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년에 한번씩 지키는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는 삶을 사는지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날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감사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보아도 감사할 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의 감사는 어떤 감사였는지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첫째로, 환난 중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16절 보시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무서워 떨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지금 하박국이 처해 있는 상황은 이스라엘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망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입니다. 16절에 "내가 들었으므로" 갈대아의 군사들이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들린것입니다.
이 소문에 얼마나 무섭던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 같이 되어 온몸이 부들 부들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박국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고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며칠 후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수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며, 타국으로 포로로 끌려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너무 떨리죠. 지금 이 하박국 선지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감사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1620년 영국의 필그림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이 메이플라워라는 배 한척을 구입해 시속 2마일 (보통 사람이 겉는 속도)로 4개월간 항해한 후, 미국의 플리머스항에 도착합니다. 도착했을 때, 아이 두명은 이미 항해 중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혹한기 겨울을 지내면서, 55명이 더 죽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죽었죠. 그 이듬해 옥수수를 파종하고, 수확을 한 다음, 칠면조와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나 그들은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 열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먹을 양식이 있어 감사합니다.
거할 집이 있어 감사합니다.
자녀들이 다 죽지 않고 그래도 몇몇이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
마음껏 예배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들은 언제 죽음을 맞이 할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원망 보다는 감사하기로 마음을 바꾼것입니다. 이것이 환난중에 성도들이 가져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두번째로, 감사할 조건이 없는 가운데서도 드린 감사였습니다.
17절 보시면,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치 않으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하박국에겐 맨 없는 것들 뿐입니다. 지금 하박국이 없다고 기록한 것들은, 당시에 절대로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무화과는 양식입니다. 포도는 사막에서 음료수였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또 소가 있어야 농사를 짖지요. 양이 있어야 젖을 내고, 하나님께 제물로도 드립니다. 양이 없다는 것은 지금, 헌금할 돈도 한푼도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쌀독에 쌀도 없고, 자동차에 개스 넣을 돈도 없고, 물도 사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사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을 때 감사는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할 때 감사하는 것이 진짜 감사인 거지요.
독일에 재무부 장관을 지낸 바덴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할 때였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방문했는데, 돈이 없어 싸구려 여관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 사이에 도둑을 맞은 것입니다.
여행 중에 구두를 잃어버렸으니, 다시 사야 하는데, 사러 나갈 신발도 없고, 그래서 그는"어느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욕을 하면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게 하시다니" 라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여관주인이 창고에서 헌 신발을 빌려주면서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간 것이지요. 교회에서 남들은 다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그는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신발 때문에 계속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니,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고, 또 기도 드릴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그러는 것이예요. 그래서 이 사람을 자세히 보니까,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바덴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겠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신발이야 또 사면 되는데, 남을 저주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 후로 인생관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일의 재무장관이 된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가진 것 없다고 해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하박국은 우리가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감사란 좋은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너무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주어진 조건이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이런 악조건 상황 속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여러분 한번 이 시간에, 올 한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축복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번, 하나님께서 어떤 것들을 주셨는지, 열거해 보십시요. 우리는요. 늘 불평과 불만과 원망을 하며 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교회를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고, 자녀를 원망하고, 성도를 원망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하고, 목사를 원망하고, ,,, 그런데요.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처럼 마음 먹으면, 하나님께서 원망을 감사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러분 미국에서, 편한한 집에서, 자가용을 굴리며, 끼니걱정 안하고 살면, 여러분은 세계 상류층 5%에 든 다는 거 아세요? 나 보다 못한 사람이 95% 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늘 불평하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지 몰라요. 누구야, 아무개야!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 시간에 2분 정도만, 올 한해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들을 찾아 고백해 보십시요. 죽 열거해 보세요. 없는것 같지만 찾으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자 기도하겠습니다.
2010년에 우리 꿈의교회도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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