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영혼이 갈급합니다.
시편 42편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이 시는 시편 다섯 권중 제2권 첫 번째 시에 해당됩니다. 어제 까지는 다윗의 시만 다루었었는데, 오늘부터 몇 차례 고라 자손의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고라 자손 하면 좋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먼저 고라 자손이 어떤 자손인지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민수기 16장 1-2절 보시겠습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1절 보시면 고라를 말하기 위해서 성경은 그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할의 아들, 고핫의 손자, 레위의 증손, 왜 족보를 거슬려 올라가냐면, 레위지파 사람이란 것을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당시의 레위지파는 성막에서 수중 드는 지파였습니다. 모세도 레위 지파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기에 고라는 하나님 가까이서 봉사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라가 하나님 가까이서 봉사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절에 온이라는 사람과 합세해서 2절에, 회중에 유명한 족장 250인을 포섭을 합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모세를 거스립니다’ 한마디로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족장들을 다 모아 쿠테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4절에 모세는 엎드려 있다가 5절에, 고라 자손에게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자가 누군지 각자 향로를 취하여 하나님앞에 나아오라고 말합니다.
결국에는 32절 보시면, “땅이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됩니다. 즉 땅이 갈라지는 지진이 생겨 그 속으로 모두 몰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역자 250인도 하나님께서 35절 보시면 불로 태워버리십니다. 이 사람이 고라입니다.
그러면 그의 자손들은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몇 년전에 한국의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도로 찾겠다고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한적이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나라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한이 김일성에 이어 그 아들 김정일 그리고 요즘 3남 김정운에게 세습을 하려고 합니다. 악한자의 후손은 선해질 수 없는 것인지,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얼마든지 아버지보다 더 휼륭한 아들이 나올수 있습니다. 이 고라의 후손들이 이런 측에 속하는 사람들이이었습니다. 민수기 26장 10-11절 보시면,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여호와께 패역할 때에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 오십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으나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 하였더라” 그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고라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큰 범죄를 저지르면 그 가족들까지 죽이는 제도에 의해서 그때 죽었어야 했습니다. 우리 여호수아 공부할 때 배웠습니다. 아간이 범죄하니 그 가족들까지 다 죽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고라자손은 하나님은 살려두신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 자손들이 아버지의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들을 할 것을 미리 아셨기에 살려두지 않았나십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기대했던 것과 같이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반역과, 죽음을 보면서, 뼈에 사무치게 교훈을 삼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로 당을 짓지 말아야지.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시편 42편으로 돌아가서, 복습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잊어버리셨는지, 다윗과 함께 사역한 당시의 유명한 성가대 지휘자 세명을 알아맞춰 보십시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 앞으로도 계속 나옵니다. 이 세명의 지휘자 중에 헤만이란 사람이 고라 자손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조상이 한번의 큰 오점을 남기지만, 그것을 교훈삼아 조상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길에서 충성하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고라자손들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무엇입니까?
1) 영혼의 갈급함을 찬양했습니다.
1절 보시면, 우리가 너무나도 잘 부르는 찬양가사 입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헤메 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이 시에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갈급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갈급함이나 관심이 없으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기독교 고서중에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데, 그 책의 주인공인 전도자가 천국도성을 향하여 여행을 하면서 겪는 과정을 엮은 책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자가 천국도성을 찾아 떠나게 되는 계기가 있는데, 그 것이 영혼의 갈급함이었습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영혼의 목마름에 대한 갈급함이 적다는 것입니다. 한나님을 그렇게 절실히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번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면제나 술로 그의 번민이나
고통을 달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수면제가 1년에 700억 알이나 소비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 사람이 먹는 수면제가 하루에1,900만 알이 됨을 말합니다. 하루에도 1,900만 명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아스피린은 한 해 동안에 1,100만 파운드나
팔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1년에 750억의 두통 건수가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안해하고 있는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시편의 기자는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아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슴은 풀을 먹지 않고는 일주일 이상도 견딜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몇 일을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이와 같이 갈급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한 심령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은 자입니다. 우리 인생의 시작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찾지 않는 영혼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3절보시면, 사람들이 종일,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비방을 합니다. 10절에도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 기자는 ‘눈물이 음식이 될 정도로’ 때로는 그 말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불신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빈번한 질문일 것입니다. 저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음을 변증하려고 하는 것보다, 먼저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대적의 이런 질문 앞에, 여러말 하지 않습니다. 11절에 보시면,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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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앞에 하나님 나의 힘으론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며, 그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고라 자손처럼 오늘도 여러분들을 대적하며 오는 무리들을 향하여 그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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