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향하여
행 25:1-12
지난주에는 바울이 총독 벨릭스에게 누명을 쓰고 심문을 당하는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무 죄가 없는데도, 바울을 2년 동안 총독부 감옥에 가둬두고 재판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총독 벨릭스가 사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시면, 베스도라는 총독이 후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재판을 받은 도중에 담당 판사가 바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피고에게 있어서, 재판은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바울의 사정도 잘 모르는 총독이 오면, 처음부터 재판을 다시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러면 시간도 더 걸리게 되는 거예요.
바울이 아마도, 지금까지 감옥생활을 여러번 해봤지만, 이번 만큼 감옥 생활이 힘든 적은 없었을 거예요. 재판 다운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죄수들에게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간이라고 합니다. 아무 목적도 없이, 2년 이라는 세월을 보냈는데, 새로운 사람으로 총독이 왔으니, 또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지, 바울의 마음은 사형이든지, 무기징역이든지, 빨리 판결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언제가 제일 힘든지?" 서베이를 했는데, 가장 많은 대답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죄수들이 감옥에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100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요한 복은 전체를 외워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성경 한 권을 붓글씨로 다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다림의 고통을 덜어 보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꾸 불안하니까, 무엇인가 하려고 하고,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안하니까, 이 행사, 저 행사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야 뭔가 되는 거 같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 주일 동안 얼마나 분주하게 삽니까? 그러나 주일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입니다. 이 것이 향방 없이 삶을 분주하게 살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신 계명입니다.
바울에게 총독부 감옥의 2년이란 세월은, 고통스러운 날이었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바라 볼 수 있는 금 같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시면, '디셉사람 엘리야' 란 이름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엘리야가 사역을 시작합니다. 아합왕에게 가서 '앞으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거다' 라는 예언으로 사역을 시작하죠. 그러면, 그 다음에 얼마나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곧 바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하신다음에, 그곳에 머물게 하시고 까마귀들이 날라다 주는 양식을 먹으며 살게 하십니다. 이 3년 6개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엘리야의 고통이 오늘 바울의 고통과 같은 고통입니다. 모든 것 내려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기간이었습니다.
오늘 보시면, 그런 2년의 기간이 지나고, 새로운 총독 베스도가 왔는데, 이 사람은 전에 벡릭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과감하게 죄가 없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베스도 역시 바울에게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베스도는 바울을 어떻게 대우 했으면, 하나님께서는 또 바울을 어떻게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지 본문에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베스도는, 자기 양심을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묻습니다. 지금 베스도가 어디에 있냐면, 갸이사랴에 있습니다. 영어로는 '시실리아' 란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0 마일 가면, 지중해 해변에 인공으로 만들진 인공 도시입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 바친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로마의 총독부가 있고, 로마의 군대가 주둔해 있고, 로마 관료들이 살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행정도시입니다. 공무원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말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재판은 이 시실리아에서 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그곳에 갖혀 있는 거예요. 재판도 그곳에서 하는 것이 맞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하는게 어떠냐고, 바울에 묻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이 베스도가 유대인중 높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예요. 본문 2절과 3절을 보시면, '유대인 중 높은 사람이 바울을 고소하는데, 예루살렘으로 옮겨 재판을 하게 해달라고 청을 하는 거예요. 그 이유는 3절에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재판 장소를 옮기려고 한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도중에 바울을 암살 하려고 했던 거예요. 베스도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양심을 지키느냐? 양심을 버리느냐? 기로에 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양심을 버리면, 어떤 이익을 얻을 수가 있고, 양심을 지키면, 손해가 볼 때 가 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정직과 선한 양심을 바탕으로 국가가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직과 선한 양심을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십시요. 요즘은 한국은 장관이 되려면, '청문회' 라는 것을 꼭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청문회를 보면, 어찌나 거짓말을 그렇게 잘하는 지, 그런 사람들이 장관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정치인들 중에 천국에 가는 사람이 극히 적겠구나!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양심을 속이는데 있어서는, 전문가들이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믿음과 착한 양심은 같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양심을 버린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그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양심은 없어' 이런 말이 성립이 되는 않는 거예요. 믿음의 사람들은 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두번째로, 그렇게 모함을 해도 하나님은 피 할 길 을 열어 주십니다.
총독을 비롯하여 유대의 높은 관료들이 바울 하나를 암살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는데, 바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성질 같으면, '좋아 !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지 뭐! 나는 아무 잘 못도 없으니까 !" 이렇게 말 했을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파놓은 암살 함정에 빠지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결정을 할 때, 한번 만 더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당장 하는 행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인지, 생각 해보신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늘 바울은요.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느냐?' 라는 질문에 성질대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조목 조목 상황을 이야기 하며,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 이 말을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로 가겠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왜 로마로 가려고 했냐면,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그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11절 하반절에 보시면, 바울이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이사는 영어로 '시이저'라고 합니다. 왕이란 뜻입니다. 애굽의 모든 왕은 바로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파라오' 입니다. 로마의 모든 왕은 '시이저' 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모든 대통령을 '각하' 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왕의 이름이 아니고, 호칭입니다.
지금 바울이 왕 앞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유가 무었이었냐면, 오래전에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네가 로마에도 가야 하리라' 라는 이 말을 잊지 않고 가슴에 묻고 있다가, '아! 지금이 로마로 가라는 주님의 사인인가 보다' 하고는 로마로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만, '사명자는 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이 땅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이 땅에 남겨 두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공통적인 이유가, 이 땅에서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거예요. 아직 죽을 때가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으로 다시 보내지게 됩니다.
5만번 기도 응답받은 조지 뮬러 목사님은, '고아의 아버지' 라고 합니다. 이분이 추운 한 겨울에도, 먹을 것이 떨어지고, 난방 연료가 떨어져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다 얻어내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렇지만, 고아들은 식량이 없고, 석탄이 떨이지니까, 걱정인거예요. 그런 그들을 향하여 죠지 뮬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지 않으면, 안될꺼야! 왜냐하면,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바울은요. 로마로 가기 전 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로마로 가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목숨도, 여러분이 버는 재물도, 하나님의 계획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그것이 보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하지 않는 것은 언제든지 없어 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처럼, '하나님 저는 돈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저들이 고아지만, 먼 훗날에 복음을 들고 외치는 용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위해서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그러한 삶을 살아 가실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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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계획을 했는데, 그 일을 물거품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또한 그러한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이 '주님의 약속' 을 잊지 않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로마로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더 보시면, 우리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기껏 요 정도만 도와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도와주시는데, 바울의 누명을 완전히 벗겨 주십니다.
25절 보시면, 베스도가 이렇게 판결합니다.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께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무죄를 선고하고, 황제가 있는 로마로 보내기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암살도 당하지 않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복음도 전하게 해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어설프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도와 주십니다.
우리모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사명을 따라 살아간다면 완전하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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