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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5월 19일 주일설교 : 또 다시 기회 주시는 하나님 - 사도행전 15:36-41

by Peartree 2013. 5. 16.

또 다시 기회 주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15:36-41

 

어떤 사람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야구왕 베이브 루스는 생전에 714개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1976년까지 그는 최고의 홈런 기록 보유자였습니다. 그러나 홈런 뒤에 가려진 1,330개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후에 영광만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듯이 말이죠.

 

여러분! 참된 성공은 실패로부터 얻어집니다. 한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우리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거에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섰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누구나 이런 실패의 경험은 있습니다.

실패하면 단순히 물질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면 일단 마음이 위축이 됩니다. 그래서 매사에 자신이 없습니다. 또 실패하면 평소에 가까이 했던 사람들마저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로움과 쓸쓸함이 더합니다.

 


성경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당대의 의인이라고 하는 노아도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라고 칭찬을 받은 다윗왕도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주님 모른다고 하면서 주님 면전에서 싸늘하게 배신하고 돌아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의 특징은 두 번째 기회를 붙들고 일어선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기회 뿐만 아니라, 세번째, 네번째 기회도 주시고, 70번씩 7번이라고 기회를 주어, 일어서게 만드시는 분이 좋으신 우리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얼마나 자주 실패 하십니까? 그때마다 더 좌절되고 낙심되어 살아갈 용기조차 없으시지는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실패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듯, 실의에 빠져 물고기나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생선을 구워 주시며 일으켜 세우시듯,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37절을 보시면 마가라고 하는 요한이란 제자가 나옵니다. 이 제자는 예수님의 12제자에는 들지 못한 그 밖의 제자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12명이 아니고, 13명을 세우셨다면 아마도, 열 세번째 제자가 이 마가라고 하는 요한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제자를 마가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마가는 예수님의 12제자 못지 않게 열정적인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겟세마네 동산까지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이 정도만해도 얼마나 괜찮은 사람입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의 12제자에는 들지 못했으면서도 실망하지 않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른다는 것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누가 알아 주든, 알아 주지 않든 자기 믿음은 분명하게 지켰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아주 부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시면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을 체험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초대교회의 시초가 된 마가 다락방이, 이 사람 마가의 집에 있는다락이었습니다. 120명이 한 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이라고 하면 굉장히 큰 집입니다.

마가의 다락방

이 집안이 원래 부자 집안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2:12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그러니까, 마가의 엄마의 집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래서 엄마 집도 교회로 사용하고 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집도 크고 마가의 집도 큰 것을 보면, 집안 대대로 부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부자인 마가가 뭐가 아쉬워서, 나사렛 목수를 따라 다니고, 어부들을 따라다녔습니까?  다름아닌, 주님 사랑하는 마음, 복음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도행전 13장을 보시면, 교회 역사상 최초로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 나라들을 향한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최초의 선교사가 됩니다. 그리고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여기까지가 마가의 신앙과 믿음이 최고였을 때입니다. 이때는 죽을 각오하고 선교 가는 시대였습니다. 마가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고, 고난도 두렵지 않고, 가난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락에만 120명이 들어갈 정도의 이 부자가, 그 부유함 뒤로 한채, 베낭하나 메고 선교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최초의 선교사 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선교 여행을 떠난 몇 주 후에 발생합니다. 사도행전 13: 13절을 보시면 무슨 연고인지는 몰라도 마가가 선교 도중에, 선교를 마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고향 앞으로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이것이 마가의 신앙여정에 있어서, 치명적인 실패였던 것입니다. 마가가 그때 왜 그랬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선교 여행이 재미가 없었든지, 복음 때문에 법정에 서는 것이 두려웠든지, 배고파서 그랬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고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님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도 믿음 뒤로한 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저는 마가를 보면서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얼마든지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한때는 주님 사랑한다고, 눈물 콧물 흘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눈물은 메마르고, 어떻게 하면 주님에게서 도망쳐서, 자유 분방하게 살아 볼까? 이런 저런 궁리는 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분들은 오늘 마가 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마가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시는지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은 또 다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최초의 선교사님들인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 이렇게 세 사람이 1차 선교여행을 출발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마가는 중도에 선교 포기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결국엔 마가 없이 바울과 바나바 이렇게 둘이서 1차 선교여행을 마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2년 정도 있다가 , 바울과 바나바가 다시 제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려고 채비를 갖추고 있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때 바나바가 다시 마가의 이름을 들먹거립니다. 37절을 보시면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자고 한 것입니다.  기회를 한번 더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8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그는 비겁한 사람이다. 우리를 배신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격 미달이다. 데리고 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느니, 마느니 옥신 각신 하다가, 결국에 심히 다투게 되었습니다. 39절에 보시면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라그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만약 이때, 바나바와 바울 둘이서 한 목소리로 마가를 비난하고, 무시하면서 아무 사역도 맡기지 않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마가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영영 실패자로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교회를 핍박하는 자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한번이라도 다녔던 사람들이 핍박을 합니다. 그 중에 정말 열심히 믿었던 사람들이 교회를 지독하게 핍박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우리 주의를 돌아 보세요. 교회에 한번이라고 발을 들여 놓지 않았던 사람들은 교회를 모르기 때문에 잠잠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십시요. 과거에 잘 다녔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만약에 이때 마가에게 Second chance 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마가는 지독하게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망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다가가서 손을 잡아 주며, 다시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바나바와 같은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서 마가가 다시 일어나 끝까지 주의 일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때 마가가 바나바의 두번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주님과는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두번째 기회 붙들지 않으며 3번째 기회 붙들 확률은 더 낮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 붙들지 않을 때마다, 주님에게 다시 돌아올 확률은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오늘 마가는 두 번째 선교여행의 기회 잘 붙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일년에도 수십번씩 실패하고, 우리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때마다 다시 기회 주시는 주님의 손 붙잡고 일어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두번째로, 하나님은 나를 처음 신앙으로 다시 되돌려 놓으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바울은 참 차가운 차가운 사람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한번 실패 한 것 가지고 그렇게, 두번 다시 기회도 주지 않고, 선교여행에 데리고 가려고 하지도 않고, … 그럴 것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울을 너무 비난하지 마십시요.

사람마다 달라서 그렇습니다. 바나가가 관계중심의 사람이라면, 바울은 일 중심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것 뿐입니다. 너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계 중심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핍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는 않는지 다시 생각하고 또 다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일의 추진력은 떨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으면 분명히 일에 능률은 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 중심 의 사람은 일은 똑 부러지게 합니다. 그런데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주의에 상처 받은 사람들 많습니다.

 

교회는요 바나바와 같은 사람만 있어도 안되고, 바울 같은 사람만 있어도 안됩니다. 바울 같은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위로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렇게 바나바와 바울 성격은 완전히 정 반대지만, 두 사람이 함께 공존할 때, 마가에게 어떤 큰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바울과 헤어집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마가는 따로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마가는 더 이상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선교를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2년 정도 지나서, 디모데후서 4:11절을 보시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내게 유익하니라

 

2년 전에 바울이 마가를 볼 때는, 배신자였고, 중도 포기자 였으며, 선교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루저 였었습니다.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마가는, ‘유익한 사람 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선교를 하면서 주의 견고한 일꾼으로, 유익한 사람으로 우뚝 세워 놓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이 그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내게 유익하다 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닙니다. 일 중심 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번 싸우고 헤어지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또 원수는 안되더다도, 그냥 기본만 하는 사이로 지내려고 합니다. ‘기본만 하는 사이는 어떤 사이입니까? 단지 이름만 알고 지내는 사이 정도 일꺼예요. 어쩌다 마추지면, 인사나 한번 하고 지내는 사이..

그런데 바울은 지금 마가와 같이 먹고, 자고, 같이 동역하고, 그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바울도 역시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바나바와 바울로 인하여 마가의 신앙이 처음 상태로 완전히 회복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기회를 주시고, 그 기회를 붙들도록 관계 중심의 바나바를 붙여 주시고, 그렇게 해서 다시 바울과 동역 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하나님, 한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 같지 않습니까?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가만 이렇게 한편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감독되신 우리 하나님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 않고 붙잡기만 한다면 말이죠.

 

빌레몬서 1:24절을 보면 바울이 문안 인사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바울의 동역자들과 함께 인사한다고 하며 동역자들의 이름을 같이 거론하는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동역자 1 순위가 마가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은 마가를 버리시지 않고 회복시키시고 처음보다 더 크게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부끄러운 결정을 내렸던 마가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기회를 주시고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마가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후에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의 가장 위대한 사역, 즉 마가복음을 쓰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마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마가를 통해 하나님은 언제나 또 다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비겁한 행동을 했어도, 심지어 심한 죄를 지어 사람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을 지라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회복하여 사용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린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진리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인생의 영원한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가롯유다와 베드로는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했었습니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기회주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두 번째 주시는 기회 다시 붙들고 일어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을 가지십시요.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과거의 실패를 오늘의 거울 삼아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기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회를 잃고 실패와 고난 가운데 나를 만나 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다시 소망과 힘찬 기쁨으로 일어나셔서, 기회를 다시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