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믿음 - 히 11:20 , 창 22:1-13
이삭의 믿음
히 11:20 , 창 22:1-13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4대 족장이 나오는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이 4대 족장입니다. 이 4대 족장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이삭입니다. 180살까지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오래 살았는지, 추측해 보건 데, 고생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야곱은 말할 것도 없어요. 창세기 47:9절을 보시면, 야곱이 그의 인생 말년을 회고하고 있는데, "나는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 고 할 정도로, 야곱은 아주 파란 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외국으로 팔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나중에는 그 나라의 총리가 되기도 하지만, 아버지 집에 한번 오지 못하고, 외국에서 죽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이삭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자 아버지 밑에서, 험한 꼴 한번 겪어보지 않고, 곱게 자란, 순둥이였습니다.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 20년을 죽어라, 일했는데, 반해서, 이삭은 제 손으로 아내도 못 얻고, 아버지가 종을 시켜 구해다 주었습니다. 이토록 이삭은 자기 스스로 뭐 하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자랐습니다. 100세에 얻은 자식이라, 애지중지 키워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생도 안하고, 오래 살은 거 같아요.
이렇게 고생을 모르고 자란 아들들은 보통, 막무가내 거나, 심하면, 불량배로 자랄 확률이 많은데, 오늘 이삭은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잘 자랐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이렇게 믿음으로 자랄 수 있는 싹이, 언제부터 있었냐면, 어릴 적부터 있었는데, 그 이유는 순종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4대족장의 별명이 다 다르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야곱의 축복의 사람, 요셉은 꿈꾸는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삭은 순종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순종의 아들이 될 수 있었냐면, '모리아 산' 사건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모리아 산이, 참으로 유명한 산입니다. 이 모리아 산은, 신약에 와서는 갈보리 산입니다. 모리아 산과 갈보리 산은 같은 산입니다. 이 모리아 산, 즉 갈보리 산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예정해 놓으신 산입니다.
왜냐하면, 이 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독자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그 때에도, 아무데서도, 아무 산에서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3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까지 가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신학적 용어로, 예표라고 합니다. 언제가는 이루어질 것을 미리, 그림자로, 예고편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예수님의 갈보리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는 사건이예요, 그래서 이 사건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 예표인지 더 분명한 그림자가 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수풀에 걸리게 만드셔서, 어린양을 대신 잡도록, 하셨습니다.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미리 예고하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리아산의 사건' 이 이토록 중요한데, 이 사건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이삭은 순종의 아들이란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이삭의 나이를, 20세 전 후로 추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모리아 산까지 3일 길을 가야 했는데, 3일길은 걸어서 갈 정도면, 건장한 청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역사 학자들에 의하면, 이삭이 BC 1892에 태어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년도를 1872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892-1872=20살이 됩니다.
그래서 그때,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이삭이 아무것도 모르는 간난 아이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번제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번제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 수 있는 나이였다는 거예요. 창세기 22:7절을 보시면,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묻습니다. 번제에 필요한 도구는 다 있는데, 정작 필요한 어린양이 없다는 것을 묻고 있는 거예요. 이삭은 누군가 죽어야 한 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죽어야 하는 것이 '혹시 그게 나는 아닌가,' 라고 의심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창세기 22장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당시에는, 어린양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는, 번제에 쓰일 나무를 어린양의 등에 메게 하고, 끌고 가는 것이 풍습이었습니다. 좀 전에 예표에 대해서 말씀 드렸는데, 여기 또 예고편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에 오르시면서, 무엇을 지고 가십니까? 나무 십자가, 그러니까, 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사람이 죽는 거예요. 지금 이삭이 등에 나무를 메고 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내가 어린양이구나'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 했을 거예요.
창세기 22:9-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저는 이때, 아브라함이 갑자기, 이삭을 붙들어, 밧줄로 꽁꽁 묶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갑자기 묶는다 할지라도, 혈기 왕성한 스므살이면, 120살 정도된 늙은 아버지 정도는, 얼마든지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말에,'집에서 키우던 돼지도 잡을 때는요 이유를 대고 잡는 다고 하는데'멀쩡한 아들에게, 죽어야 하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명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초지정을 다 이야기 했을 거예요. 그리고 이삭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하나님께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면, 순종해야죠' 라고 하면서, 나뭇단에 올라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아시면서, 말없이 달리신 것 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삭이 순종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삭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지, 성경에서 찾아 보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삭이 믿음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딱 한가지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본문을 보시면,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참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한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믿음이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아들들에게 물려준 것도, 그냥 축복기도 한번 해주고, 쌍둥이 두 아들 중에, 작은 아들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집을 나갔죠. 형 에서는, 동생을 찾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죠. 이삭은요. 사실, 자식 농사도 잘 짖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축복기도 한번 하고, 믿음의 사람이라는 소릴 듣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축복을 안 해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이삭보다, 훨씬 믿음이 사람이라는 소릴 들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삶을 자세히 살펴 보면, 자식들을 축복한 것이, 믿음이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5:23절을 보시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뱃속에 아기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 그러니까, 야곱이, 실제로는 동생이지만, 장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뱃속에서부터, 야곱이 동생이지만, 장자가 되고, 야곱의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까지, 예정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면, 그대로 복을 받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삭은, 누구에게 축복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까?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해 주어야 맞는 것입니다. 야곱이 동생이지만, 영적인 장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생각하기에, 야곱은 여성스럽고, 에서는 남자 다우니까, 에서가 그래도 가문을 잘 이어 갈 것 같으니까, 에서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려고, 하루는,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서,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와라, 그럼 내가 그것을 먹고, 마음 껏 축복해 주겠다' 고 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던 거예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경험, 자기 느낌, 자기 감각에 의지해서 무엇인가 결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삭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만, 동생 야곱이 형 에서로 변장하고 들어와, 형인 것 처럼 속여, 아버지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고, 복을 가로채죠.
창세기 27:33절을 보시면, 후에 이삭이 이 사실을 알고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삭이 떨었겠습니까?
1번,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서, 너무 분해서, 2번, 나중에, 에서가 알면, 집안이 시끄러워 질 것 같아서,
이 구절을, 아더 핑크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얄미워서 분한 마음에 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말씀하신대로 되었음을 알고 두려워하여 떤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으로, 내 의지대로, 내 판단대로, 결정하고 살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나의 의지를 꺽으시고, 결국에는,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도록, 만드셨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그 하나님의 너무 두려웠던 것입니다. 계획하시면,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세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서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장차 있을 일' 은 무슨 일입니까? 야곱이 영적 장자가 되고, 야곱의 후손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생겨나고, 그 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그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결국에 자신의 의지를 꺽고 야곱부터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신 것입니다. 보통 성경은, 자녀들의 이름을 열거할 때, 장자부터 쓰고 있는데, 오늘 본문을 보세요. 누가 먼저 나옵니다. '야곱과 에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영적으로는 형님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는 것이, 믿음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삭의 믿음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100% 순종하는 것이 칭찬받는 이삭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일단은, 내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욕심, 뜻, 생각을 다 내려놓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최고의 믿음의 기도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십자가가 그냥 지나가길 원했지만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삶이 최고의 믿음있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도, 자녀들을 위해, 축복기도 많이 해 주십시요. 부모의 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자녀들이, 성공하고, 번영하는 기도 말고요.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녀들이 되게 해 달라고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결국엔 그 기도를 다 들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