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지막 문안인사
로마서 16:1-5
오늘은 로마서 강해 마지막 시간으로 사도 바울의 안부인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교리서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래서 내용 자체가 딱딱하고 어려운 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로마서는 죄 많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죄인이며 멸망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죄인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고 절망인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도 누리게 된 것이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녀로서의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가야 맞는 것이죠.
이것이 로마서의 대략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결론지으면서 사도바울의 목회 사역 가운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몇몇 형제와 자매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사도바울의 목회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이름이 로마서 16장에만 총 33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뵈뵈 집사님에 대해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여자 집사님 뵈뵈를 소개해 드리길 원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문안 인사 리스트 가운데 첫 번째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이 뵈뵈 집사입니다. 바울의 동역자 33명 가운데 여자의 이름을 가장 먼저 기록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남자들이 아침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내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드렸습니다. 그 만큼 ‘남존여비’ 사상이 아주 강했었을 때인데, 여자의 이름을 가장 앞에 놓았다는 것은 그 만큼 뵈뵈 집사님이 헌신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다른 동역자들에게는 ‘문안하라’ 라는 표현을 써가며 문안인사만 했습니다. 그런데 1절을 보시면 뵈뵈 여집사님께는 ‘추천하노니’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뵈뵈 집사님을 당당히 추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다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 이 사람은 당신 교회에 꼭 필요한 일꾼인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서 2절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이런 부탁을 합니다.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 고 부탁을 합니다. 이 말은 뵈뵈집사를 도와주라는 말이 아니라, 뵈뵈 집사의 사역을 도와 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뵈뵈 집사님이 고와와 과부를 돕는 구제사역을 하면 그 일에 함께 동참해서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뵈뵈 집사님이 교회에서 김장을 한다면, 함께 동참해서 도와 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사람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고, 그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 주고, 격려하고 후원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체 뵈뵈 집사님이 어떤 사역을 했길래 사도바울이 이토록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까?
2절 하반절에 보시면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그러니까, 뵈뵈 집사님은 바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보호자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목회 사역에 방패가 되 주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말하길 그러면 뵈뵈가 여러 사람과 바울에게 어떤 방패가 되어 주었냐? 그것은 아마도 물질적 도움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에 선교사역을 하는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물질 (돈) 이었습니다. 그래서 천막을 만드는 일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도 좋고 선교도 좋지만,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 의 문제가 사실 더 시급하죠. 이 ‘의식주’ 의 문제가 해결 되야, 그 다음에 목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뵈뵈 집사님이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고마운 분이 아닐까 생각해서, 가장 먼저 이 집사님을 거론했던 거예요. 물질적으로 도와 주어서 고맙기도 하지만, 돈 걱정하지 않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마웠을 것입니다.
2) 두번째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 두 사람은 부부입니다. 사도행전 18:3절을 보시면 이 부부의 직업이 ‘천막’ 을 만드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바울과 이 부부의 직업이 같다고 사도행전18: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함께 일을 하며, 함께 복음을 전했던 거예요.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시면 바울이 이 부부를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 이라고 부릅니다.
함께 뜻을 같이 하고 함께 주의 일을 하는 동역자들이 있다면 그 목회는 성공한 목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동역자들을 얻기 위해서 장로님을 세우고, 집사 권사님을 세웁니다. 함께 동역하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동역은 하지 않고 직분만 가지고 있다면 그 목회는 힘이 들 수가 있습니다.
4절 보시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얼마나 열심히 바울과 동역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 놓았나니”
이들이 목을 내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만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바울의 목회를 열심히 도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목을 내 놓았습니까?
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말씀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들의 집이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교회는 지금처럼 번듯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가정교회 형태였습니다.
사도행전 1:13절에 보시면‘오순절 마가 다락방’ 처럼 다락에서 모이면 그곳이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2:12절에는 마가라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서 여러 사람이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이 교회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6:40절에는 루디아의 집이 교회였습니다.
본문 16:23절을 보시면,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로 가이오의 집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자기의 가정을 교회로 Open 하는 것이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예배 모임을 갖고, 교회에서 떡을 때고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식사며 음식을 누가 감당해야 합니까? 가정을 내 놓은 주인들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표현하기를 ‘그들은 목이라도 내 놓았다’ 라는 표현을 쓰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하반절 보세요.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나도 너무 너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이 가정에서 예배 드리고 음식을 먹고, 신세를 진 모든 이방 사람들까지 다 감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어느 정도로 바울을 도와주고 교회를 섬기기를 좋아했냐면, 성경 한구절 찾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19절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자세히 보시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의 교회 건물이 누구의 집이었습니까?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이사 가는 곳 마다 자기들 집을 교회로 Open 했습니다. 로마에 있을 때에도 Open 했고, 고린도에 있을 때에도 Open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그들이 참 감사한 사람들이라고 인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로마서 마지막 장인데, 이 마지막 장은 바울이 지금까지 사역하면서 자기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동역자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33명의 동역자들 중에 오늘 우리는 여자 집사님 뵈뵈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즘 시대에 한번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할 말씀 같습니다.
지금 목사님들의 목회 현장을 보면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목회는 목사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는 절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함께 동역할 일꾼들이 있어야 목회가 성장합니다.
사도 바울 같이 능력 많은 목사님 옆에도 도와 주는 동역자들에 의해서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 보다 훨씬 못한 목사님들이 어떻게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교회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야 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뵈뵈 집사님 처럼 목회자의 목회에 방패가 되어 주고, 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처럼 가 곳 마다 교회를 섬기고, 세워가면 그 가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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