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해야 삽니다.
수 24:14-24
한때 TV 광고 중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라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 광고는 1980년대 초에 ‘금성 백조 세탁기’ 광고에서 처음 사용한 문구입니다.
이 말은, 한번 잘 선택하면 10년이 평안하고, 잘못 선택하면 10년 동안 애를 먹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이와 유사한 광고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라든가,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합니다.’ 라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늘 선택이라는 틀 안에서 살게 되어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미래가 결정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선택의 시대라고 합니다. 옛날 한국에서는 남편과 아내를 선택하는 결정권도 없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저 부모님께서 짝 지어 주시면, 그것이 내 남편이고 내 아내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큰일 납니다.
지금은요. 멀티 초이스의 시대입니다. 영화관에 가도 멀티 플렉스라고 하여 여러 편의 영화가 한 영화관에서 상영됩니다. 골라 보면 됩니다. 자동차를 사더라도 옵션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텔레비전 채널도 수십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봅니다. 아이스크림 샵에 가보아도 아이스크림 종류 만도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이렇게 선택할 것이 많은 시대에 종교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종교 다원주의 시대라고 해서 선반에 올려져 있는 통조림 캔 선택하듯이, 많은 종교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종교는 별 차이점이 없다는 거예요.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는 이방신들과 여호와 하나님. 이렇게 신을 양쪽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신들은 다 잡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냐면,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15절을 보시면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겠다’ 는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저 강 건너 잡신들을 택하겠습니까? 이렇게 Pressure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호수아의 고별설교입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설교예요. 본문 29절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이 고별설교를 한 다음에 백십 세에 죽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설교에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용기를 주는 말씀을 할 만도 하죠.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고별 설교의 내용은 온통, ‘선택하고 섬기라’ 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누구를 선택합니까?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냉장고 하나 잘못 선택하면 10년 고생하면 됩니다. 그러나 섬겨야 할 신 잘못 선택하면 영원토록 고통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수아는 안타까웠던 거예요. 그래서 저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 선택하고 그를 섬기라’ 는 말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촉구합니다.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잡신들을 다 치워버려라. 이 말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여러분들 같으면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이 땅에 모든 종교는 같으니까, 네 마음에 드는 종교 아무거나 한 개를 택해서 믿으면 돼!’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나이스 하고 젠틀한 부모님’ 같아 보이지만, 자녀들의 영혼은 죽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만 이렇게 유언 하나라는 법이 없습니까? 우리들도 얼마든지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처럼,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를 통하여, 이 분이 한 평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이렇게 죽기 전까지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외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찾아보며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 우리 후손에게 당당하게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 분만을 섬기라고 외칠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하면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살았는지 두 가지만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여호수아가 하나님만을 선택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겸손한 그의 삶에 비롯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종으로 수십 년 동안 제2인자로 살았습니다. 모세의 비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섬기는 데에는 전문가 입니다.
모세의 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전쟁이 나면 최전방에 나가서 싸우는 장군이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장군이었고, 성막으로 돌아 오면 종이었습니다. 1인 2역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고별설교도 그가 살아온 1인 2역의 인생과 같은 패턴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의 장군처럼, 단호하게 말합니다. 잡신을 택하든지 하나님을 택하든지 하라고요.
또 섬기는 종처럼, 섬기라는 말을 무척 많이 합니다.
오늘 본문의 고별설교에만 해도 무려 14번씩 ‘섬기라’ 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15절을 보시면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백합니다. 이렇게 섬김의 삶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고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고백은 삶에서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사는 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닌데,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불가능 할 것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겸손하게 섬기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이 나오는 것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말년에, 여러분의 신앙 고백은 어떨 것이라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살다가 그때 가서야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거에요.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은 생활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신앙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얼마나 겸손한 삶을 살았냐면, 여호수아 19:50절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한 다음에, 그 땅을12지파에게 분배를 합니다. 그때 여호수아 같으면 순번1순위입니다. 지금 같으면 최고로 좋은 노른자 땅을 차지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니었다면 사실상 정복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은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 라는 땅입니다. 한 마디로 이 땅은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그 땅에 들어가 성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다가, 거기에 묻히게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겸손하고 깨끗하게 살았으니까, 당당하게 고별설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살지 않고, 인생 막 살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다음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아마도 ‘당신이나 똑바로 사십시요.’ 라고 할거예요. 아니면, ‘자기도 그렇게 살지 못했으면서 지금 누구에게 설교하는 거야!’ 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먼 훗날에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내가 어떤 고백을 할 수 있는지? 지금부터 고민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나의 신앙고백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고백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고백을 준비해도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한달 두달 미루다 보면, 그 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기는 말년에 하나님께 드릴 신앙의 고백, 지금부터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두번째로, 여호수아가 하나님만을 선택하라고 외친 이유는 백성들의 미지근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상태는 하나님과 이방신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중간상태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중간 상태가 있습니까? 신앙의 중간은 없습니다. 대충 믿는 것이 중간상태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대충믿는 것은 사실상 불신앙입니다.
로마카톨릭에서 천국과 지옥의 중간 상태인 연옥이라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연옥이라는 것은 성경 어떤 곳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뿐입니다. 신앙 아니면 불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15절을 보시면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그러니까, 잡신들을 택하든지, 하나님을 택하든지 하라는 말입니다. 중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주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한 주는 이방신 앞에 가서 절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불신앙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믿을 바에야, 차라리, 잡신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차라리 잡신들을 택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은 하나님을 택하라고 pressure 하고 있는 거예요.
이와 똑 같은 말씀을 우리 예수님께서도 하셨습니다. 계시록 3:16절을 보시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 말씀을 보아도 중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을 향하여 빨리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의 상태 그대로 유지하지 말고 하나님 바로 섬기겠다고 오늘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15절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언제 결정하라고 말씀합니까? “오늘 택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이태리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이태리는 Lottery 에 당첨되면 지급기한 겨우 20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Lottery 에 당첨되면 20일 안에 당첨금을 타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 날짜를 넘기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6600만 유로(약 $ 86 million dollar)에 에 이탈리아의 한 남자가 ‘깜빡 잊고’ 복권회사에 당첨금 지급 신청을 하지 않아 평생에 한번 찾아온 엄청난 ‘대박’의 기회를 날렸다고 합니다. ‘이 가난한 연금생활자는 딸 결혼식 준비로 너무 바쁘게 지내다 뒤늦게 당첨 됐다는 사실을 떠올린 순간 충격으로 졸도해, 로마 인근 병원에 실려간 뒤 2시간 만에 깨어났다고 이탈리아 통신들이 보도했다.’
이 당첨자는 당초 당첨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마감시한인 지난 주말까지 당첨된 복권을 복권회사에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복권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州) 밀라노 인근에서 판매된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람 참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사람에게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운이 이미 왔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미루다가 그만 행운을 날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회가 아직 있을 때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는 마지막 설교라고 해서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30년 넘게 하나님 만을 섬겨야 한다고 외쳐왔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Lottery에 당첨된 복권 지갑 속에 넣고 움직이지 않고 있던 것입니다.
여러분 결단하지 않는 미지근한 신앙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십니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결단하지 않아서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제가 ‘신앙은 생활’ 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신앙은 결단’ 이라고 말씀 드리길 원합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주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결단하지 못하고, 미지근한 신앙의 모습을 살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원합니다.
반응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예요.
‘결단’ 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으면, 내가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바로 섬겨야지’ 하면서 결단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에, 주의 전에 나오지 못하고 육신에 져서 일어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온전히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 결단하길 원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 보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봐야지’ 라고 하면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그대로 영혼이 죽는 거예요.
오늘 여호수아의 이런 외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1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 하오리니”
이렇게 반응하면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20절에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복이냐 멸망이냐의 차이입니다. 결단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이제부터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정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분명 ‘너희가 나를 온전히 섬겼다’ 라고 하시며 칭찬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날을 소망삼고, 여호수아의 삶을 본받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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