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속에서도
시편 34편 11-22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라고, 시의 첫구절 앞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사건을 사무엘상 21장 10절 보시면 이 사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 21장 10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장인에게 쫓겨 다니다가 결국엔 외국으로까지 도망가는 신세가 된것입니다. 가드라는 나라도 도망을 가는데, 그곳이 예전에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죽였던 그 블레셋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의 이름을 누구라고 기록합니까? 아기스. 왕의 이름입니다. 박정희. 김정일. 같이 사람이름입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에는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입니다. 아비멜렉은 호칭입니다. 출애굽기 보시면 이집트의 모든 왕은 ‘바로’라고 불었습니다. 이 블레셋이란 나라도 모든 왕을 ‘아비멜렉’ 으로 불렀습니다. 예전에 한국의 모든 대통령은 ‘각하’ 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김일성을 ‘수령’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오늘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라는 곳으로 도망을 가지만 그곳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후 전설적인 인물이어서 다윗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살기 위해 미친사람 행세를 합니다. 삼상 13절에게 보시면 ‘대문짝을 극적 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려가며’ 미치광이인척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비멜렉이 미치광이라 하여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다음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같이 읽은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있었습니까?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마저 듭니다. 1절은 항상 여호와를 송축한다고 말합니다. 9,10절은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시에서는 자신의 신세한탄하는 구절을 한구절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지금 다윗은 엄청난 수로를 격은 다음입니다. 이방인의 왕 앞에서 미친자 행세를 죽음을 모면하면서,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안에서 굴욕감이나 분노와 억울함 같은 고백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외하여 자신은 복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대단합니다. 이러니 다윗의 위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몇 달전 로버트 박 선교사가 북한에 들어가 가진 수모를 겪고 다시 투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후에 그 충격으로 인하여 말수가 적어졌고,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도 잘 이겨냈으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일사각오인 사람도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윗도 왕으로서 이정도의 수모를 당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정신적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11절 보십시요. 전혀 이런 수모를 격은 사람같지가 않습니다. “너희 소자들아 내게 와서 들으라, 내가 여호와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라” 미치광이 행세해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이 뭐 가르칠것이 있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십시요. 그가 이렇게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 말합니다. 이말은 이런 말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하버드 법대를 나왔고, 지금까지 최고의 엘리트로 살았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그가 오늘 다윗처럼 모진 수모를 당하죠, 얻어 맞고, 살려고 도망치고, 미쳤다고 하고,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이런 수모는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왕중의 왕이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발가벗겨진 몸으로 온갖 수모와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 부끄러워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주여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것을 가지고 적반하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들의 생각으로는 저 예수라는 사람이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나를 십자가에서 구해주세요 해야 하는데, 오히려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우리를 용서하고 있다니, 아마 그곳에 있던 로마 병정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사람들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다윗은 당당히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가르치리로다’ 하고 시를 이어가는데 대체 여호와를 경외함이 무엇인지 찾아 보겠습니다.
1) 13절 보시면, 악한 말을 하지 말고, 궤사 곧 거짓말, 험담, 저주, 중상모략 등등 입술로 범죄하는 것을 금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입술로 감사가, 찬양이, 기도가, 축복의 말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라고 야고보기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2) 14절- ‘악한 행동을 버리고, 선한 행동을 하며, 화평을 찾아 따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행실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과 화평 하라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 중 네 마리의 황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들판에 네 마리의 황소가 한가롭게 뛰놀고 있었습니다. 황소는 풀을 뜯을 때나 잠을 잘 때도 늘 함께 할 정도로 친했습니다. 위험이 닥치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사자 한 마리가 황소들을 호시탐탐 노렸으나 네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힘에 겨웠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약간 뒤쳐져 풀을 뜯는 황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다른 소들이 네 흉을 보더라.”
사자는 다른 소들에게도 차례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네 마리의 황소는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소들은 서로 세 친구가 자신을 왕따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황소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사자는 황소를 공격해 네 번의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다는 이솝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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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두가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선한말과 선한 행동입니다. 이 두가지를 실천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양을 잡아먹되 그것의 뼈는 꺾지 말라 하셨습니다(출12:46). 이 유월절 양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도 뼈가 꺾일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다(요19:36). 악인들이 의인들을 핍박할 수는 있지만 의인들의 마지막 존엄성인 의로움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악인들이 제아무리 기세 등등해도 의인의 영(靈)에 위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잠시 의인의 육체를 죽일 수는 있으나 영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악이 선을 정복할 수 없고, 악인이 의인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꺾이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 누가 하나님의 뜻을 꺾을 수 있겠으며, 그 누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꺾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그 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의 신앙의 지조를 꺾을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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