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 창19:12-22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창19:12-22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아침. 서울 충무로에 있던 대연각 호텔의 화재로 166명의 희생자를 낸 화재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첫 고층건물 화재 참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고가 사다리 차가 한대도 없었다고 해요. 진화 장비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고, 21층이나 되는 건물의 불을 끄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영상을 보면, 그 고층 창문에서 사람들이, 이불을 몸에 감거나, 매트리스를 붙잡고 뛰어내리는가 하면,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다가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면, 죽는 다는 것을 알면서, 뛰어 내리는 이유는, 거기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 분명히 타 죽거나, 연기에 질식 할 수 있어서, 살 가망성이 조금이라도 없기에 뛰어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혹시, 재수가 좋으면, 살아날 가망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실락 같은 희망을 가지고 뛰어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그 당시 뛰어 내렸던 사람 중에 살아 남은 사람이 있는지 제가 자료를 찾아 보니까, '대연각 호텔 화재 분석' 이라는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에 뛰어 내린 사람이 38명이었는데, 다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에 이런 상황이 닥치면, 뛰어내리지 마십시요.' 살 가망성이 0%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롯' 이라는 사람에게도 그처럼 떠나고 싶지 않던, 자기의 자리에서 반드시 탈출해야만 살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12절을 보시면, 천사로부터 " 일어나 이 소돔성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시면, 예전에 롯은, 자기가 살던 고향을 한번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고향은 우상숭배로 사람들이 타락했고,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롯을 그대로 두면, 그의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다가, 지옥에 갈 것 같으니까, 그곳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상황과 지금 상황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같지만, 그때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떠나도 괜찮았습니다. 도중에 '하란' 이란 곳에 머물러 살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촉박합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살림살이 하나 챙길 시간도 없이, 그 자리에게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시간, 하나님으로부터 탈출 명령을 들은, 롯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현재, 소돔과 같은 이 죄악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곳에서 떠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오늘 한가지, 다음주에 한가지, 이렇게 두 가지만 찾아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지금 제가 떠나라고 하는것은, 생업을 포기하고, 가정을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사이비 종교들이 그렇게 해서 가정을 무너뜨리고, 신앙의 뿌리마저 흔들어 놓았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대순진리' 라는 사이비 단체는, 경기도 포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데, 그 곳에 들어가면, 빠져나오 질 못합니다. 남편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자식들도 다 버리고 들어갑니다. 버니지아에 살 때, 롯데 마트 후문에서 호떡을 굽는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까, 구구절절 했습니다. 아내가 모든걸 버려두고, '대순진리' 로 들어간 거예요.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살다가, 결국에 미국에 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려고, 이곳에서 다른 여자분을 만나, 새롭게 출발 했는데, 그 여자분 한테, 한국에서 가져온 돈 다 사기 당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것이, 이 직업인데, 그래도 감사한 것은, 돈 버느라고, 자녀들을 잘 돌보아 주지 못했는데, 공부도 잘하고, 밝게 잘 자라 주었다' 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 다니셔야죠? 하니까, '언젠가는 나가겠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분의 아내처럼, 멀쩡한 가정을 다 버려두고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죄악 세상과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죄악의 장소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곳에,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왜 떠나라고 하셨 냐면은, 그 곳이 죄악의 장소이기에,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롯의 영혼이 병들어 죽을까봐, 떠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괜찮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영혼은 점점 피폐해 져 간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이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성이었냐면, 동성연애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지금 롯의 집으로, 누가 들어 갔냐면, '천사들' 이 들어 갔습니다. 구약시대의 천사들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남자들이었습니다. 목사님, 처음 듣습니다. 천사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기천사, 아니면, 예쁘게 생긴 여자야 맞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든 천사는 다 남자입니다. 이 천사들이 롯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 를 전하기 위해서, 롯에 집에 들어 갔는데, 얼마나 잘 생겼는지, 그 도시의 남자들이, 5절을 보시면, "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말합니다. 여기서 상관이란 말은 '남자끼리 성적인 관계' 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동성연애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완전히 폭도들이었습니다. 9절에 보시면, 막무가내 였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두면 안 되겠으니까, 하나님께서 이 폭도들의 눈을 멀게 만드십니다.
그런 다름에 천사들이 뭐라고 일러줍니까? 13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라고 마지막 경고의 말을 합니다. 최후의 통첩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목사님, 살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만 끊으라고 하실 때가 있어요, 때로는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 내 안에 성령님이 근심하시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때마다, 무시해도, 아무 탈 없이 그냥 넘어 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 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 가 어떤 것인지 알 수 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이것이 '마지막 경고' 다 라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면, 그때, 제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라고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 ! 그 마지막 경고까지 기다리다가는, 마지막 경고 전에 이미 영혼은, 성령의 음성을 하도 무시해서, 굳어 질대로 굳어진 상태가 되는 거예요. 마지막 경고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차피 마지막 까지, 돌이키지 않겠다는 속셈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며, 즉시로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정말 그렇게 하시는지 끝까지 해보겠다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뭐하러 갔습니까? 잘살아 보려고 갔습니다. 돈을 벌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가보니까, 휘한 찬란한거예요. 유흥 업소도 많고, 술집도 많고, , , 목욕탕도 많고, 왜 제가 목욕탕을 말하냐면, 역사적으로, 타락한 도시의 대표적인 업소는 목욕탕입니다. 폼페이가 도시가 멸망할 때도, 목욕문화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롯이 목욕탕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업을 했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돈은 많이 벌었습니다. 그랬으면, 이제는 그 죄악의 도시에서 빠져 나올 만도 한데,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냥 머물러 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말 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곳이 이제는 좋은 거예요. 때로는 약간씩, 죄를 저지르니까,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해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신앙마저, 다 떨어졌습니다. 두 딸은 세상적이었고, 아내는 돈만 알았습니다. 간신히 자기만, 근근히 신앙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사실 롯도, 같이 멸망 당해야 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살려 주신거예요. 삼촌인 아브라함이 조카를 잃고 마음 아파 할까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 중보기도 때문에 살려 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교회에 이러한 한 사람만 이라도 있으면, '이 사람 때문에 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복 받고, 사업체가 복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 마져 없는 교회는, 참으로 불행한 교회일 수 있습니다.
롯이 얼마 만큼 신앙을 팔아 먹었 냐면 요. 사위들을 얻었는데, 하나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위를 얻은 거예요. 물론 딸아이 좋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4절을 보시면, 롯이 사위들에게, '여호와께서 이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위들의 반응을 보십시요.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사위들의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평소 사위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평소에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조차 자기네들 앞에서 언급하지 않던 장인이 갑자기 한밤중에 찾아와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 곧 이 성을 멸망시키려 하니 도망해야 한다."라고 하니, 당연히 무슨 '장난'이나 치는 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롯이 단 한번 만이라도, 사위들을 불러 놓고,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이 죄악세상을 심판 하실 꺼다 그러니, 너희들은, 술집 그만 가고, 유흥 없소도 그만 가고, 목욕탕도 그만 가고, 언제든지, 이런 죄를 끊고 떠나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했다면,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고 했을거예요. 아니 목사님, 목욕탕가는 것이 죄입니까? 라고 하실 분도 계실 것 같아 부연 설명 드리겠습니다. '목욕의 역사' 라는 글을 보시면, '중세시대의 목욕탕은 야외 노천탕으로, 그 목욕탕에는 여인들이 상주하고 있었고, 각종 음란과 퇴패 문화의 온상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돈 많은 귀족들이, 이 돈을 어디에다 쓸까, 고민하다가 만든 곳이 목욕탕입니다.
그러므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자녀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복음을 전하십시요. 그러면, 결정적인 순간에,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 엄마가, 아내가, 평소에 말하던, 그 날이 이렇게 오게 되는 구나. 그렇게 깨닫고, 그 때라도, 돌이키면, 전혀 늦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씩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줍니다. 너희들이 지금 세상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너희 영혼을 갈아 먹는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핍박과 환난이 올텐데, 잠시 잠깐 더 살겠다고, 예수님 부인하면, 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때에는 죽음을 택해야 한다. 겁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얘기 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가, 정말 필요할 때,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면, 그때는 그것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지막 경고' 의 말씀으로 들려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요. 그나마, 하나님을 알았던 롯은, '마지막 경고' 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불신앙' 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평안하다, 안전하다'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에게는 도둑같이 닥치는 것이 마지막 경고 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보고,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악 세상을 탈출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 가면 뱃놀이를 할 수 있는 호수와 같은 큰 강이 있습니다. 물론 이 강물은 하류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흐릅니다. 여기서는 노를 젓지 않아도 보트가 서서히 하류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까지 내려오면 빨간 줄을 그어놓고 거기에 위험에 대한 '첫번째 경고'문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위험하니 노를 저어서 상류로 올라가라는 글귀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두번째 경고'가 있고, 여기서부터는 되돌아가기가 좀더 어렵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경고' 에서는, 이 경계선을 넘어가면 아무리 노를 저어도 상류로 올라갈 수 없는 지점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지 역은 그대로 폭포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위험한 지점입니다.
첫번째, 경고를 알아차렸을 때에는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와 세번째의 경고를 무시하면 그때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마귀의 노예가 되었으므로 그대로 떨어져 내려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 제발 우리 꿈의 교회 성도들은, 경고의 말씀을 경솔히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 전체가 경고의 말씀입니다. 지체하지 마시고, 당장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고, 그 길로 곧장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