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을 보였노라 - 요 13:1-15
본을 보였노라
요 13:1-15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2012년, 한해 동안 성실하게, 섬기실 직분자를 임명했습니다. '섬김' 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diakonia' 라고 하는데, '시중을 들다', '무릎을 꿇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의미로 보면, 우리는 교회의 'Leader' 를 세운 것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일할 수 있는 '종들' 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종' 이 '감투가 되고, 명예가 되고, 계급' 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장로' 라고 하면, 품위와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권사'라고 하면, 권세가 있는 것쯤으로 여기게 되고, 그래서 교회 생활 하려면, 최소한 집사 정도는 되야 되지 않겠냐? 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낮아 지셔서, 태어날 때부터,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죽으실 때도, 수치스럽게 발가벗겨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우리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탄은 얼마나 높은 곳을 좋아합니까?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이 사탄입니다. 하와를 꾀일 때도,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 고 속여,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철저히 섬김만 있어야 합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교회 안에는 계급이 없었습니다. 직분만 있었습니다. 여기서 직분이란 계급이 아니고, 역할의 분담입니다.
장로는 교회의 어른이 아니고, 장로의 기능과 역할만 있는 것입니다. 권사도 마찬가지고,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도, 목사의 기능과 역할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님 앞에 다 서게 될 거예요. 그때, 우리는 직분을 가지고 서지는 않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시면,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오는데, 거기 보시면 두 가지 직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장로고, 하나는 성도입니다. 장로는 지금의 교회의 장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4:4절을 보시면,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24보좌가 둘려져 있는데, 거기에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 24장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24장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보통 신학자들은, 구약의 12지파의 족장과 신약의 12제자들을 합하여 24장로라고 말하지만,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성도입니다. 목사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성도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한 영혼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믿었으며, 어떻게 섬겼는지 만 가지고 서게 되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직분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드시는 중간에, 식사를 멈추시고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만큼은 완전히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어떻게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수 있단 말입니까? 단순한 선생님이 아니고, '주님' 이신데 말입니다.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거나, 손님의 발을 씻는 것이 관례였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여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선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15절에 "내가 본을 보였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본을 보였다' 라고 할 때, '본'을 영어 성경은 'Example' 로 번역했습니다. 군대 용어로는 '시범을 보였다' 라고 말합니다.
남자들이 군대를 가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말 그대로, 코 흘리게 유치원생입니다. 저도 군대가서, 처음으로 빈총을 받았을 때는 떨리지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빈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사격을 하는데, 어찌나 떨리던지요. 그리고,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는데, 수류탄을 손에 들고,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그거 터지면, 거기 있는 사람 다 죽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부터 사격을 하고, 수류탄을 막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에 가면, 너무나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숙달된 조교로부터 시범이 있겠습니다.' 이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여러 번 보고, 따라도 해보고 하다가, 나중엔 진짜 사격을 하듯이, ..예수님께서 지금 숙달된 조교가 되어, 시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14절에,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말씀합니다. 보여준 대로, 그대로 따라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이, 섬기자의 모습입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직분을 임명 받은 모든 분들이 이런 '숙달된 조교' 가 되어, 먼저 시범을 보이는, 성실한 주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섬기셨는지, 본문에서 찾아 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본은, 때를 가리지 않는 섬김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지금, 예수님께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는 이때가 언제입니까? 유월절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하루 앞둔 전날이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아니, 지금 발을 씻길 때입니까? 내일이면, 죽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것이 이 땅에 철저히 섬김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나는 죽게 생겼는데,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요, 조금만 힘이 들어도 그것이 섬기지 못할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조금만 바빠도 섬기지 못할 이유가 됩니다. 너무 가진 것 없다고 섬기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힘든 순간에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간 많고, 돈 있고, 할 일 없으면, 얼마든지 섬길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얼마든지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시간이 별로 없을 때, 삶이 고통스럽다고 여겨질 그때에도, 여전히 그렇게 섬길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직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섬겼는지, 섬김의 삶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섬겼던 모습들이 상급으로 이미 천국에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시간이 있을 때, 믿겠다고 하고, 시간 있을 때 충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사실 시간이 있으면, 더 열심을 못 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예수님은 참 재밌으신 분입니다. 3절에 보시면, "저녁 먹는 중" 에 일어나 발을 씻기셨습니다. 다 먹을 때가지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섬겨야 할 때라고 마음 먹으셨을 때, 바로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편이 나아지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지금이 바로 섬겨야 할 그 때입니다.
-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본은, 누구도 섬김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는 섬김이었다는 것입니다.
본문2절을 보시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배신할 그 가롯 유다도 그 발을 씻기시는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팔려는 계획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고 있던, 가롯 유다 앞에도, 주님은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 놓고 발을 씻기셨습니다. 11절에 보시면,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라고 기록하듯이,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 할 것을 다 아시고 있으면서도, 섬김의 대상에서 누구도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을 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강력한 크리스천의 영향력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이렇게 섬김의 본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나를 욕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발을 씻기는 것은 고사하고, 웃으면서 그를 축복해 줄 수 있냐는 거예요.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데도, 표정관리 안 되는데도, 찾아가서, 섬길 수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배신하려는 사람 앞에 가서, 대야에 물을 떠놓고,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겸손하게 섬기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겸손하지 않으면, 섬길 수 가 없습니다. 허리를 세우고, 목을 곧게 세우고는 섬김이 되지 않습니다.
겉옷을 벗고, 앞치마를 두르고, 무릎을 꿇고, 손에 물을 묻혀야, 그 섬김에 제자들이 감동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에, 예수님께서 의자에 앉아서, 베드로를 시켜서, 나머지 11명을 씻어 주라고, 말로 시켰다고 가정해 보세요. 절대 감동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철저히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섬길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저희 교회에 새로운 성도님들이 아주 가끔 오십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아주 가끔이요.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처럼 섬겨 보세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만 와 보세요. 라고 하면, 베드로처럼 감동 받아서, 아니요, '매주 오겠습니다' 라고 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말로는 안되요. 이것은 2000년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입니다. 손과 발이, 무릎이 움직여야, 그것이 섬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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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한국의 유치원 아이들에게 "아빠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Survey 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니까 내용이 거의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해요.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의 아빠들이 신기할 정도로 모두 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려낸 아빠의 모습은 대부분 잠을 자거나, 앉아서 TV나 신문을 보는 것, 또는 운전대를 잡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에게 아빠가 집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조사해 보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빠는 매일 술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 쉬는 날에도 잠을 자거나 TV만 본다.' 라는 대답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 아이들이 중학생, 고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은 온통 학교 폭력 때문에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교실 안에서 앞에서, 선생님은 가르치고 있는데, 담배를 꺼내 핀다고 합니다. 이건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화가 나서 손으로 때리려고 하면, 눈을 부릅뜨고는, '돈 많으신가봐요, 돈 있으면 쳐봐요!' 라고 한다는 거예요. 교육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선생님들이 잘 못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닮아야 할 모델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들에게 본을 보이면서,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 라고 말 할 수 있는 모델이 되는 부모가 없던 것입니다.
저는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교회에 본이 될 만한 성도가 없으면,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 갈 것입니다.
초대교회때는, 예수님이 모델이 되셨고, 그 모델을 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심한 박해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12년, 저의 기도제목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교회에 모델이 되는 성도가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를 가리지 않고, 섬김의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맡은 직분을 감당하며, 섬기는, 모델 한 사람만이라도 나오게 하옵소서. 그러면 교회는 든든히 서갈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그런 모델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습니까? 의인 다섯이 없어 망했습니다. 허리에 수건을 두룰줄 알고, 겸손하게 무릎꿇을 줄 아는,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 보지 마시고, 그렇다면 그 복을 내가 받아야 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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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돌아가신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쓴 '천국의 계급' 이라는 시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천국의 질서는 계급과 서열이 아닌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지도력은 겸손에서 옵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직분이 아닙니다.
진정 교회를 이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남 모르는 곳에서 예수의 마음으로
발을 닦아 주고, 섬기고, 꼴찌가 되어주는 그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이며 천국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주 앞에 붙잡히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대인 관계가 불만족스러울 때는
나 자신이 강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강조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자기가 의식 되는 곳에서는
항상 교만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나를 부인할 수 있습니까?
나보다 큰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나의 자아가 죽게 됩니다.
태양 앞에서 춧불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하 용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