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꿈꾸며
느헤미야 1장 전체
유명한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이 독일 나치 수용소에 갇혔을 때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동료들이 삶을 포기하고 죽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 조그마한 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한 죄수가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창을 봐야 시커먼 회색 담벽락밖에 없지 않소" " 아니, 그 회색 담벼락 저 건너편에 있는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십시요. 그리고 밤에도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십시다." 빅터 프랭클은 절망 속에 갇혀 작은 창 너머로 푸른 하늘을 바라 보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2천 500년 전 B.C 444년 느헤미야의 3차 귀환의 스토리의 처음부분입니다. B.C 586년 이스라엘은 당시의 바벨론 침략에 의해 예루살렘은 성전은 완전히 훼파되고 왕과 백성들은 거의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하게 됩니다. 1차 귀환이 스룹바벨에 주도로 이루어 지고 스룹바벨 성전 그러니까 예루살렘 제 2의 성전이 B.C 516년에 세워집니다. 따라서 70년 포로 생활은 예루살렘이 망하고, 세워지는 기간이 아니고, 정확하게, 성전이 훼파되고 성전이 세워지는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를 주도해 가십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에 이스라엘의 제 3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유심히 주시해서 보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3의 성전의 준비가 다 되었고, 올해 안에 착공을 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적 그리스도가 앉고, 7년 환란으로 들어가며, 주님이 오실때가 심히도 가까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2차 귀환은 학자 에스라가 영적인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무리들과 함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3차 귀환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 무리들과 함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느헤미야서는 3차 귀환의 이야기이며,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성벽 회복의 약속을 느헤미야를 통하여 완성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회복의 역사가 필요한데, 본문은 회복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교회도 영적인 회복과, 예배의 회복을 맞이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회복을 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관심이라는 것입니다. 1,2절 보시면, 느헤미야가 수산궁에 있는데, 자신의 형제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왔는데,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묻고 있습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수산궁에 살고 있습니다. 당시의 페르시아 왕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여름궁에 살았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겨울궁에 살았는데, 이 수산궁이 겨울궁이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당시의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왕의 술에 누가 독을 탔는지 왕이 마실 술을 미리 마셔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분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까? 깨끗한 사람이죠,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왕과 함께 국사를 논하기도 하는 지금의 대통령 비서 같은 직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부와 권세도 있었고, 세상에 부족한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유대 민족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묻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어도 느헤미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느헤미야의 관심은 온통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조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미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 가지고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조사에서 경제문제와 건강문제였다고 합니다. 너나 할 것없이 미국이든 한국이든 전 세계적으로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대통령을 뽑을 때 가장먼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통령을 뽑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 살게 해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건강에
관련된 것만 보이게 됩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온통 관심이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일만 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주님께만 관심이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느헤미야의 관심은 예루살렘의 회복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이 다시 세워질까? 그래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민족으로 만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 한국에서 80세 노인분이 죽은지 8개월 만에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도 역시 노인분이 죽은지 6개월만에 방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웃이든 자녀들이건 관심이 없기에 죽었느지 살았는지 조차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식물도 지극정성으로 관심을 가져주니 다시 살아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고기잡으러 간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 주시니 그의 영이 다시 힘을 얻고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회복이 되려면, 우리 서로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잠시 방학하시고 집에 계시는 성도분에게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 옆사람 보시면서 "우리 서로 관심을 가집시다"
-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회복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키실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3절 보시면,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았습니다. 당시에 바빌론에 포로로 사로잡힘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아 도시에 남아있는 자들은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다 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4절,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이 네 단계가 하나님 앞에 소원을 올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대표적으로 히스기야 왕이 이 눈물의 기도로 응답받은 사람입니다. 왕하 20: 5절보시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정말 눈물의 기도로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왕입니다. 시편 보시면,
눈물로 침상을 적셨다고 말하기도 하며, 눈물이 음식이 되기도 하며,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흘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신 적이 언제입니까? 너무 까마득 하여 기억도 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삶속에 문제가 있습니까?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오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만들어 보세요. 도와주실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고백하며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이러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분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면 혼자 끌어 안고 어떻게든 해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문제를 너무 묵상합니다. 기도하려고 무릎 꿇으면 어느샌가 문제의 묵상에 깊이 들어가 입신하지 직전까지 갑니다. 너무 깊이 묵상해서 소화도 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만 더 늘어납니다. 너무 문제에 집착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풀어주실줄 믿고 주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어느 미국 대학의 심리학팀이 사람들의 걱정거리에 관하여 서베이 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40%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공연한 걱정을 그 만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걱정거리 중의 30%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러니까 지나간 일들 가지고 걱정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걱정한다고 해서 지나간 시간이 돌아 오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10%는 병에 관한 걱정한다고 합니다. 그중엔 실제는 걸리지 않을 병에 관한 것도 많다고 합니다. 진짜로 걱정할만한 것은 8%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8% 중에서도 정말로 머리를 싸메고 걱정할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걱정과 문제를 너무 분석하다 보면 문제가 점점 커 보입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십시요. 그러기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네게로 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문제를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세계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최강의 나라에서 최고의 권세를 가진 왕의 최고 가까운 자리에서 신임을 받고 있던 느헤미야라면 이 문제를
아닥사스다 왕께 요청하는 편이 더 빨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께 나가서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크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9절 보시면,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신 약속이 잊지 않습니까? 그 약속 잊지 않으셨죠? 하고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었습니다.
갈보리 채플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이 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 그는 그당시수백 불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빚의 목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절친한 부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부자 친구는 척 스미스에게 약간의 돈을 부칠테니 필요한 곳에 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자 친구가 부친다는 돈의 액수가 빚보다 조금 더 많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부인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음속에서 "스미스야, 네가 왜 덩실덩실 춤을 추느냐?"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척 스미스는 "예, 친구가 기도 응답으로 돈을 보낸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춤을 춥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가는 말씀이 "돈이 어디 있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척 스미스는 "이 친구는 신실하니, 내가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렇다면 너는,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도와 주고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그 일을 위해서는 감사해 보았느냐, 춤을 춰 보았느냐? " 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보다 사람과의 약속을 더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하나님 앞에서 하나하나 되새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변덕쟁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한다면 우린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죠,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독자 아들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느헤미야는 회복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회복이 필요합니다. 3의 성전이 세워지고, 예전처럼 온 백성이 하나님 사랑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회복이 필요한 때 입니다.
지금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습니까? 역시 회복이 필요합니다. 무너졌던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너진 가정이 세워지는 회복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주님과 친밀함이 없었다면 관계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처음 주님을 만나서 기뻐하던 주님과 첫사랑의 그 순간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시면 느헤미야가 왜 회복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훼파된것을 이방인들이 보면 하나님의 영광에 오점이 생기기에 이스라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 일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하나님 살아계신 것을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영광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두가지기도 :
- 관심
- 눈물의 기도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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