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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5월2일 주일예배 낙심하셨습니까 - 요한복음 1장 1-17

by Peartree 2012. 12. 20.

낙심하셨습니까

 

요한 복음 21장 1-17

 

독일의 마르크화가 죽었다. 그래서 모든 동전과 지페들이 천국 문 앞에 모여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유로화의 도입으로 저희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 있기를 원합니다. " 베드로는 천국문은 열고 동전들과 10마르크, 20 마르크를 천국에 들여 보내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50,, 100, 500, 1000 마르크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왜 우리는 들어 갈 수 없나요?" 배드로가 대답합니다. 유감이지만 나는 너희들은 교회 안에서 본적이 없기 때문이야?

참 베드로 다운 판단입니다. 단순하며, 순박한 사람 베드로… 오늘은 베드로가 실패에서 좌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절망속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베드로의 인생이 펼쳐지는 장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엄청난 실패를 경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기 위해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빈 그물의 밤을 지났습니다. 그러나 새 아침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통해 빈 그물이 가득 차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받아주시며 그에게 사역을 맡기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야말로 베드로에게는 새 아침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힘들다고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베드로처럼 간절히 새아침을 바라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새 아침을 바라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1.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해야 합니다.

3절 보시면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선언합니다. 예수님도 안 계시고,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돌아선 지경이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해도 볼 낫도 없고, 예전에 하던 고기나 잡으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베드로가 그때 잠시 타락했었다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지만,

베드로가 먹고사는데 필요한 경비를 해결하기 위해 물고기 잡으러 갔다는 해석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날 베드로 일행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송사리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날 주님을 다른 날 보다 더 간절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3년 전 오늘같이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빈 그물을 털고 있을 때 주님을 만났지. 그때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첫사랑이 너무 좋았는데, 그러면서 예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말씀하시죠. 어제 아침에 제가 에발산과 그리심산을 설명하면서, 양과 염소를 말하면서, 오른쪽은 축복의 방향이고 왼쪽은 안쪽은 방향이라고 말씀드린적이 있습니다. 보십시요. 오늘 어느쪽으로 그물을 던지라 명하십니까? 오른쪽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물에 물고기를 가득하게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물을 끌고와서 육지에 대니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우고 계신것입니다.

베드로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세요? 치킨.. 닭 닭울음 소리만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싫어하는 음식? 숯불구이… 베드로가 또 옛생각이 납니다. 불과 2-3주전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무대 설정이 비슷한 것입니다. 그때에도 숮불을 쬐고 있었는데, 그 때 원걸과 투맨이 나를 알아보지만 안했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안는 것인데, 그후로 베드로는 숯불은 아픈 추억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참 짖굿으신 것 같지만 베드로를 위해서 새벽부터 설치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십니다.

이부분에서 베드로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다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큰소리치며, 나서기 좋아하고, 자신감에 넘쳤던 베드로가 지금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대목입니다. 실패는 누구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 만큼 우리 자신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예수님 없이는 큰 소리 칠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새롭게 일어서길 원하신다면 연약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예수님의 치료가 있습니다.

치료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와 주시면서 치료가 시작됩니다. 베드로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신이 아프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낫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 보시면,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립니다. 얘들아 ! ! ! 지친 제자들에게 힘이 되는 한 마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자녀들을 부르시는 사랑스런 엄마의 음성같은 것입니다. 듬직한 아빠의 음성 같은 것입니다.

우리 옆사람 보시고 옆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얘들아 고기좀 잡았니 (5), 물으시고는 배 오른편에 그물은 던지라고 하시며 구체적인 예수님의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마음을 만지시고, 그다음에 필요를 채워주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3년전에 한번 순종한 경험이 있죠.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그물을 던지며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순종할 때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혜령 씨는 60,7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였고, 당시 젊은이들을 잠 못들게 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이었습니다

[출처] 오혜령씨 간증|작성자 에이브

 

그러나 그는 흔히 똑똑한 지성인들이 잘 빠지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내 그물은 내가 채운다"는 자기 과신에 잡혀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30대 꽃다운 나이에 위암과 임파선암을 진단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 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했고 혈변을 보는 고통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때 매주 그에게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 50송이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반 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어쩐일인지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낚아채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정신 없이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실패의 현장에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에까지 따라오시는 것입니까" 그 말을 내뱉고 나자 그 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십 개의 양초가 녹아 내릴 때까지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된 어느날 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혼자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온몸에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왔구나' 그는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깨에 나 있던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고, 복수로 차 올랐던 배도 완전히 꺼져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주님께서 두 번째로 자기를 찾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그는 경기도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평화의 집을 경영하며 버림받은 노인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가 쓴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여러분 절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겐 포기란 단어는 없습니다. 우리는 포기할지라도 주님은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치료하신다는 것을 오늘 나의 말씀으로 붙잡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5-17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같은 질문을 세번씩 반복해서 베드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요한의아들이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네 그렇습니다." "Yes, Lord"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세번씩 질문했을까? 라는 것에 아마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똑같이 세번씩 다짐을 받기위해서 질문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크게 잘못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번씩 나를 사랑하냐고 물은 이유는 사명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앞으로 양을 치고, 먹이는데

있어서 주님 사랑하는 것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양을 치는데 있어서 자신감으로 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배반해도 안되는 것이기에 주님은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베드로를 실패에 처하게 만들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양을 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야곱이 창세기 31장 4절에 양은 치느라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라고 했습니까? 양은 다른 짐승과 달리 기르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양의 특징 1 : 눈이 나쁘다. (개들이 옆에서 뛰어다니면 그게 목자인지 알고 따라감)

2: 잘 속는다. 3. 잘 넘어진다. (맹수가 오면 잡아 먹히죠) 4.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 (일단 넘어지면 말 그대로 '벌러덩' 뒤집어 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일으켜 줘야 합니다. 5. 방향 감각이 없다. 6. 방어력이 제로다. 7. 죽음에 직면 하면 조용해 진다. (그래서 주님께서 잠잠한 어린양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고 . 사53장7절)

 

그러므로 이 양을 치는 것은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양을 맡기시기 전에 사랑이 있느냐 먼저 물으시는 것입니다. 누구의 양입니까? 주님의 양입니다 (내양을 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양이라도 맡겨 주시면 예수님을 사랑하듯 지극정성으로 잘 자라도록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기에 7년이 수일처럼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노예를 사고 팔고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죠를 매우 사랑하고 신뢰했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주인은 죠와 의논해서 했습니다. 어느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사기 위해 노예시장에 갔는데 죠도 물론 데리고 갔습니다. 상품처럼 진열된 많은 노예들 중에 대단히 늙고 야윈 검둥이 노예가 하나 있었답니다.

   

죠는 잠시 바라보더니 그의 주인에게 요청했답니다.

"주인님, 저 사람을 사시지요."

"그러나 그건 너무 늙어빠져 내게 별 쓸모가 없겠는데." 주인은 소리쳤습니다. "이봐, 죠! 원기왕성하고 젊은 애들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쟎나?" 그러나 죠가 너무 고집하는 바람에 주인은 그 늙은 흑인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 늙어빠진 노예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죠는 정성을 다해서 그가 건강해지도록 돌봐주었답니다. 이런 일들이 수 일동안 계속되는 동안 주인은 죠가 눈치채지 않게 계속 주시해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주인은 죠를 서재로 불렀답니다. "죠!" 나즈막한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얼마동안 난 너를 관찰해 보았는데 내가 참 이상하게 생각한게 있다.  왜 너는 그 늙고 쓸모없는 노예를 사라고 고집했는지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니 그 늙은이를 정말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돌봐주는데 혹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아닙니다. 주인님!"

죠는 대답했습니다. "그는 저의 원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 그는 나를 유괴해서 지금 주인님께 판 자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나갔던 그날 거기서 그를 보았을 때 한 작은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요 6:35)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이 마르거든  마시우라.(롬12:20) 저는 크리스챤이 되었는데 어찌 그를 돕지 않을 수 없습니까?

 

우리의 인생 가운데, 주변 가운데 불쌍한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내게 맡겨준 영혼입니다. 주의 사랑으로 잘 돌봐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