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2월 6일 주일예배설교: 거짓의 문제 - 행 5:1-11

Peartree 2012. 12. 25. 03:43

거짓의 문제

행 5:1-11

 

거짓말에는 대한 테스트가 있습니다.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릴텐테요,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마음 속으로 하나만 선택하시면 됩니다.

첫째로,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둘째로, 나는 종종 자주 거짓말을 하는 편이다.

세번째, 나는 거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 경우도 있다.

네번째, 나는 거짓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이 네개 중에 어디에 해당 되십니까?

첫번째 질문,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에 답하신 분들은 병원에 입원하셔야 합니다. 영적 병원에 입원하셔서 의사되신 주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두번째의 질문 나는 종종 거짓말을 한다에 답하신 분들은 진지하고도 심각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세번째, 거의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 경우도 있다에 답하신 분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네번째, 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답하신 분들은 이 질문에서 조차도 거짓말로 답하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두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부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세워질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헌금들이 필요했는데, 이 부부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땅을 팔아, 헌금을 하면서 일 부분은 숨켜두고, 상당한 부분을 헌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 가진 전부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말에 하나님께서 무척 화가 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시켜 책망하시고 이 두 부부가 그만 그자리에서 죽게되는 이야기 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사도행전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무자비한 하나님이신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부는 다른 사람의 땅을 팔아 얼마는 감추고, 얼마는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땅을 팔아 하나님께 드릴려고 하다가, 뭐 집안 살림에도 약간의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남겨놓았을 뿐입니다. 내땅 내가 팔아서 얼마만 드린다는데 이렇게 까지 사람을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이 시대는 이 거짓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뭐 이정도 거짓말 쯤이야 애교로 넘어가주시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느냐, 반문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 인간들의 기준이고, 하나님의 기준을 우리의 기준과 다릅니다. 성경은 거짓말을 아주 심각한 범죄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5편 6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속이는 자를 싫어 하시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 세계에서도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싫어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8:44절에 보시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존재를 묘사하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다. 진리가 그 속에 없었고 진리에 서지 못하고 저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나님이 무척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아버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발명의 아버지 에디슨, 교향악의 아버지 하이든, 성경에도 거짓의 어버지가 마귀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나 언어에 거짓이 섞여 있을 대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사탄 지배아래, 마귀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속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지금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지금 아나니아는 마귀의 영향력 아래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하반절 보시면, 이것은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라고, 그러니까 아나니아의 거짓말을 하나님을 향한 범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중에 이것은 좀 하나님이 심하게 다루신 것 아닙니까?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초대교회가 막 세워지려고 하는 시기였습니다. 막 교회의 기초를 놓는 때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으면 그대로 계속해서 잘못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막 세워지면서 이런 거짓말이 교회에 들어왔을 때, 앞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서는 단단히 다룰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보기로 거짓이 교회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엄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년전 미국의 시카고 데일리 뉴스에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리노이 주에 어글피스라는 마을에 세탁소를 경영하는 한 분이, 손님이 맡긴 세탁물을 뒤지다가 주머니에서 2만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손님을 기다렸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정직한 사람이라고 신문에 났겠죠. 그러면서 신문의 마지막 줄에 이런 기사로 글 맺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정직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을 오히려 이러한 일들이 드물게 된 시대라는 것입니다. 정직이 통하지 않는 시대, 생각하면 얼마나 혼란한 시대이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가 이 정직위에 세워지기를 기대하시며 아나니아 사건을 엄중하게 다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아나니아 사건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거짓말을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짓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찾아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거짓말을 극복하려면,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요,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더 많이 드린 것 처럼 보여지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식했다면 거짓을 범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신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를 때면, 철저한 감독하에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신학교에 오니까, 감독이 없어요. 어느 교수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독관은 두 사람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이 감독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두 가지 시험을 치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수업내용에 관한 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정직이라는 시험입니다. 수업에 관한 시험은 패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정직이라는 시험은 반드시 패스해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좀더 정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요, 거짓말을 극복하려면, 서로에게 진실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라는 말을 함께 라는 말입니다. 범죄용어로 공범을 저지른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 사람이라도 정직하였더라면, 이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을 수 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한사람이라도, 여보 우리 이러지 맙시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잖아요 말했더라면, 괜찮았을텐데 말입니다.

부산에 남편의 말을 너무 잘듣는 아줌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아줌마가 한번은 서울로 시집간 딸이 아기 낳을 때가 다 되어가자, 산후조리를 해 주려고, 빠르다는 KTX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떠나기전에 남편이 해준 말이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야, 그러니까, 절대 속으면 안돼" 이 말을 속으로 되뇌이면서 서울역에 내렸습니다.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친절하게 가는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가 "그런건 왜 묻는겨?" 하고는 대답을 안해 줍니다. 그러니까? 택시 기사가 친절하게 아주머니 목적지를 알아야 가죠? 그리고는 어렵게 목적지를 알아낸 다음 딸내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주머니 택시 요금이 8000원입니다. 라고 하자 , 이 경상도 아줌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정직해야지, 내가 출발할 때 2000원부터 시작하는거 못본줄 알았는겨," 하면서 "6000원만 받으시요" 했더라는 겁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회에서 생긴 해픈닝입니다. 내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복있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순박한 경상도 아줌아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좀 미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는, 거짓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회 있을 때 바로 회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빠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회개 만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읽으면서 항상 안타까움이 있는데, 3절에서 4절에 사이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3절에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라고 물었을 때, 아나니아가 "맞습니다. 베드로님 제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달라졌겠어요. 그런데 회개할 수 있는 찬스를 일어버린 것입니다.

8절에 보시면, 아내 삽비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8절에서는, 베드로가 더 기회를 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말할 기회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예 이뿐이로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가장큰 축복을 받는 사람은요. 회개할 기회를 잡는 사람들입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이 보십시요. 그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니까, 더 큰 축복의 사람으로 사용되지 않습니까? 거짓을 중단하는 것, 그것만으로 완전한 회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언제 또 다시 거짓이 튀어 나올지 몰라요. 완전한 회개까지 가려면, 거짓을 말하는 나의 입술에서 진실의 말이 나오면 완전히 변화가 된것입니다.

독일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참 불쌍한 사람을 많이 돕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떤 그리스도인 자매 하나가 혀 암으로 판명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언어를 잃어버릴지 모른다. 는 의사에 말에 그녀는 의사와 간호사를 바라보며, 마치 유언 같은 마지막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언어를 주셔서 지금까지 이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했고, 복음을 증거했고, 이웃들을 격려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더 이상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면, 이제는 하나님 내 마음의 언어로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을 높이고 여전히 이웃들에게 진실과 사랑의 마음의 언어를 가지고 다가서겠습니다. "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거짓이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식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대가 그렇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 만이라도 진실을 말하고, 세상의 거짓과 타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진실한 성도들 위에 우리 꿈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