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과 사랑
에베소서 5:22-33
저는 가끔, 쓰레기 차를 보면, 저 많은 쓰레기를 어디에다 갔다 버릴까? 라는 호기심이 생기곤 합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사이의 태평양에, 텍사스의 두 배 넓이 만한 섬이 있다는 것, 아십니까? 이 섬의 이름은 쓰레기 섬입니다. 플라스틱 병이나, 비닐 봉지 같은 쓰레기더미로 덮여 있어서, 사실상 죽은 바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빛이 전혀 통과하지 못하니까, 바다 생물들이 점점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텍사스의 두배 넓이 만한 이 바다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냐면, 해변에 있는 쓰레기들이 바람에 의해서, 태평양으로 모여들어 생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넓은 쓰레기 섬이 태평양에 한 개 더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지구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구만 살리면, 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보다, 더더욱 살려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썩어져 가는 사회입니다. 사실 자연 생태계보다 더 먼저 살려야 하는 것이 이 사회생태계라는 것입니다. 이 사회생태계가 썩어질 대로 썩어지면, 세상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 로마가, 힘이 없어 망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가 오염되서 망한 것이 아니라, 로마사회가 썩어서 망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돈이 없이 망한 것이 아닙니다. 동성연애, 물질 만능주의, 쾌락주의에 의해서, 사회가 썩어서, 멸망한 것입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짐머만(Zimmerman)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회가 붕괴되기 직전 그 마지막 단계에는 전형적인 11가지의 행동패턴이 나타난다. 그것들은 이런 것이다. 이유 없이 쉽게 해버리는 이혼의 급증, 자녀들 수의 감소, 부모멸시 증대, 결혼식의 의미퇴조, 간통법 폐지, 자녀양육의 어려움, 청소년 탈선의 급속한 파급, 각종 성문란의 보편화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가정과 직결된 것들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패턴들은, 먼저 가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붕괴되면, 자연히 사회도 붕괴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마귀가 가장 많이 공격하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가정입니다. 남편과 아내입니다. 자녀들입니다. 이것만 해체시켜 놓으면, 사단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게 해서, 예수님을 잘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정을 해체시켜 제대로 믿음 생활 할 수도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단이, 옛날처럼, 예수 믿지 말라고, 남편을 통해서, 핍박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신앙생활 하신 우리 어머니들은 참 고생 많았습니다. 교회 간다고, 남편이 두둘겨 패면, 맨발로, 도망쳐 나와 교회 오곤 했습니다. 남편이 머리 빡빡 밀어놓으면, 하얀 수권 머리에 두르고 교회 오시는 분도 봤습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왜 성장을 했냐면, 그렇게 핍박을 해도, 가정을 지키려고, 우리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혹시 가정에 소홀히 하고, 교회에만 가서 자빠져 있다는, 핀잔을 들을까 봐, 흠 잡을 데 없이 살림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모교회에, 부인을 핍박했던, 남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나중에는 집사님이 되셨는데, 왜 이분이, 부인을 그렇게 핍박했냐면, 저녁상을 안 차려주고, 교회에 간다는 거예요. 남편분이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왔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겠죠? 그래서 이분이 화가나서, 예배중에, 부인 머리채를 잡아 끌고 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가정을 지키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 가지 말라고, 핍박하는 남편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밥도 못얻어 먹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어디 하늘 같은 아내에게, 교회 가지 말라고 말을 합니까? 간이 부은 것이 아니라, 간이 없어야, 요즘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간큰 남자 시리즈가 있는데, 정말 요즘은, 이 유머가, 유머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몇 개 소개해 드리면 ;
아침에 밥 달라고 식탁에 앉는 남자. 간큰 남자 입니다.
아내가 잔소리하는데 말을 끊는 남자. 간큰 남자예요.
돈 달라는 아내에게 어디 쓸 것이냐고 물어보는 남자.
밤늦게 들어온 아내에게 어디 갔다 왔느냐고 감히 물어보는 남자.
아내가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야구 본다고 채널 돌리는 남자.
벌어오는 것도 시원찮으면서 음식 타박하는 남자.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남편을 통해서, 예수 믿지 못하게, 핍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는 사단이 어떻게 공격해 옵니까? 가정의 해체입니다.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교회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는 거예요. 가정에 불만이 있는 남편치고, 교회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아내가, 믿음이 자랄 수 있습니까? 부모에게, 반항하는 자녀들이, 신앙생활 잘 합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자라고, 교회가 성장하려면, 가정이 먼저 건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건강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만든 제도가 가정제도 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는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단은 이 가정을 어떻게 하면, 무너뜨릴까, 노리며, 공격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단은 하나님과는 아주 정 반대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는, 청개구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만든 이 가정제도를, 사단은 무너뜨리리 위해서 끊임없이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너져 가는 이 가정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말씀에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 번째로, 우리 가정이 바르게 세워지려면, 먼저, 남편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시면, "아내들이여" 라고 하시며, 아내의 역할을 먼저 말씀하시고, 25절에는, "남편들아" 라고 하시며, 남편의 역할을 나중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역할을 먼저 언급했다는 것은, 그 만큼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2절에 아내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그냥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주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께 한 순종은 잘못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종'이라는 말은 '아래에서 잘 받들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잘 받들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실 때, 창세기 2:20절을 보시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와를 만드셨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요, 남자를 돕는 역할입니다.
여자분들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남자가 약하기 때문에 여자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전서 3:7절을 보시면, "여자가 더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 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내보다 강한 이 남편들을 왜 도와야 합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라고 하셨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남편을 돕지 않고, 업신 여겼던 여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던 사례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아내의 이름이 미갈입니다. 어느날 다윗왕이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니까, 너무 기쁜 나머지 덩실 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나 기뻐했는지 바지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사무엘하 6:1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 여기니라"
미갈은 자기 남편 다윗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들춰내다 시피 했습니다. 그 이유로, 평생 자녀를 갖지 못하게 되죠.
남편의 허물을 들춰내서, 좋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누워서 침 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이런 허물이 있다면, 아내가 덮어 주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돕는 것입니다. 이 도우라는 것이 거창하게 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부족한 2%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내들에게, 여러 가지를 도우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복종하라고만 하십니다. 24절에도, 또 말씀하십니다.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라" 한 두번 복종하고 했다고 생색내는 것 아니고, 범사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왜 복종해야 하냐면, 23절에, "남편이 아내의 머리" 니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어디에서 명령을 내립니까? 머리에서 명령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머리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고, 손과 발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지적장애인' 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반드시 머리에서 명령을 해야, 정상인인 것입니다.
여러분, 정상적인 부부가 되기 원합니까? 아니면, 장애를 가진 부부가 되기 원합니까? 정상적인 부부가 되기 원하시면, 머리가 명령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 왜 이렇게 불공평하게,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질문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이것이 질서입니다. 이 질서가 깨지면, 사회도 깨져 버리고, 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정사역하시는 사역자님들이, 아내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면, 좋아할 아내가 없으니까, 좀 부드러운 말로 바꾸었는데, '남편을 세워 주십시요' 라는 말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우는 것보다. 복종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랑하는 꿈의교회의 아내 되신 분들이여, 제발 남편을 세워 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도요. 아빠를 아빠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내의 책임이 크다고 합니다. 자녀들 앞에서, 아빠를 무시하고, 업신 여기면, 그 아이들이 분명히 아빠를 무시합니다. 아동 범죄 연구소에 나온 통계를 보면요. 교도소에 수감된 문제아들의 45%는 아버지와 함께 자라나지 못했고, 다른 40%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가 없거나,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라게 동기를 조사하니까,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토록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아버지를 집에서 세워 주십시오. 심리학자들은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을 가르쳐 "father-hunger"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것 처럼, 인간의 내면에는 아빠를 갈망하는 잠재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남편이, 그리고 아빠가, 그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또 남편들이 그 자리를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아내들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 여러분, 당신의 남편을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건 남편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옆에서 도와야 세워진다고 말씀합니다. 남편은 주님처럼 섬겨 주십시요. 그러면, 분명히 주님은, 그 가정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내들 이야기만 하니까, 듣기 힘들으셨죠.
이제부터는 남편들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2) 두 번째로, 우리 가정이 바르게 세워지려면,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아내의 역할을 먼저 언급하고, 남편의 역할을 나중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이지만, 남편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면을 더 많이 할애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남편들에게 할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은, 남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요점은 단 한가지입니다. '아내를 자기 몸 처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서 참으로 민감합니다. 감기 기운이 조금만 있어도, '감기 오려나봐?' 하며 금새 알아 차립니다. 조금만 피곤해도, 금새 알아 차리고, 조금만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습니다. 내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압니다. 성경은 부부는 '한몸' 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아내는 내 몸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몸을 보호하고, 아끼듯이, 아내 역시 보호하고 아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들은 어땠습니까? 저희 아버지께서도, 평생 저희 엄마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살아계실 때는, '여자는 속으로 사랑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사랑해야 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속으로는 끔찍히 사랑하느냐,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표현해야 알 수 있습니다. 속으로만, 사랑하다고 하면, 요즘세상은 고지 듣지도 않습니다. 겉으로 표현해도, 알아 줄까 말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한다' 고 사랑표현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셔서 물으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물으신 것은, 입술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입술로 표현 하라는 것은,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동으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 첫째는, 귀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3: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자로 알아 더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아내들은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정서적인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수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남편들의 무례함으로 아내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귀히 여기라"는 말은, 영어 성경은, 'Respect' 로 번역했습니다.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존재 가치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성의 전화' 라는 여성인권단체가 있습니다. 그 단체에서 상담한 통계를 보면, 아직도 가정 붕괴 책임의 90%는 남편들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남편들에게 할 말이 많은 것입니다. 그 중에 보면, 여러가지 사례들이 있습니다. 가정폭력, 외도, 부부갈등이 60%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 60%는 어디에서 비롯되냐면, "아내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고 합니다.
여러분, 아내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비결입니다.
- 두번째로,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냐면,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골3:19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 남편들이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지, 잘 모를 것 같으니까,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아내에게 모질게 대하지 말라" 라고 말씁합니다. '함부로 대하지 말라' 라는 말입니다.
한국의 가정들의 이혼 사유중에 가장 많이 차지 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 함부로 대하는 것, 신체적으로는 구타를 하고, 언어적으로는 폭언을 하는 것,,,,,,,,,,,, 그런데 구타보다는, 폭언이 더 상처를 준다는 것 아십니까?
- 내가 왜 당신 같은 여자랑 만나서 사는지 몰라.
- 왜 아직도 그 모양이야
- 당신은 왜 다른 여자들처럼 못하는 거야. … 이런 말 하다가 급기야는 이혼하는 것 입니다.
이 아내들이,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 가운데 첫 번째 말은, 이런말이 아니고, "사랑해" 라고 합니다. 참 단순하죠. 우리의 아내들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남편들은 이 말을 잘 못합니까? 그러나 우리 꿈의 성도님들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부터라도, 말 한디라도, 힘이되고, 격려해 주는 말로 바꾸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정의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는 남편을, 주님대하듯이, 섬기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정의 질서가 서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 잘 해도 안되고요. 양쪽 모두, 같이, 복종과 사랑으로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살아야, 신앙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살 수 있고, 사회가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이런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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