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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서론 - 요한복음1:1-14

Peartree 2012. 12. 25. 06:45

요한복음 서론

요한복음1:1-14

 

1800년대에, 미국에서, 제 2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 다섯살이 채 안된 어린아이가, 그 부모와 함께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어린 아이가 "엄마 난 구원받았어"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아린 아이가 영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헛간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서 보니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이 어린아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나 주신 것과 죄 용서함 받은 감격의 기쁨을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로 이 아이에게, 너무도 분명하게 달라진 두 가지 행동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골목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열심히 신앙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주일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엄마에게, "엄마! 몇 밤 자면 주일이야"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너 주일을 왜 그렇게 기다리니" 하고 엄마가 되물었습니다. 그때 이 아이는 이렇게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날은 에드워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날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2차 대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의 설교는 재밌는 설교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설교의 대부분은, 지옥을 피하자는 설교뿐이었습니다. 두려운 설교였습니다. 청중들과 시선도 잘 마주치지 않고, 준비한 원고를 단상에 들고 올라가서는,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가는 것이, 그 분의 설교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5살이 채 안된, 어린 아이가 그 설교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은, 이 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예배를 사모하지 않는 이유는, 둘 중에 하나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렸거나, 아직 구원의 감격을 맛보지 못했거나, 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 제가 다니던 시골교회에, 도시에서 새로운 젊은 목사님이 부임해 오셨습니다. 그 때에, 6학년 아이들만, 10명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10명을 데리고, 그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그 목사님의 나이가, 36살의 젊은 나이셨는데, 시골교회로 부임해 오셔서, 열정을 어디에 쏟을 때가 없어서 인지, 저희들을 데리고, 목회 연습을 하신 것 같아요.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칠판 설교를 하며, 성경을 가르치셨는데, 그 때, 정말 많은 걸 배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가르칠 때는 칠판에 삼각형을 그려가며, 가르치셨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저녁 6시에 시작하면, 밤 10시 넘어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쪽에서, 여자들은 저쪽에서, 동그랗게 둘러 앉아 기도하다가, 개인기도 시간에 들어가면, 방석을 가지고, 구석 구석 쳐 박혀서,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기도했던지, 기도하고 하면, 한 겨울에도 땀으로 범벅이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기도 제목이 뭐 있겠습니까? 어린 것들이, 무슨 기도 제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 나 같은 죄인 구원해 달라고 매달렸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어린 것들이 무슨 큰 죄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하니까,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1시간, 2시간씩, 눈물로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같이 성경공부하고, 기도했던, 친구들 중에, 3명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왜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기독교 2000년을 끌고온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예배와 기도와 성경공부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되지 않고, 부흥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시험공부 하지 않고, 좋은 점수를 기대하는 학생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부터 몇 달 동안, 요한복음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성경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성경이 있다면, 요한복음입니다. 복음서 이야기라 지루하지 않으면서,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구원론,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책이라면, 당연히 요한복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 중에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책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이렇게 4복음서 입니다. 그리고 사복음서를 또 둘로나누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이렇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공관복음입니다. 공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것과, 병고치는 것과 같은 기적의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기적이 많지 않습니다. 대신, 심오한 진리의 말씀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4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나머지 세 복음서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나눠놓은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다 없어질지라도 로마서와 요한복음만 있으면 기독교 진리를 충분히 보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요한복음은 기독교의 진리를 충분히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기독교의 진리를 알려면, 먼저 누구를 알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신앙생활의 출발 자체가 되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독교의 출발이고, 예수님이 기독교의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에 대해서, 감히 사람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심오한 진리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주 심오해서, 높은 안목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다고 해서, 높은 안목의 상징인 '독수리 복음' 이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또 성경 중에 복음서 만큼 재밌는 성경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 많은 기적들로 가득 찼고, 특히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갈 수 있어서 재미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영적인 깊은 진리가 담겨져 있는 성경이 요한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요한 복음을 통해서, 지루하지 않으면서, 심오한 진리들을 연구하며, 공부하기 원합니다.

 

그럼, 요한복음 강해를 들어가기 앞서, 오늘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간략하게 집고 넘어가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고, 어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본문이예요. 그냥 본문을 읽어 내려가는 그 차체로 예수님을 이해해야지, 다른 설명을 붙이면, 본질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절을 보시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보통,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3절 보시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하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창세기 1:26절 보시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이렇게 합작으로 만드신 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의 모양대로, '우리' 가 사람을 만들고,………

 

4절을 보시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고,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유일한 희망이다 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땅에 생명을 주러, 빛으로 오셨는데, 사람들이 거부했다고 말씀합니다. 11절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말씀하는 거예요.

예수님 자체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인데, 그런데도,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12절에,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이죠.

 

14절 보시면, 너무 중요한 말씀이기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절을 보시면, '말씀이' 곧 누구하고 말씀합니까?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죠. 그러니까, 14절은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죠. 하나님은 곧 말씀입니다.

 

좀 복잡합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 그때 그 목사님이, 이 어려운 말씀을 칠판에 써가며,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런데도, 그 때는 잘 이해가 안되었지만, 들어 놓으면, 그 말씀이 언젠가, 힘이 되고,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말씀의 지식도 깊어가며, 지식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도 자라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13절 보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도 안되고, 뜻으로도 안되고,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씀이 아니고, 12절의 말씀처럼,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이,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반드시, 주님을 영접하는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5살짜리 어린아이처럼 말이죠. 아 ! 예수라는 사람이 있어, 하나님의 아들이야! 처녀의 몸으로 태어났어, 이렇게,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접이란 말은, 예전에는 내 삶의 주인은, 나 였습니다. 그러나, 영접 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내 속에 영접해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주인의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접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접한 사람은,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달라지게 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어린아이 처럼, 예배가 기다려지고, 아무리 어려운 말씀이라도, 그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똑똑 하다고,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 만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해 하려면, 영접하는 사건이 있은 후에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 한 다음에, 영접하려고 하면, 속에서 의문만 생기고, 반감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고, 우리는 그 빛 되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