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찾는 나그네
히 11:13-16
여러분 서커스를 보시면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릿광대입니다. 이 어릿광대가 꼬깔 모자를 쓰고, 익살스러운 분장을 하고,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지팡이 입니다. 왜 이 지팡이를 항상 들고 다니냐면, 유래가 있습니다.
옛날에, 이 어릿광대가 임금 앞에서 바보 흉내를 내며, 익살을 떨었다고 합니다. 어찌나, 진짜 바보처럼 잘하는지, 이 임금이 너무 재미있게 보고는, 자기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광대에게 주며, '너는 항상 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다가, 너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이 지팡이를 줘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몇 년이 지나, 임금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전에, 너무 웃겼던, 바보 흉내를 내는,광대의 재롱을 다시 보고 싶어서, 광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몇 년전에 주었던, 그 지팡이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거예요. 왕이 물었습니다. '아직도 너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구나!'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광대가, '왕이시여, 왕께서는 예전에, 다른 나라에 가려면, 미리 사절단을 보내기도 하고, 몇 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왜 이번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왕이 대답합니다. '아니, 내가 어디를 간단 말이냐? 죽으면 끝인데, 죽음도 준비해야 되냐? 이렇게 재미있는 광대의 쇼나 보다가 가면 그만이지.' 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광대는, 그 지팡이를 왕에게 도로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바보는, 죽음을 준비하는 않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 후에 또 다른 세계가 분명히 있으며, 심판을 받은 후에, 천국과 지옥, 이 두 곳중에, 한 곳으로 반드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 세계를 '본향'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쉬운 말로 한다면, '고향' 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말합니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마음 먹고 마음속 깊은 곳에, 소망을 품으며, 힘들고, 외롭더라도, 그 고향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나는 그 고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90평생을, 오늘 본문 13절은 '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잠시 다른 나라에 여행 온 사람처럼, 나그네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고, 이 땅의 90년 인생은, 여행 비자를 받아서, 잠시 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왜 나그네인지 아십니까? 본향에 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 이예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 땅에 두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4장의 말씀대로, '천국에 있습니다.' 빌립보서3:20절에도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자들이며, 이땅에서는 외국인니며,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국 가요중에,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로 시작하는 이노래는, '인생은 나그네 길' 이라 말하면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를 알지 못한 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에게로 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오늘 본문에서는, '본향을 찾는 나그네' 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코끼리 무덤이 있습니다. 이 코끼리들이 죽을 때가 되면, 특정지역에 가서 생을 마감한다고 해요. 물고기들도, 그 넓은 바다에서, 기가 막히게, 자기들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산란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찮은 동물도, 본향을 찾아가는 본성이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는 돌아갈 본향도 없이 만드셨겠습니까?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야 할 본향은 반드시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 본향을 그리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고로, 본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전혀 없는, 세상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세요. '죽으면, 돌아갈 본향이 있냐?' 고요. 그러면, 하나 같이, '죽으면, 그걸로 끝' 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 같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째로, 본향을 찾는 사람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 누구냐면, 믿음의 4대 족장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네 사람은,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나그네 처럼 살다가, 고향에 한번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서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13절을 보시면,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 고 말씀합니다. 이 네 명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이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자손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꿈에 그리던, 본향을 살아 생전에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매년 명절 때가 되면, 한국의 임진각이라는 곳에,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저 북쪽을 바라보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눈에 선하게 보이지만 가지 못하기 때문에 더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고향에 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15절에 보시면,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고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였더면, 충분히 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앉았다는 것입니다. 왜 가지 않았습니까?
1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 땅에 살 동안에 가고 싶은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것은, 한낮,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같이 여겼던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이 어디입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외국인 처럼 사는 것이, 나그네 처럼 사는 것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곳은 이 땅에 고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엔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이별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기쁨만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겨우 10살때, 20살 때, 남쪽으로 피난 와서, 고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을 텐데도, 그 고향에 가고 싶어, 먼 발치에서 눈물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런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하는데, 우리는 그 본향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본향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눈물 흘리는 정도로 끝나겠습니까? 그 정도면, 행복한 것입니다. 본향에 들어가지 못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그 본향이어야 합니다.
- 두 번째로, 본향을 찾는 사람들은, 이 땅의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13절 하반절에 보시면,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은 "They admitted" 라고 번역했습니다. '나는 잠시 머무는 나그네다' 라고 인정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보내게 될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이 땅에서의 90평생은, 하룻밤과 같습니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땅에서의 90년은, 영원한 본향의 0.0001초도 되지 않습니다. 영원이란 말은, 그냥 영원입니다. 시간속에 들어와 있지 않고, 시간 밖에 있는 것이 영원입니다. 그래도 시간으로 표현한다면, 아리조나주에 있는 사막의 모래 한알을, 1000년에 한 알갱이씩, 텍사스로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을 영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들은, '나는 이 세상의 나그네다' , '잠시 잠깐 머물렀다가 가는 순례자다' 라고 입술로 고백하며, 인정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한 평생을 보낸, 미국인 노부부 선교사 가 있었어요. 이제 나이가 많아 은퇴를 하고는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뉴욕 항구에 도착 했을 때에, 수많은 환영 인파가 몰려 있었고, 군악대가 환영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기뻤습니다. 자신들을 이렇게 열렬히 환영을 해 주니 너무 감격하여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환영 인파는 선교사 부부를 환영 나온 것이 아니고 같은 배에 탄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린드버그라고 하는 사람을 환영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린드버그는 단발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을 성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날 선교사 부부는, 오라는 사람도 없어서, 시내의 삼류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노부부는 방에 들어가자 마자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대서양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한평생을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늙고 지쳐서 돌아오는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겨우 대서양을 한번 비행기로 횡단한 린드버그를 위해서는 전 뉴욕시민이 환영을 하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 "
그러자 이 늙은 선교사 부부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이는데, "사랑하는 충성된 종아 ! 린드버그는 그의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단다. 너희들이 나그네 삶을 다 마치고 본향에 돌아 올 그때에, 린드버그가 환영을 받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며, 천국에 먼저 온 모든 성도들이 마중을 나갈 것이다. 그때까지 인내하고 있으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후로, 이 노선교사 부부는,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입니다. ' 라고 복음을 전하며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 인생은 순탄하지 만은 않습니다. 여행을 해 보셨으면, 알꺼예요. 집 나오면, 고생입니다. 처음에는 들뜬 기분으로, 고생이란 것을 못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집이 그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그네 인생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국에 역대 대통령중에, 노태우 대통령이란 분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까, '폐기능 회복 불가능'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의료진들이 사실상 치료를 포기하고,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왜 이분이야기를 하냐면, 두달전에, 이분이, 친동생을 상대로 Sue 를 했습니다. 예전에 대통령 할 때에, 동생 이름으로 돈을 빼돌렸는데, 그 동생이 그 돈으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동생이 돈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회사라도 돌려 달라고 동생을 고소한 것입니다. 그 돈도, 그렇게 깨끗한 돈도 아닌데, 말이죠.
이 분이 병원에 입원 해 있으면서, 고소를 한 거예요. 언제 나그네 인생을 마칠지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죠.
'나는 이 땅에 나그네다' 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거의 가 이런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돌아갈 본향도 없기에, 이 땅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향을 찾는 사람들은, 매 순간 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며, 나는 언젠가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례자다'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의 본향을 준비해 주십니까?
16절 하반절을 보시면,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말씀이야 말로,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산, 믿음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도,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준비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 이 땅에 살면서, 정말 나그네 처럼, 저축도 하지 말고, 집도 사지 말고, 버는 족족 다 써버리며 살아야 합니까?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덧 붙히자면,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믿음의 4대 족장, 아브라함은, 땅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삭은 틈만 나면, 우물을 팠습니다. 야곱은 억척같이, 재물을 모았습니다. 요셉은, 곡식을 7년정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창고를 만들어 저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이 4대족장들은, 세상에 미련을 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너무 미련을 같지 마십시요. 우리는 이 땅에 숨쉬고 살지만, 소망은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왜 이스라엘 민족이, 수백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아 왔어도, 세계의 경제를 쥐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요. 나라 없이 흩어져, 어느 나라에 가서 살면서도, 그들이 다시 돌아가야 할, 가나안 땅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로 한 사업이, 보석상입니다. 언젠가, 본향으로 돌아 간다면, 몽땅, 쉽게 가지고 갈 수 있기에 그 사업을 했습니다. 둘째는 야채상을 했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쉽게 버리고 갈 수 있기에, 그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의식으로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신 것 같아요.
사랑하는 꿈의 성도 여러분 ! 우리는 현재, 미국 시민권자 들입니다. 그러나 이 시민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보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천국의 시민권자 들이라고 분명하게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이땅에 것에, 욕심두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께서 오라고 부르신다면, 미련 없이, 본향을 향해, 출발하는 저와 여러분,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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