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믿음
히 11:7
오늘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 중에, 세번째 인물인 '노아의 믿음' 에 대해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노아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보시면요. 그 시대는 마지막 시대였습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마지막 시대를 소개하고 있는데, 첫 번째, 마지막 시대는 노아의 시대였여요. 그리고, 두번째 마지막 시대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 바로 직전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그 두번째,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라고 의문을 품으시는 분이 있을 거 같아, 말씀을 덧붙히면요.
첫번째 마지막 시대는,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마지막 시대는 불로 심판 하시겠다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물로 심판은 하셨고, 불의 심판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들에 관해서, 성경에 수도 없이 기록해 놓았는데,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99%가 다 이 시대에, 지금 현재,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분명한 현상은, 노아 시대의 현상과 지금 이 시대의 현상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6-27절에 보시면,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닥칠 마지막 시대는, '노아의 시대와 똑 같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의 시대를 알면, 마지막 시대의 나타나는 현상을 알 수 있겠죠. 27절에 보시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세의 나타날 현상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육체의 쾌락과 성적인 타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아주 미워하십니다. 죄 중에서도, 성적타락의 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집고 넘어 가십니다. 노아 시대에도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너질 때도, 성적 타락이 문제였는데, 하나님은 반드시 집고 넘어가셨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에도, 음란과 음행이 점점 심해질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성적 타락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노아가 살던 그 시대가 얼마나 음란한 시대였는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물로 쓸어 버리는 심판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죠.
그런 그 시대 가운데 살면서, 노아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살았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별 탈이 없는데' 하면서, 죄를 죄로 여기는 않는 시대에, 노아는, 그 죄를 끔찍히도, 미워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노아 처럼, 죄를 미워하며, 믿음으로 살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노아의 삶을 통하여 그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 몇 가지 살펴 보기 원합니다.
- 첫째로, 노아의 믿음은,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 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상반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지만, 경고를 듣고 준비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천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2000년전의 예수님도, 바울도, 베드로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듣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죽을 때, 신체의 기능 중에, 제일 마지막까지 작동하는 것이, '청각 기능' 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미각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지가 않습니다. 눈도 흐려집니다. 냄새도 잘 맡지 못합니다. 그러나 듣는거 만큼은,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보이지 않는 경고' 를 듣고, 준비하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람을 만들어 놓으신 것 같습니다.
당시, 성적으로 타락한 그 시대를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멸하시겠다고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회개 하고, 죄를 뉘우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는데, 몇 년을 주셨냐면, 아주 넉넉하게 120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전했을 거예요. '120년이 되는 그 해에는, 인류의 종말이 옵니다. 그러니까, 방주를 같이 짓고, 살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라고 복음을 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듣지 않았냐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보지 못했냐면, 두가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첫째는, 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 전에는 비가 땅에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비는 노아 홍수 때 내린 비가 최초의 비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완전 '미친노인네' 취급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 천국이 어디 있으며, 지옥이 어디 있냐는 거예요. 본적이 없으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노아도 역시, 비라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경고로 받고, 믿고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들이 무엇을 보지 못했냐면, 산 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방주를 만들려면, 강이나 바닷가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산 꼭대기 에다가 만들으니, 그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은거예요.
설마 하늘에서 물이 떨어져 봤자, 저 높은 산 꼭대기 까지, 물이 차 오를까, 설마 하고 믿지 않은 거예요.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구름타고, 오신다고 하시는데, 설마, 그런게 어디있어! 무슨 소설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생전에 한번도 보지 못했던,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그 물이 산 꼭대기까지 차 오르듯이, 주님은 반드시, 이 땅에 구름타시고, 공중으로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그것을 믿고 기다렸던 사람들에겐,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고, 타락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탄식과 절망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아처럼, 보지 못한 것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두번째로, 노아의 믿음은, 경외함으로 예비하는 믿음이었습니다.
7절 중반에 보시면,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외함' 이란 말은 영어성경은 'Holy Fear' 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국어로 지역을 한다면, '거룩한 두려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하나님은, 독자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또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 많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선진들이,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떨지 않는 사람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모르거나, 간이 부었거나, 간이 아예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노아의 두려움은, 무서워 떠는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한 두려움'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 라고 하셨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경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이 심판의 경고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한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반대로, 노아의 열덟식구 말고, 그외에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했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안중에도 없었겠습니까?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무시해 버렸습니다. 두려워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욕하고 있었을 거예요.
여러분 !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거나, 타락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주일인데,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합니까? 불편합니까? 두렵습니까? 아니면, 전혀 두려움을 못 느끼십니까? '전혀 두렵거나 불편함을 못 느낀다' 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확률이 99%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어떤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언짢다. 불편하다, 두렵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면, 그 속에 아직도 신앙의 양심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만 되도, 그런 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처음 빠질때는, 너무 두려웠는데, 한 두번, 그리고 자구 빠지다 보니까, 양심에 화인 맞고, 두려움도 없다면, 그 상태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상태일 확률이 99%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 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세번째로, 노아는 세상을 향하여 책망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 7절 하반절에 보시면,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을 정죄' 했다는 표현을 영어성경은 'he condemned the world' 라고 번역했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책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노아는요. 120년동안 이나, 세상을 책망하며, 죄를 끊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120년 동안이요. 120년동안 전도했는데, 단 한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습니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120년 이란 세월이면, 강산이 12번은 변했을 것입니다. 또 한국 속담에 '사람은 열번 된다'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인생을 90으로 잡고, 사람도9년 마다 한번씩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노아가 살던 당시의 사람들은, 120년동안, 한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시대가 이토록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입니다. 90평생을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지, 한 번 정도는 복음을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사람들이 이 땅에 무수히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토록 변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좋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 이예요.
이들이 처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 다음에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불편한 마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 다음에 아무런 죄 의식 없이 죄를 지어요. 그 다음에는 어떤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나를 심판하지는 않으실꺼야!, 봐봐, 나는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잖아. 나는 언젠가 하나님께 돌아갈꺼야!' 하는 말로 스스로 위로를 삼으면서, 죄를 진다는 거예요. 이 상태가 제일 위험한 상태입니다.
두려움도 없고, 스스로 하나님을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춰놓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자꾸 사랑의 하나님을 말해 보세요. 절대 돌아서지 않을껄요.
노아 할어버지도, 처음에는 사랑의 하나님을 외쳤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돌아오기는커녕, 120년 동안, 한명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런 세상을 미워하고, 하나님께 돌아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 지금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처럼 병들은 시대입니다. 이 시대 가운데, 우리는 노아처럼 살기 원합니다. 물론 죄악에 빠져 있는 영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상을 사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죄를 꾸짓으며, 죄를 미워하며, 그 안에 허덕이고 있는, 영혼들에게, 노아처럼 복음을 단호하게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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