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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3월 31일 부활주일 설교: 갈릴리로 가라 - 마태복음 28:1-10

by Peartree 2013. 3. 30.

갈릴리로 가라

 마태복음 28:1-10

   

북한은 김정일의 시체를 금수산 기념궁전이라는 곳에 미이라로 영구보존하고 있습니다. 그 시체를 보존하는데 들어간 액수가 천문학 적인 숫자인데, 9 Billion Dollar 정도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시체는 썩지 않게 방부제로 처리하고 항상 유리관 속은 섭씨 16도로 유지해야 죽을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된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에 가면 레닌의 시체가 그렇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가면 모택동의 시체가 그렇게 보존되어 있다고 하죠.

세상의 모든 인생은 부자든 가난한자든, 권력이 있던 없던 무덤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시체를 썩지 않게 하면 뭐합니까? 그것도 역시 무덤인 것입니다. 상당히 비싼 무덤인 거죠. 인간은 이렇게 이 땅에서 아무리 큰 부와 영광을 누렸어도 결국에 자랑할  것은 무덤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덤을 자랑하면 무엇합니까?  무덤은 죽음의 상징인데요.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무덤이 없는 것을 자랑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시면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우리 예수님은 무덤이 없으십니다. 잠이 누우셨던 곳은 있었겠지만 그곳에 영원히 누워계시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하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실 사셨습니다 ^_^)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죽음을 이긴 날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현장 실습으로 보여주신 날인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 주님은 역전의 용사이십니다. 힘없이 골고다로 끌려가, 순한 양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 같아 보였지만, 죽음의 사슬을 끊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 우리 주님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가 시간 낭비하고, 돈 낭비하며 예수를 왜 믿는지, 마치 미련한 사람들 같아 보이겠지만 마지막 그날에 우리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래서 해처럼 달처럼 영원토록 주님과 같이 천국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곧 역전의 용사들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길이 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생 최대의 역전의 한판 승부입니다.

여러분 그것 때문에 예수 믿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것 때문에 예수님 믿습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셨기에 나도 죽음을 이길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천국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기에 나도 그곳에 함께 들어가 살 것을 믿기에 예수님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이 부활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모릅니다. 이 부활이 없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아무 소망도 낙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이 되는 것입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암소처럼,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살아 나셨고, 그 주님께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할 것이라말씀하셨기에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제가 부활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역전의 용사신데, 뭐 역전에 대해서 좋은 예화가 없나 생각하다가 권투선수 홍수환 선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 5기 하는 경기를 보았습니다. 2회전에 4번 다운을 당하고 3회전에 K.O 를 시키는데 얼마나 통쾌하던지, 이긴 것 다 알면서도 보았는데도 보면서 감동을 먹었습니다.

지금 홍수환선수가 나이가 63세라고 하는데, 한국의 온누리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얼마나 신실하게 믿음생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 속에 계셨던 사흘 동안 예수가 K.O. 패 당했다라는 슬픈 소식이 입과 입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울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2절을 보시면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이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왔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도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 누우셨던 곳을 보라너희들이 찾는 예수님께서 역전승하셨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서 천사가 이렇게 말하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말해 주라, 예수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고 거기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말해줍니다.

10절에도 보시면, 이제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십니다. 무서워 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대체 갈릴리란 땅이 어떤 장소길래 천사도 그곳으로 가라고 하고, 예수님께서도 그곳으로 가라 재촉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오늘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 하고 많은 장소 중에 왜 갈릴리로 가셨으며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기 원하셨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장소라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남은 열한 제자 모두가 이곳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들어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바닷가까지의 거리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걸어서 3일을 꼬박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히 먼 거리였던 것입니다.

다시 살아 나신 주님께서 그냥 가까운 장소에서 제자들을 만나면 되시지 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

예수님에게는 뭔가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장소라는 것입니다. 처음 만난 것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비롯해서 사나이 13명의 주 활동 무대였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곳에서 병자를 고치고, 그곳에서 주님과 같이 먹고 마시고, 죽을 고비도 넘기고, 하루는 빈 그물을 들고 낙심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찾아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게 해 주신 곳이 바로 이곳 갈릴리 바닷가 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주님은 이곳을 택하셨을까요?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첫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전에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같으면 어떻게 합니까? 3일 시간도 주지 않습니다. 당장 겟세마네 동산으로 모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 봐라, 이 장소가 너희들이 나를 배신한 곳이다. 그럴 수 있냐, 주인은 잡혀 가는데, 너희들만 살겠다고 주인을 버리고 도망가다니 라고 하면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주님은요.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려고 죽으셨어요. 그리고 다시 살아나서도 용서하시려고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보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님을 따라간다고 하는 우리들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 용서가 되지 않으시면, ‘주님은 죽기까지 용서하셨는데 뭐가 대수라고 용서 못하나!’ 라고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은 3일 길을 갈릴리로 향하여 걸어가면서 생각 많이 했을 것입니다.

작심 3일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결정을 하는데, 보통 3일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라고 합니다. 3일이 지나도 결정을 하지 못하면, 시간을 더 주어도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도, 이삭을 데리고 3일길을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3일 길을 가다 보면, 이삭을 제물로 드려야 할지, 드리지 말라야 할지 충분히 결정한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로 3일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3일 길은 충분히 회개할 시간입니다. 충분히 뉘우칠 시간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그때 우리가 너무했어! 주님을 그렇게 혼자 두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데!하면서 가는 도중에 다 회개했을 것입니다.

 

이토록 갈릴리는 회개의 장소요. 주님을 처음 만난 장소요. 다시 시작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나 내 마음에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고 생각 되어지시면, 그것 때문에 주님이 죽으시고, 그것 때문에 주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용서가 잘 안돼요할 때마다, 주님을 처음에 만났던 나만의 갈릴리로 달려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용서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회개하고 새 출발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주님께서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냐면 그 곳은 제자들이 사명을 받은 장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주셨던 장소가 갈릴리 바닷가였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손에는 여전히 그물을 손에 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부르시던 장소가 갈릴리였습니다.

마가복음 1:16절에 보시면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렇게 가룟유다만  빼고 나머지 열 한제자는 모두 갈릴리에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갈릴리! 그곳은 사명을 새롭게 하는 곳입니다. 식어졌던 사명을 다시금 일깨우는 곳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제가 예전에 사명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면서, 사명에는 가르치는 사명, 복음 전하는 사명, 구제하는 사명, 섬기는 사명 등등을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로 통일하고 싶어요. ‘예수믿는 사명 으로요.

 

저는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이 예수 믿은 사명하나 만큼은 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욕심을 내자면, ‘예배 드리는 사명이 충만하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광야에 나가 우리 하나님께 예배 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 하나 바라보고 목숨을 걸고 출애굽하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갈릴리에서 만나자……’ 너가 처음 사명을 받고, 나를 따르겠다고 고백했던 그 장소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십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교회 귀한 성도님들 모두가 예수 믿는 사명 하나 만큼은 갈릴리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갈릴리에서 너무 멀리 떠나 온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한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로 고백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 떠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 갈릴리의 고백은 어디론가 간데 없고, 세상의 한 복판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님들 중에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예전에 정말 열심히 믿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열심히 믿고 섬기던 그 나만의 갈릴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조차 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분들입니다. 갈릴리를 아예, 잊고 사는 분들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갈릴리에서 만나자!

주님 처음 만났던 그 곳에서 다시 새롭게 출발 하자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처음으로 받은 사명, 세상 세파에 시달리면서 까마득히 잊고 살았지만, 갈릴리로 다시와 사명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목숨이 두려워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숨죽이고 있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문을 박차고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갈릴로 가서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믿음이 다시 회복되게 되죠.

 

그런 제자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갑니까?  “예수님 다시 살아나셨다 고 하면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목숨을 걸고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사망 권세 죽음을 이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도 그렇게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믿음 버리지 않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의 갈릴리로 돌아가 다시 사명을 회복하며, 다시 사신 주님 증거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