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2월27일 주일예배설교: 회개의 문제 - 눅 3:7-14

Peartree 2012. 12. 25. 04:03

회개의 문제

3:7-14

어느 대학생이 수강신청을 하는데, 마땅히 들을 만한 것도 없고 해서, 고민하던 차에 야생조류학 이라는 과목이 재미 있을 같아 신청을 하고 수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는, 수업이 너무 재미없는 것예요. 그래서 수업을 자주 빼먹고, 결국에는 기말고사를 보게되었습니다. 기말고사 문제는 간단했어요. 다섯문제인데, 새들의 다리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리를 보고 새들의 이름을 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했어요. 그런데 수업을 거의 듣지 않은 터라 알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지로 교수님에게 제출하고는 '죄송합니다.' 하고 교실문을 나서는데, 교수님이 부르는 거예요. '학생' 아무리 백지라도 시험지에 이름은 쓰고 나가야지. 그러면서 '학생 이름이 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학생이 교수님에게 뚜벅 뚜벅 걸어오더니,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교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다리를 보고 이름을 맞춰보세요" 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새들의 다리만 보고 이름을 알수가 없죠.

'기독교 신앙' 이라는 하나의 몸체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신앙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안에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고, 순종이 있고,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고, 기도가 있고, 여러가지들이 기독교신앙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만 있고, 몸통이 보이지 않으면 새가 어떤 새인지 알수 없듯이, 머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중요해서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도록, 사단이 가리고 있거나, 그래서 우리는 몸통은 보지 못하고 다리만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회개라는 것이 그렇게 흥미로운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축복에 관한 설교나, 번영신학에 밀려, 가리워져 있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100세가 되시는 기독교 원로이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국민일보에 이런 글을 싣었습니다. "회개는 죄를 찾는 현미경이다. 회개를 통해 부족함이 드러난다."한번은 방지일 목사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셨다고 합니다. "교회 성도들이 땅에 일에 관심이 많느냐, 아니면 하늘나라에 관심이 많느냐 ?" 주님의 말씀에 방망이로 얻어맞은 같은 강한 충격이 그분의 영혼가운데서 일어났는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명이 구원받을 같으냐 ? 정말 하늘나라에 대해 목말라 하는 성도가 몇이냐 되냐 ?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이냐 ? 하늘나라는 좁은 , 좁은 길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만이 들어간다. 깨어 있어라 ! "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심한 통곡과 함께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전하겠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겠습니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겠습니다. 저에게 성령의 능력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에게도 따라다니는 거룩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제가 목회한 성도중에, 제가 전해야 말씀을 전하지 않아서, 영혼이라도 천국의 낙오자가 있다면, 책임을 하나님은 저에게 물으실텐데, 하는 두려움이죠.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은 세례요한이 요단강 근처에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 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처음 입을 열어 전파한 설교의 제목이 회개에 관한 것이엇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도,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찔림을 받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회개하라' 라고 말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설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라고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이 되는 것은 교회에 나와서 등록하므로 크리스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므로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개에 대한 오해는 어떤 것이며,진정한 회개는 어떤 것인지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회개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8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세례요한 광야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당시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선민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회개 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원받고 천국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굳굳하게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세례요한은 착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 할아버지라도 찍혀 불에 던지울 것이라고 말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회개를 대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고백이나,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회개를 대신할 없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상관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찍혀서 지옥불에 던져지게 것이예요.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5:3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 성공적으로 목회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회개한 사람이 없으면 실패입니다.

 

마태복음 11:20-2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나옵니다. 마을이 벳세다와 고라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마아마하게 모여드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곳이 그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곳 사람들을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이유가 20 보시면, "회개치 아니하므로" 책망하셨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수에 있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도 상관이 없었어요. 단지 회개한 사람이 명인가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여러분 회개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속아 왔던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반쪽짜리 복음가지고, 천국에 있다고 굳게 믿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가지고는 안됩니다. 회개가 동반되야 합니다. 영국 청교도 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작성한 토마스 왓슨은 [회개] 라는 그의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 생에서 성도에게 절대 필요한 가지 은혜가 있다면, 것은 회개와 믿음이다. 둘은 성도가 하늘나라로 날아가는데 필요한 날개이다"

19세기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 찰스 하지는 그의 [생명의 ]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누구든 믿는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을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지만, 또한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다 멸망할 것임을 그에 못지 않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런 말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면,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회개라는 말입니다. 결국 같은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회개와 믿음을 통하지 않고는 없다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진정한 회개는 어떤 것인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8-9절에 보시면, 세례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마다, 찍어 불에 던진다" 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겁을 잔뜩 겁을 먹은 같습니다.

10절에, 무리가 와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묻습니다. 12절에도, 세리들이 '무엇을 하리이까?' 14절에도 군병들이 '무엇을 하리이까?'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회개의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인지 몰라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두벌 있는자는, 없는 자에게 주고, 정한 세금 외에는 받지도 말고, 사람들에게 강포하지 말고, 주는 월급을 족한 줄로 알라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이모든 것들을 마디로 요약하면,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마음대로, 뜻대로 살았지만, 지금은 예전에 하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변화입니다. 영어로는 Repent 라고 하지만, Turning Point 라고도 합니다.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타고 있던 기차를 갈아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차를 잘못 탔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차를 갈아탈 생각은 하지 않고 기차 안에서 착한 일을 합니다. 기차 안을 청소하고 노약자를 도와주며,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사 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풉니다. 기차 안의 승객들은 그의 선행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그가 목적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기차 안에서 선행을 베풀 것이 아니라 기차를 갈아탔어야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회개는 갈아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갈아타지 못하도록,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가 안전한 것 처럼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셉 얼라인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는 많은 사람을 가짜로 회개시켜 놓고 이것저것으로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분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장로교 소요리 문답을 만든 토마스 왓슨 목사님의 '참다운 회개의 성격 여섯 단계' 에 걸쳐서 자신이 진실로 회개를 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 여섯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진다면, 회개의 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왓슨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1. 죄의 발견 단계 : 이 단계만 발견해도, 엄청난 축복의 길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평생 이 첫번째 단계를 생각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이 지구의 90%도 넘습니다.
  2. 죄를 슬퍼하는 단계: 여러분들 죄를 보면 슬퍼합니까?
  3. 죄를 고백하는 단계:
  4. 죄를 부끄러워 하는 단계:
  5. 죄를 미워하는 단계: 죄가 몸서리치게 미워질 때, 그 사람은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6. 죄에서 돌이키는 단계.

     

    이러한 단계를 통해서 내가 정말 회개한 사람인지 아니면, 가짜로 회개한 사람인지 알 수 가 있습니다.

 

이 회개야 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을 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 해놓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타고 있던 기차에서 뛰어 내려 하나님께 달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전한 길로 달려가십시요.

 

시카고의 한 작은 교회에서 세 살 된 소녀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관 앞에 나아가 아이의 모습을 대하며 작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때 한 사나이가 술 냄새를 풍기며 붉게 충혈된 눈에 누더기 같은 바지를 끌고 관 앞으로 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식이 끝난 후 그는 그 신발을 35 센트에 팔아 싸구려 술을 사 먹었어요. 그는 다름아닌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얼마 후 그는 십자가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돌아와 치유 불가능한 천여 명의 알콜 중독자들을 전도하여 변화시킨 장본인이 되었읍니다. 그의 이름은 시카고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복음 전도자 '멜 트라더' 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많은 걸 가진 사람이 아니고,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차 두 번 바꾸니까, 좋은 세월 다 갔다고요. 우리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이유는, 이 땅의 준비가 아닌, 영원한 그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사탄이 만들어 놓은 반쪽짜리 복음 붙잡지 마시고, 완전한 복음 붙들고 승리하시는 복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