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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 히브리서:6-6, 창세기 5:18-27, 유다서 1: 14-15

by Peartree 2012. 12. 2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히브리서:6-6, 창세기 5:18-27, 유다서 1: 14-15

 

지난주에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16명의 믿음의 선진들 중에, 가장 첫 번째 인물인 아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아벨의 믿음은 산 제사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두 번째 믿음의 인물로, 에녹에 대해서 살펴보며,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곧장 천국으로 간 사람이 두 사람 있습니다. 불수레를 타고 천국에 올라간 엘리야 선지자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녹. 이렇게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험한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 비결을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 비결은요? 본문 5절 하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라고 말씀합니다.

 

  1. 첫째로, 에녹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다면, 지금 시대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죽을 때 만큼은 험하게 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죽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예수님을 잘 믿었던 사람들의 마지막은, 순탄하고, 평화롭게 마지막을 맞이한 기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에도, 우리 채기병 성도가 하나님 앞에 가는 길을 지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렇게 절묘한 시간에, 완벽하게 데리고 가실 수가 없습니다.

죽음이란 것이요,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지 못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우리 채기병 성도님의 마지막 그날이 우리 Noel 이 태어나려고, 수술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Noel 이 태어나면, 정말 어떻게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지, 대책도 세우지 않고, 우리 Ann 은, 아기와 엄마를 다 돌보겠다는 거예요. 장로님과 심방하고 돌아올 때면, 우리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소한 몇 개월을 더 사실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절묘한 시간에 말이죠.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역사하시는 구나 ! 정말 Perfect Timing 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때도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가는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병을 낳게 하는 것 만 기적이 아니라, 이렇게 죽는 것도 기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을 정말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그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본문 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오늘은 성경

여러 군데를 찾아보며,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성경에는 에녹에 대해서 몇군데, 언급한 곳에 있습니다. 유다서 1: 14-15절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에녹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는 겁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요. 경건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확신했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그래서 그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 지상에서 천국으로 옮기워 진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다는 것은, 마지막 그날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유다서를 1:15절을 자세히 보세요. '경건' 이라는 말이 몇번 나옵니까? 네번씩이나 나옵니다.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모습으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순결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건을, 지금 말로 하면, '휴거' 라는 말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 Rapture' 라고 합니다. 휴거되지 못한 자들을 'Left Behind' 한국어로, '남겨진 사람들' 이라고 해서, 영화로도 나오고,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에녹처럼, 마지막 그날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리지 않고, 불경건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이땅에 남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에녹이 올라가고, 엘리야가 올라간 사건은, 마지막 날에, 주님을 경건하게 기다렸던 그리스도인들이 올라갈 것을, 미리 예고하고 있는 사건이예요. 영화로 말하면, 일종의 예고편입니다. 이런 사건이 없었으면, 공중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같은 사건을 예고편으로 만드시고는,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분명히 성경에 두 번씩이나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설마 하고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에녹이 얼마나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살았는지, 창세기에 보시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5:21절을 보시면, 에녹이 아들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냐면, '므두셀라' 라는 이름으로 짓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이 '므두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로 이름을 지은 다면, '사후말세' 라고 지을 수 있습니다. 한국어 이름으로는 바꾼다면, '종말' 이 입니다. '김종말' 이거나 '이종말' 이렇게 지을 수 있습니다.

 

에녹이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랍비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라고 계시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므두셀라' 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계시가 내포되어 있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므두셀라가 좀더 오래 살기를 바랬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입니다.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정확하게 노아 홍수를 내리셔서, 심판을 하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지키셨습니까? 그날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산 사람들을 위해서요.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에 내포되어 있는 계시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럼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지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으니까, 그해에, 노아 홍수가 난 것을 계산해 보면 됩니다.

 

창 5:25절을 찾아보시겠습니다.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칠세에 라멕을 낳은지라" 라멕은 노아의 아버지입니다. 28절을 보시면, 라멕이 몇살에 노아를 낳습니까? "라멕은 일백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그러면, 25절에, 187+ 182= 369. 므두셀라가 노아의 할어버지 인데, 므두셀라가 369살에, 아를 라멕이 손자 노아를 낳은 것입니다. 369살에….

 

그리고 7:11절을 보시면, 노아 홍수가 언제 났습니까? "노아 600세 되던 해에" 그해가 므두셀라가 죽던 해 였습니다. 369+600= 969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확하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에녹은 이렇게 아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맞이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경건함으로 그날을 기다릴 때, 하나님은 은혜를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1. 두 번째로,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한 삶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생을 값지게 산 사람을 보면, 오래 살지 않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30에 사역을 시작하셔서, 3년 반을 사역하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는24살의 나이로, 대동강에 도착하자 마자, 박춘권이란 사람에게, 살해를 당하고, 짧은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의 피로 인하여, 한국에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5:23절 보시면, 에녹의 수명은 365세를 향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평균 수명에 비하면, 3분의 1정도 밖에 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짧은 인생은 그 누구보다, 값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22절을 보시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365년 인생 가운데, 300년을 하나님과 같이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동행 했다고 하는 것은, 그냥 대충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300년 믿어다' 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 했다는 것은, 영어로 말하면, Walk with God,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고, 하나님께서 걱정하시면, 나도 같이 걱정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주님과 친밀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녹이 살던 시대는요. 불신앙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노아의 8식구만 남겨 놓고, 다 쓸어버릴 정도로, 음란하고, 방탕한 시대였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며, 심판이 올거라 외쳤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듣는 자가 없는 시대 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온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들 멋대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 믿음을 지키기란 앞으로, 점점더 어려울 것입니다. 제대로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 생각이 옳다고 하면서, 믿음을 저 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주님과 친밀함이 없으면, 넘어질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높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강단에서, 주님을 얼굴을 사모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옮기웠습니다. 그 비결은 그의 믿음이었는데, 그 믿음은, 주님의 날을 사모하는 믿음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므두셀라가 죽을 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한번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믿던, 안 믿던, 주님께서는, 작정하신 그날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믿음을, 우리는 에녹의 믿음이라고 하는데, 그런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에녹의 믿음을 닮아, 주님이 오실 때, 죽음을 보지 않고, 그대로 하늘로 그대로 옮기워 지는, 축복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찬 465장: 주와 같이 길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