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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히 잡으면 - 히4 : 7-19

Peartree 2012. 12. 25. 05:49

견고히 잡으면

히4 : 7-19

 

지난 수요일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묵상기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앉으나 서나, 주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주님 생각 눈곱 만큼도 하지 않다가, 주일날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주님 생각한다.'고 말하면, 이런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 생각 한다는 말은, 주님 때문에 참고, 주님 때문에 용서하고, 주님 때문에 좁은 길을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 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 29:13절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여러분 !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순간 순간 마다, 자기 점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행동입니까?' 라고 물어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분명하게, 성령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내 안에 있는 양심이 먼저 알게 되어, 말을 해줍니다. "아,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지" 하고, 양심이 계속해서 호소합니다. 그런데도, 자꾸 그 음성을 무시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보십시요. 12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조심 하십시요. 하나님의 나라는 조심조심 하며 가는 길입니다. 내 멋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강퍅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강퍅' 이라는 단어가 세번씩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라고 세번씩,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퍅한 마음으로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강퍅' 이란 단어는, 영어 성경으로는 'hardened'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단하게 굳어진 심령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심령이 너무 단단해서, 남의 말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파고들어갈 틈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굳어진 심령의 사람들은,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 말씀이 스며들지 못하고, 가뭄으로 인해 논 바닥이 굳어지고, 갈라진 것처럼, 굳어져서 말씀이 용수철 처럼 펑펑 튀겨 나가는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떨어진다"는 말은 "타락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성경은 우리에게 제발 "너희는 타락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타락에는 두 가지 종류의 타락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눈에 보이는 타락이 있고,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타락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타락은, 신앙 생활에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두번째, 보이지 않는 타락은, 우리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범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타락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기도해 주고, 권면하고, 충고도 해 주어서, 돌아 올 희망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타락은, 자기의 타락한 모습을 철저히 숨기고 끝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알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1절을 보시면,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여자가 맷돌의 '손잡이' 를 함께 잡고 돌리고 있습니다. 일하는 모습도 똑같습니다. 이 두 여자는 아마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모습으로는 똑같은데, 주님의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실 때는,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이 땅에 버려둠을 당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발 마음속에 주님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강퍅한 사람들은, 11절에 보시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며, 12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 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떠한 종류의 강퍅한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광야 같은 시험 중에, 강퍅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강퍅한 사람의 대표를 꼽으라면, '바로' 입니다. 무려 바로가 강퍅하다고, 출애굽기 4장에서부서 14장 까지, 열 네번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바로를 연구하면, '강퍅' 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께서 왜 바로에게 강퍅하다고 하셨냐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 에 강퍅하다고 하셨습니다. 무려, 자기 아들을 비롯해서, 애굽의 있는 모든 장자들이 다 죽어 나가야지만, 그때서야 깨닫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 광경을 그대로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퍅한 사람은 이렇게 망할 것이라' 라는 것을 시청각교육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도 똑 같이 광야 교회에서 강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3000만 중에 여호수아, 와 갈렙만 빼고,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에 와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이 굳어진 상태로 있으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것입니다.

 

  1. 두번째는, 죄의 유혹으로 인해 강퍅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13절을 보시면,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라는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오늘 안에, 또는 지금 당장' 이라는 말로 고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 피차 권면 하고, 깨닫고,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 '교회에 나오세요' 라는 말로 전도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중에 시간 있을 때요'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나중에 생각해 볼께요' 이런 말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 있다면, 이 말이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누가 권면을 하면,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꾸 미루는 사람은, '강퍅한 사람' 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내 안식에 들어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 할 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간에 오해가 있으면, '오늘 이라 일컫는 동안에' 서로 화해하고,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강퍅한 거예요. 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나의 모난 성품이 있다면,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은 강퍅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세번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강퍅해 지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15절을 보시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 처럼, 못된 고집을 부리지 말아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고집부려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바위에 계란치기 입니다. 고집부려 봤자, 손해 나는 것 우리입니다. 그런대도 우리는, 내 생각이 맞다고 하면서, 우겨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중년신사가 고민이 많아서, 유명한 수도사를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는 그 신사에게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명쾌한 비법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사는, 자기 고민을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말을 이어갑니다. 한 참을 듣다가, 이 수도사는 신사의 찻잔에 물을 붇기 시작해서, 물이 넘쳐 흐를 때까지 계속해서 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신사가 어째서 이렇게 자꾸만 물을 붓습니까? 물었어요. 그러자 이 수도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야말로, 당신의 생각으로 꽉차서, ,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들을 여지도 없고, 들을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나의 말을 담을 만한 빈 공간이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 찻잔과 같습니다.'

 

내 생각, 내 고집, 내 고정관념, 내편견, 내 욕심으로 꽉 차 있으면, 아무 것도 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 앞에 고집부리는 것이고, 강퍅케 되는 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 갈 수 있습니까?

 

14절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시작 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처음에 예수님을 믿으면서, 잡았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오늘 성경 본문은 '확신' 이라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주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면,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나중에' 라는 말로, 강퍅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이렇게 고집부리며, 연약에 휩싸여,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붙들었던, 예수님, 처음에 가졌던, 첫사랑, 처음에 믿었던 복음, 이것을 놓지 않고, 끝까지 견고히 붙들고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제목:

 

  1. 강퍅한 성도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처음에 붙들었던, 믿음, 확신, 사랑, 복음. 끝까지 붙들과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