이 상황이 어떠한 상황이냐면, 요한이 헤롯왕의 심기를 건드려서, 감옥에 갇히 된 상태입니다. 감옥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꾀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능력의 예수님께서, 감옥을 부수든지, 간수들을 졸개 만드시던지, 아니면, 감옥을 통째로 옮기시던지, 하여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요한을 감옥에서 구해 주셔야 맞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께서 구해주러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면서 여쭤보라는 거예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맞습니까,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렇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임을 의심한 적이 없던 요한이었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 믿음이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의심하기 시작한 거예요. '주님이 날 사랑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분이, 진짜,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가?'
우리도 세례 요한 같을 때 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잘 풀려야 하는데, 자녀도 잘 되고, 사업도 잘되고, 건강도 해야 하는데, 하는 것 마다, 예수님께서 내 뒤를 다 봐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이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게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기는 하는거야?' 하면서, 예수님을 떠나, 다른 종교를 택하기도 합니다.
몇 년을 잘 다니다가, 사는 것이 별로 신통치 않고,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무어라고 하십니까? 23절 보시면,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너를 너를 도와 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나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할지라도, 내가 구원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실망하고 실족하고 돌아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몇 가지 찾아 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사람들이 왜 예수님에게서 실망하고 돌아서냐면, 사람들의 마음이 갈대와 같이,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26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똑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이 24절에 나와 있는데,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라고 질문하셨어요.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신앙의 중심이 없고, 환경에 따라, 자신의 이권에 따라, 그때, 그때 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적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번, 믿기로 작정했으면, 끝까지 가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한번 학교에 입학했으면, 끝까지 가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경주를 시작했으면, 결승점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행전 20: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마치려 함에는'… 중간에 포기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거예요.
목회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전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도중에 믿음을 버리고, 방학하고 있는 분들을 만날 때,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방학도 아닙니다. 방학은 개학 날짜나 있죠, 그러면, 저는 그분들에게 '다시 교회에 나오셔야죠?'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대답하기를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믿음생활이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하나가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믿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부득이, 교회가 없는 선교지나, 모이면 죽을 수도 있는 북한 같은, 아주 핍박이 심한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있는 곳에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죄를 멀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최소한 교회는 나오지 못하지만 이렇게 해야, 믿는 것입니다. 최소한은요.
그런데, 교회에 나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에서 혼자서라도 예배 드리지 않고, '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는 이런 이론은, 예수님도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목사님들도 이렇게 가르치는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론은 어디서 배운 교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단에게 속고 있는 다 '거짓교훈' 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단순한 '동의' 가 아닙니다. 즉 다시 말하면, '저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분을 믿었으면, 그에 따른 믿음이, 밖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은 예배로, 섬김으로, 헌신으로, 기도로,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갈대의 특징을 보면요, 갈대는 항상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똑 같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세면, 세게 흔들리고, 바람이 약하면, 약하게 흔들립니다. 철저히 바람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것이 갈대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 중에서, 삶의 환경에 철저히 지배를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중심이 없는 분들입니다. 믿음이란, 그때 그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이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교회 안에 자기와 친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덩달아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있어요. 중심이 없는 신자들입니다. 갈대와 같은 신자들이예요. 환경에 지배를 너무 잘 받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결정을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갈대와 같이, 흔들리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끝까지 달려가기를 원하신 다는 것입니다.
- 두번째로, 사람들이 왜 예수님에게서 실망하고 돌아서냐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똑 같은 세번의 질문중에 두번째 질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이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가 되려고, 요한을 따라다닌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너희들이 잘입고, 잘 살려고 세례요한을 따라 다녔다면, 번지수를 잘 못 짚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정말 떵떵거리고 잘 살려면, 저 왕궁으로 가야 맞는 것이다. 그곳에는, 어떻게 하면, 편법을 써서 돈 버는 방법을 알려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따라오려거든, 그렇지 않다.'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에게 오면, 잘 살기는커녕, 죄를 멀리 해야 한다. 간음자들은, 간음을 끊어야 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자는, 그것을 그만 두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며, 금하신 것들을, 지금 이순간 다 끊어야 한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니까, 무엇인가 기대를 하고 따라다녔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겠습니까? 주님을 떠나겠죠? 어! 내가 기대했던 교회는 이게 아닌데, 어! 내가 기대했던 목사는 이게 아닌데, 어! 내가 기대했던, 성도들은 이게 아닌데, 하며, 실망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23절에 '실망하고 떠나지 않는 것이 너에게 복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교회를 다니면, 복 받겠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그 복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복이 아니라,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영원한 천국에서 받아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엄청난 복을, 이 땅에서 누리는 시시한 복과 비교도 하지 마십시요. 주님은 우리의 성공과 번영을 위해 죽지 않으셨어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 그러면, 세번째로, 우리가 광야에서 무엇을 보아야, 예수님에게서 실망하고 돌아서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답은 '선지자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똑 같은 질문 세번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지금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시고, 직접 답을 하셨습니다. "옳다, 너희들이 광야에 나온 것은, 갈대를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부자들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선지자를 보러 온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찾아 나온 것이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 말씀에는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믿음 생활해야 되는 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하는 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이 진리의 말씀을 보지 않고, 자꾸 다른 것 보고 있으면, 결국 실망하고 떠난다는 것입니다.
남의 단점이나 보고 있고, 흠이나 잡으려고 하고, 반찬은 왜 이래? 건물이 맘에 안들어! 이렇게 본질이 아닌 것에 너무 많은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 결국 은혜를 받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세번째 질문에서 처럼, 우리는 선지자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당시의 선지자는 어떠한 사람이었냐면, 제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여러 번 말씀드리는데,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메신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역할이예요. 그래서, 이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강력합니다. '회개하라' '그렇게 살면 죽는다' '가던 길에서 돌이켜라' '안 그러면 재앙이 온다' 거의 이런 메시지들이 선지자들의 주로 한 말씀이었습니다.
보십시요.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 왕에게도 거침없이 말합니다. '네가 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오늘 주님께서, '너희들이 광야에 나온 이유는, 이런 선지자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나오지 않았느냐?' 묻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주일날 교회에 나온 이유는, 성공과 번영을 바라고 나온 것이 아니라, 너희 영혼을 살리는, 심령을 가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냐? 주님이 지금 묻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여나 ! 네가 부자가 되지 않더라고, 실망하지 말아야 된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세례요한을 보세요. 주를 위해, 광야에 걸인처럼, 목숨을 걸고, 복음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목이 잘리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복입니까?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절대 복 받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에게서, 또는 교회에서, 또는 목사에게서, 성도간에 있어서, 실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면, 복있는 자라고, 주님께서 보증해 주셨습니다.
사람을 보면, 다 실망할 것 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라구요? 선지자를 보아야 합니다. 즉, 천국 복음을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실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꿈의 교회 성도 여러분, 복은 다른게 복이 아닙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복입니다. 갈대처럼 흔들려도 안됩니다. 성공과 번영 기대하다, 실망해도 안됩니다. 내게 주신 이 환경을 감사함으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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