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히 11:8-12, 창 12:1-9
오늘도 히브리서의 믿음의 조상들 중에, 네 번째 인물인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창세기에는 인류의 3대 조상이 나옵니다. 그 첫번째 조상은 아담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조상은 홍수 심판에 의해서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을 때, 방주를 예비하여 살아남은 노아가, 두번째, 조상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아브라함이 세 번째 조상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명의 조상들 중에, 아브라함을 최고로 칩니다. 왜냐하면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형성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을 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족보가 나오는데, 아담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노아부터도 시작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하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라고 하면서 족보가 시작이 됩니다. 지금 현재에도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순위가 아브라함입니다. 2순위가 다윗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아브라함을 부를 대, 이름 앞에 'father' 존칭을 붙여, 'Father Abraham' 이라고 부릅니다.
대단한 인물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까,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3일 길을 걸어 간 다음에, 하나 망설임도 없고, 아들을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인 것입니다. 믿음 하면, '아브라함' 이고, 아브라함 하면, '믿음' 입니다. 이 뿐 만이 아닙니다.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라고 하셨을 때에도,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고, 그냥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성의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이 믿음이예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야 믿겠다.' 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된 다음에 믿는 것은, 그냥 아는 것에 불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관찰을 하고 연구를 해서, 지구가 돈다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면, 그때 야 비로소, 우리는 지구가 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여러분 지구가 도는 것을 믿으십시요' 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을 배우고 이해 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배우고 수긍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노아에 대해 살펴 볼때도, 7절에 보시면,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했다' 고 말합니다. 비를 본적도 없고, 홍수가 나, 물이 산 정상까지 덮을 꺼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지만,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식한 어부들은 제자로 삼으신 것 같습니다. 똑똑한 바리새인, 서기관들 제자로 삼았다면, 불 보듯이 뻔합니다. 전도는 고사하고, 매일 같이, 예수님께, 따지기나 했을 겁니다. 나는 못 믿겠다 !, 날 이해 시켜 보라고,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해달라고, 따지기만 했을 것 같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성경도 믿음으로 보지 못하면, 창세기 1장도 넘어가지 못할껄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우주의 '빅뱅이론' , 그러니까, 수억년전에, 우주가 대 폭발을 일으켜, 지구가 생겨났다고 하는 이론을 더 쉽게 믿어 버리면, 성경 한 페이지도 읽어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도, 믿음으로 읽어야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세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무슨 말입니까? 온 우주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과학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안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성경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100독을 하더라도, 믿음으로 보지 않으면, 한국의 도올 '김용옥' 같은 사람처럼, 신학교를 나와, 성경을 꿰고 있더라도, 공자, 노자, 강의나 하러 다니는 거예요.
그럼, 오늘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 이 분은 어떻게 해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찾아 보며, 은혜나누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함으로 해서 얻어진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만 보시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타고난 믿음처럼 비춰 질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 사람은 믿음의 조상으로 태어났다' 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보시면,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 중에, 실수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약점이 많고, 허물 투성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떠 먹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비롯해서, 지난 시간 배운 노아는, 포도주를 먹고, 술에 취해, 벌거 벗고 잠들었었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고,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습니까? 바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실수를 통해서, 순종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입니다. 완벽한 순종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실수를 거듭하면서, 점점 순종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창세기 12: 1절을 보시면,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시면,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래 둘이서 떠나기를 원하셨는데, 조카를 데리고 갔습니다. 완전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이 이 조카 롯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한지 모릅니다. 조카 롯을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롯의 종들과, 아브라함의 종들간에 싸우지 않나, 한번은 조카 롯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거예요. 그래서 또, 집에서 훈련시킨 군사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 롯을 구해 옵니다. 그뿐만이 아니예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 이 조카 롯이 같이 죽을 까봐, 하나님께 사정사정합니다.
아브라함은요,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을 거예요. '아하! 하나님께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뼈아픈 고난의 대가를 지불하는 구나 ! 깨닫았을 거예요.
또 한번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만, 기다리지 못하고, 몸종 하갈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라의 몸에서 낳은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변칙을 쓴 거예요. 그 결과, 집안이 평안할 날이 없었어요. 하갈은 아들을 낳았다고, 안주인 행세하죠, 사라는 또 디프레스가 되서, 남편보고, 하갈을 내어 좇으라고, 압력을 넣죠. 중간에서 너무 피곤한 거예요. 아브라함이 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하 !, 온전하지 못한 순종은, 이렇게, 시간도 더 걸리고, 피곤하고 고달프기만 하는 구나!,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점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결국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바로 전 단계가, 순종인거 같아요. 순종이 없인, 믿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순종하려 들지 않습니다. 간단한 예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예배를 받으시길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순종함으로 예배 가운데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고, 예배 드리지 않아 봐요. 그러면, 믿음은 없는 거예요. 십계명에, 우상 숭배하지 마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이웃을 사랑하라, 등등 이 계명을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려고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 두 번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땅에 이방인 처럼 살며, 하늘에 소망을 두었기에, 얻어진 믿음이었습니다.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 사는 것을, 외국인과 나그네 처럼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늘에 소망을 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워지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너무나 잘아는 사건이죠.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꽃을 피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이 있다면,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일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죽으면 죽었지 하지 못할 꺼예요.
사람들은, 이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을 욕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아들을 죽이라고 하냐고요.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독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고통스럽다는 십자가의 죽음에 몰아 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자아들은 죽이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왜 요구하셨습니까?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그렇게 했다고, 히브리서11: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하나님의 시험에 능히 통과하게 됩니다. 이렇게 능히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믿음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아브라함이 참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를 흘러 듣지 않고, 마음속 심비에 새기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새기며 사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씀을 건성으로 들으면, 믿음도 자라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죽도록 붙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예전에 이렇게 약속해 주셨잖아요' 하며 하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 보세요. ^_^ 예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이런 약속을 해 주셨어요. 창 15:5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저 하늘의 봐라, 저 무수한 하늘의 별들을 셀 수 있냐?' 물으십니다. 그리고는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믿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삭을 드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던지, 아니면, 다시 주시든지, 할 것이다. 내 자손이 별과 같이 많으려면, 우선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지, 하며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예요.
또 아브라함이 믿은 것이 있는데, 나는 이땅에 객이며, 나의 영원한 집은 저 하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실 성을 소망삼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것에 목매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 밖에, 없는 독자이삭은 아브라함의 전부였습니다. 그의 희망이며, 살아 있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지금 당장, 아들과 헤어지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와 아브라함의 차이점이예요. 이정도 되야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실 수 있었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면, 아브라함과 예수님과는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자손이 별처럼, 모래알 처럼 많아 진 것 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구원의 백성들이 많이 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 축복중에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의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갈수도 없기 때문이예요. 사복음서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이 '믿음' 에 관한 말씀인데, 그 중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 때 부른 찬양이,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맘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오늘 아브라함은, 그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설교자의 창고 > 비전나리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1절) - 신 5:1-21 (0) | 2012.12.25 |
---|---|
영적 예배 - 로마서 12:1 , 요 4:23-24 (0) | 2012.12.25 |
살기 위해서 - 신 4:1-8 (0) | 2012.12.25 |
본향 찾는 나그네 - 히 11:13-16 (1) | 2012.12.25 |
신명기 - 신 1:1-18 (0) | 2012.12.25 |
여호와의 영광 - 출 40:33-38 (0) | 2012.12.25 |
노아의 믿음 - 히 11:7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