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세례요한의 자기 발견 - 요한복음 1:15-28

by Peartree 2012. 12. 25.

세례요한의 자기 발견

요한복음 1:15-28

 

지난 시간엔 '요한복음 서론'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친히 이 땅에 오셨는데,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았다 라고도 말씀을 드렸죠.

 

오늘은,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에, 예수님의 길을 미리 예비한, 침례요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어떤 회사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내자, 그 광고를 보고, 약 70명의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인터뷰는 인터뷰를 보는 사람이 없는 인터뷰였습니다. 조그만 방에, 한 사람씩 들어가면, 방안에 커다란 거울이 있고, 거울 위에, 네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그것으로 인터뷰는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방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네 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데, 답도 간단했습니다. 맞으면, 'O' 틀리면, 'X' 라고 적으면 되는 것입니다.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1) "이 사람은 정직합니까?" (이 사람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말하겠죠?)

2) "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3) "이 사람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4)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채용하겠습니까?" 였습니다.

 

드디어 시험을 다 치른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70명중에, 단 한 명만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만 유일하게, 이 네 개의 대답에 'X' 라는 답을 적었다고 합니다.

 

그 회사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뽑았던 것입니다.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대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남을 비판하지도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이대로는 영혼이 죽을 수 밖에 없기에, 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이렇게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 미국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죠. 이 사람처럼 농구를 잘 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나오지 않을거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이클 조던이, 한 때, 잘 나가던 농구 생활을 집어치우고, 야구 선수 생활을 했던 적이 있어요. 워낙 유명하고, 운동에 소질도 있고, 어느 정도 야구도 곧잘 하니까, 프로야구에서 이 사람을 받아 주었습니다.

이 마이클 조던이, 갑자기 농구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어렸을 때는, 농구보다, 야구를 훨씬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도, 너는 야구를 하면, 성공 할거야. 너는 야구를 하면, 최고야 될거야. 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농구 대 스타가 되서도, 늘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한 생각이 있었는데, '나는 농구보다, 야구를 더 잘해, 그래서 앞으로는 야구로 성공할 꺼야' 그런 맘을 먹고 산 것입니다. 그리고는 급기야는 야구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야구 선수로 전향 한 다음에, 많은 언론들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 천재지만, 야구 선수로는 형편없는 삼류 선수였다'

어렸을 때, 친구들 말만 믿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결국에 다시, 농구 선수로 복귀를 하게 되죠.

 

오늘 본문, 19절을 보시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거침없이 외쳐대며, 죄를 지적하고, 침례를 주고, 천국에 대해서, 선포를 하니까, 이를 지켜보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라고 물어봅니다.

 

제사장들이, "네가 누구냐?" 라고 왜 물었나면, 하는 행동이나,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메시야 거든요. 천국에 대해서 말하죠, 죄를 회개 하라고 말하죠, 세례를 주죠, 제자들도 있고, 사람들도 많이 따라 다니죠. 그래서 혹시 이 사람이 오리라고 하신, 그 메시야가 아닌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세례요한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20절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라고 말합니다. 참 센스가 있는 대답인거 같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궁금하게 여기는지, 꿰뚫어 보고, 그들이 원하는 대답해 준 것입니다.

 

분명히 이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다' 라고 답해야 맞습니다.

제가 유시현 집사님께, "너누 누구냐?" 라고 물으면, "네, 제 이름은 유시현이며, 남편은 홍성국이고, 아이들이 셋 있으며, 집은 어디어디 삽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나는 "안 숙자 권사님이 아닙니다" 라고 답한다면, 맞는 대답입니까? 동문서답인거죠.

 

지금 요한이, 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네가 누구냐?" 라고 하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 만큼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발견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완벽하게 발견하고는, 딴 맘 먹지 않고, 그 길로 묵묵히 걸어간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21절을 보시면, 사람들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아냐?" 묻습니다. 그러자 아니다, 그러면 선지자냐? 라고 계속해서 추궁하며 묻습니다. 그래도 아니라는 거예요.

 

마이클 조던에게, 넌 참 농구는 천재다, 너 참 운동신경이 많이 발달했어, 그래서 그런데, 던 야구를 해도 잘 할 것 같애?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요? "글쎄, 농구도 잘 하니까, 야구도 잘 하지 않을까!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죠"

 

그러나, 세례요한은요, '글쎄' 라는 표현도 한번 쓰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일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0.1%로 두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그런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례요한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대답해 주는데, 23절에,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 '소리' 가 형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 이것이 세례 요한의 자기 소개서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소리' 에 불과하다. 한번 말하면, 없어지는 소리, 사람들이 듣고는, 없어지는 소리. 나는 그런, 있으나 마나 한 존재다. 세례요한은, 이렇게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고, 오직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을 하실 수 있는, 발판만 마련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이야기 있습니다.

옛날에 임금이 타고 다니는 당나귀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임금이 당나귀를 타고 나라를 한 바퀴 순찰하면 온 국민들이 나와서 왕에게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임금을 등에 태운 나귀도 왕을 태운 역할에 걸맞게 온갖 아름다운 장식을 해서 멋지게 보였습니다. 국민들은 왕과 함께 그 나귀를 향해서도 박수 갈채와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니까, 나귀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나귀는 몰래 궁궐을 빠져 나와, 거리를 뽐내며 걷습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서야, 나귀는, 아하 ! 내가 환호를 받는 것은, 왕을 태우고 다녔기 때문에 그렇구나, 그때서야 깨닫고는, 임금을 잘 태우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세례요한은, 나귀 처럼, 깨달을 것도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나는 그분 앞에서, 외치다가, 소리처럼 없어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 소리는 그냥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야, 소리가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이얼린 소리는, 반드시 바이얼린을 들고 연주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세례요한은 자기는 그냥 '소리' 라고 말하는데, 연주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연주하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케스트라나, 음악회 같은 곳에 가면, 아름 다운 연주를 듣습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쳐주고, 환호를 보내줍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곡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헨델의 '할렐루야' 라는 교향곡이 금세기 최고의 곡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할렐루야' 라는 이 곡에게 박수를 보내지는 않습니다. 그 곡을 만든, 헨델이나, 그 곡을 연주한,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죠.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의 삶은 너무도, 훌륭하지만,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그냥, 휼륭한 곡에 불과하다, 훌륭한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정작 높임을 받으셔야 하는 분은, 이 소리를 만드신, 주님이셔야 한다. 고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알고, 겸손하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겸손했던지, 27절에 보시면,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I am not worthy to untie"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이런 세례요한을 향하여, 나중에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여자가 나은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라고 최고로 높여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겸손과 자기 발견은, 결코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주님 앞에서는 한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주자가 없다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하나의 악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찬들은, 우리에게서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야지,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크리스찬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서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당나귀처럼 말이죠.

우리는 우리에게서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야,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정말 크리스찬이란 소리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나귀처럼, 왕을 태우지 않고, 거리를 나가 보세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크리스천 다운 삶을 살 때,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요한은 주님의 초림을 예비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은 다시 이 땅에 재림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세례요한 처럼, 주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세례요한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전하는 소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죄를 지적하고, 천국을 소개하는 소리를 발하면,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