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랑, 나그네 대접
히브리서 13:1-2
드디어 오늘로서, 히브리서 강해, 마지막 장인, 13장까지 왔습니다. 히브리서를 처음 시작할 때, 히브리서의 주제는, '우월 하신 예수님' 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사보다 우월하시고, 멜기세덱보다 우월하시고, 대 제사장보다 우월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특징이라고 하면, 믿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1:1절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쉬운 말로 말씀 드리면,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마는, 분명히 있으며, 앞으로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는 것' 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우리는 천국에 가본적은 없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에, 예수님을 믿으면, 분명히 그곳에 갈 것을 확신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보이지는 않지만, 미리 보고 확신을 갖는 것' 이 믿음입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죽 나열하고 있는데, 이 믿음의 선배들도, 그들의 눈에 천국이 보이진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확신하며, 소망 가운데, 살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처음엔, 아벨의 믿음에 대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아벨은 산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받으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등등, 믿음의 조상들을 소개 하는데,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하게 있을 것을 확신함으로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13장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얼마나 우월하신지, 그분이 어떻게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으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13장, 한 장을 더 썼습니다.
어째서, 이 한 장을 더 기록했냐면, 신앙생활이란, 믿음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시작하고,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13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13장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22절은, '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 고 말씀합니니다. 즉, 믿음과 행함은 같이 가야 하는, 커플인 것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도, 13장이 없다면, 믿음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3장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장을, 절 별로 살펴 보시면, 1절은, 형제 사랑에 대해서, 2절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방법에 대해서, 3절은, 갇힌자와 학대 받는자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4절은,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음행이나, 간음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5절은, 돈을 사랑치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치 말라고 말합니다.
돈을 벌려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성경은, 열심히 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돈이 인생의 전부이며, 돈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돈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하나님보다 돈이 앞서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 보다, 돈 버는 게 더 중요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13장은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1절과 2절의 말씀인, 형제 사랑과 나그네 대접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1절을 보시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고 말씀합니다. 한번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뭐냐면, 사랑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빼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빼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부분을 빼버리고 기독교를 얘기해 보십시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도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지 않으사, 독생자를 주시지 않으셨으니' 라고 써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니, 예수님도 보내지 않을 셨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아무것도 아니라" 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3:2절엔, 믿음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마지막 13장을 통하여, 지금까지 믿음에 대해서 배웠으면, 그 다음엔 우리가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마지막 한 장을 더 할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까? 라고 질문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사랑을 나누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두 가지를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2절에 보시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대접을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대접하는 것을 잊어 버리지만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어느 집에 가서 아주 분에 넘치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보통은, '이 신세를 어떻게 갚지? 그리고 언제 갚지? '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벌써, 대접을 받기도 전에, 부담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되 돌려 주어야 한다는 부담말입니다. 그런데요. 가장 이상적인 대접이 어떤 대접이냐면, 대접하는 사람과, 대접 받는 사람이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접하는 사람은, 나중에 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대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접 받는 사람은, 받은 것으로 끝나면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돌려 주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대접하는 일이 생기면, 그것은 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접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대접입니다. 그래서 남을 대접 할 때는, 너무 극진하게 하는 것도, 부담이 되서 좋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손님을 청하면, 손님에게 이렇게 말하죠. 'Please, make yourself at home' 당신 집처럼, 편안하게 쉬십시요. 사실, 이렇게 대접하고, 또 받아야 정상인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구요? 대접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대접하기를 잊어 버리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로, 사랑을 나누기 위한 구체적인 두 번째 방법은, 손님 대접이 특별행사가 되서는 안되고, 평상시 일처럼 몸에 배여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2절 하반절을 보시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 이 누구입니까? 이들이면, 한 명이 아니고, 두 명 이상인데, 아브라함과 롯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8:1절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고, 19:1절에는 롯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8:1절의,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천사 세 명이 섰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이 달려가, 물을 조금 가져올테니,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아래 쉬고 있으면, 떡을 가져 오겠습니다. 말합니다. 그리고는, 급히 장막에 들어가 아내 사라에게 떡을 만들라고 하고는, 자기는 또 짐승 떼에 달려가 송아지를 잡고, 버터와 우유와 요리한 음식을 가져와서는, 천사들이 먹고는, 축복을 해 주시는데,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축복을 해 줍니다.
또 19:1절에는, 롯이 성문에 앉았다가, 두 천사를 보고, 아브라함처럼,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십시요. 라고 말하고는,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워 천사들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는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테니, 이 성을 빠져 나가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대접을 하는데, 꼭 음식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을 한 다음에는 꼭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롯의 손님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평상이 몸에 밴 행동이었습니다. 이들은 손님 대접을 늘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까지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지 중에' 라고 말합니다. 특별한 계획을 세워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몇 달전에, 다큐멘타리로, '안동 최부자' 라는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다. '옛말에 부자 3대 못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토록, 부자로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말인데, 안동 최부자는 400년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자로 약 13대를 이어온 것입니다. 그 비결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옛날에는 과거를 보러 다니는, 선비나, 객들이 많이 있었는데, 안동 최부자는, 그들을 위해서 방들을 다 오픈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 십명의 선비나 객들이 와서 음식을 대접 받고, 하룻밤 묵고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갈 때도, 약간의 노자돈과, 대문앞에 쌀 뒤주를 놓아서, 조금씩 퍼 갈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홍건적과 같은, 의적들이 부자집들을 다 불태우고, 약탈해 갈 때에도, 안동 최부자 집은, 한번도, 도둑을 맞아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도적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손 대접은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일상적으로 해야 된다는 좋은 예화인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너무 크게 대접하라고 말하지 않고, 대접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특별하게 날 잡아 하지 말고, 부지 중에, 평상시에 대접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교회성장에 접목시켜도 됩니다. 만약에 두 명의 새로운 교우가 저희 교회에 방문했다고 가정하고요, 한 명에는 부담스럽게 대접을 하고, 다른 한 명에게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한쪽은 너무 부담스럽고, 다른 한 쪽은 서운하고… 안 좋겠죠? 새로운 교우가 오면, 대접을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그 분들이 특별하게 날 잡아 대접하는 거 좋아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라도 부담이 될 거예요. 그냥 평상시에, 부담 없이 대접하는 좋습니다.
저는 가끔씩, 아침에, 장로님에게 전화를 받습니다. 그리고 점심때, 시간 있으면, 가게에 들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면, 별일 없습니다. 그냥, 점식이나 먹고, 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부담 안가고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거예요.
그래서, 교회도, 혹시 새 교우가 온다면, 이 말씀에 근거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평상시에 하지 않다가, 하려면, 잘 되지 않습니다. 몸에 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11:13절을 보시면, 우리는 이땅에서 다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땅에 영원토록 살 사람은 단 한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 곳이 저 천국이기에, 천국이 우리의 본향이 되는 것이고, 이 세상은, 잠시 출장 나온, 나그네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늘 배고프고, 외롭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늘의 큰 소망이 있기에, 외롭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자로 잘 살아도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들도, 자살하고, 유명한 사람도 자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외롭고, 배고픈, 나그네 같은 인생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자, 성 프란시스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한 문등병자가 프란시스를 찾아와 하룻밥만 자고 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문등병자의 진물나는 몸을 다 닦아주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방이 없어서, 한 방에서 같이 잤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란시스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방에 와보니, 그 문등병자는 없고, 누웠던 자리는, 향기로 가득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는 중에,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대접을 잘 받았노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주님과 하룻밤을 같이 잤다는,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는자의 삶이란 이렇게, 주님을 대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대접을 계속하는 삶입니다. 그런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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