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1월9일 주일예배설교: 주님 다시 오십니다 - 사 64:1-7

Peartree 2012. 12. 24. 13:43

주님 다시 오십니다.

사 64:1-7

 

        어느 모 대학의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취직을 하지 못하는 배우지망생이 지방의 작은 동물원에서 배우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는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일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는 날아 갈듯이 기뻤죠. "그래, 지방이면 어때, 취직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리라"

그렇게 다짐하고는 지방에 있는 동물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물원은 재정이 부족한 동물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억 원하는 진짜 고릴라를 수입할 돈이 없어서 비용을 모을 때까지 고릴라를 대신할 배우를 찾고 있던 것입니다.

면접관의 설명을 들은 배우지망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릴라 역할이면 어때,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한 일이라도 하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고릴라 역할을 하기로 수락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고릴라 옷이 영 맘에 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에 양심이 찔렸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고릴라 역할에 익숙하게 되자, 나뭇가지에 매달리기도 하고, 그네를 타기도 하며, 고릴라처럼 뛰고 가슴을 치면서 관중들을 압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에서 소풍 온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뭇가지 위에서 흔들거리다가 미끄러지면서 그만 벽 너머에 있는 사자 우리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굶주린 사자가 어슬렁 거리며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겁을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주세요. 나는 진짜 고릴라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이 사자가 급하게 달려옵니다.

그러더니 앞 다리로 고릴라의 머리를 때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해! 임마, 너 때문에 모두 쫓겨나면 좋겠어?"

 

2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던 그 당시도 이렇게 거짓의 탈을 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지배국인 로마 에 빌 붙어서 아첨을 하고 있었고,

장사꾼들은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거짓 저울을 사용하였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종교인들마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이 불의한 세상이 뒤집어지고 정의로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예수님은 이러한 어둠을 몰아내시기 위해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 나시고, 지금의 이스라엘 올리브 마운틴에서, 최소한 12명, 많게는 500여 성도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성경 여러 곳에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3절에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한 다음에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영어버전이 더 분명하게 들립니다. "I will come back and take you"

그래서 우리는 다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51절을 보시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순간에 우리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토록 주와 함께 천국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9절 보시면,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 우리 주님이 오시지 아니하면, 이 땅에 크리스찬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역사상 가장

큰 사기를 당해서 그런 것이죠. 사람이 사기를 당하면, 그보다 더 실망스럽고, 분한 것이 없죠, 시간이 오래 지나도 지워지지 않아 몸까지 축이 납니다.

만약,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이 사기는 가장 오랬동안 속인 것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을 속인 사건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번도 예언에 대해서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요. 우리 주님이 예언대로 오셨고, 예언대로, 다시 살아 나셨고, 예언대로 다시 오실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주님은 왜 반드시 다시 오시는지, 무엇 때문에 오시는지 본문에서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는,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의를 행하는 자와,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전에도 말씀드렸듯이 2천년전에 거짓이 난무하고,

공의가 사라진 세상에 예수님께서 초림하셨듯이, 다시 오실 오실 주님도,

이 땅에 공의가 사라지고, 주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의를 행하고, 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에는 지구의 삶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지옥으로 가든지 확연히 갈라지게 되있습니다. 카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은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한 곳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의를 행하지 않고, 주를 기억지 않던 사람들은, 그날은 견딜 수 없는

부끄러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바위야 나를 나를 가리워라, 산들아 나를

덮으라 ! 고 외치는 고통과 형극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 예수님은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견디는 것이 쉬울 것이다' 고 말씀하시죠. 유황불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주님이 다시 오셔서 내리실 재앙에 비하면 '새발의 피' 라는 것입니다.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사람들 불로 소금치듯 한다' 고 말씀합니다. 고통과 잔혹함만이 있고, 그곳에서 빠져 나올 희망도 없는 곳입니다.

살아 있지만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 곳이죠.

 

아프리카에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이 지옥에 관하여 설교를 하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그림을 봤어야지 본 것이 없으니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 한국에서 가지고 들어간 지옥 그림을 보여주니까, 그때서야 이해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선교사님이 잠시 나갔다 들오오니까, 지옥그림을 가운데

놓고 춤을 추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왜 그러는가 하고 물었더니, 한 원주민이 "선교사님, 이것보세요.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백인이잖아요. 흑인은 하나도 없어요" 하더랍니다.

 

여러분 아세요. 요즘 한국인들 때문에 지옥을 보수공사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워낙, 찜질방에 익숙해서 웬만큼 뜨거워서는 끔쩍도 안한답니다. 그래서 지옥의 온도를 높이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 증인이라는 이단 종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보다 지옥에 관하여 더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이 있으면요. 지옥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곳에 가지 않는 방법은 의를 행하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 주님은 왜 오시는지,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거짓이 난무하고, 공의가 사라지면, 제일 많이 고통 당하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다하겠죠. 그 중에서도 주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애쓰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가운데, 믿음을 지켜며 사는 사람들의 바램이 있다면 무었이겠습니까? 주님 다시오시는 것이죠.

 

그래서 2절은 이 말입니다. '주님이 얼른 오셔서, 저 주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저들이 주 앞에서 떨게 하오소서' 이말입니다.

그 예수님은 언젠가 반드시 오셔서 이렇게 주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구의 사람들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계시록 1:7절에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여러분 정말 우리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날 하루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준비를 합니까? 해산을 앞둔 임산부와 그의 남편은 태어날 아기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합니까? 우리 성도중에 Ann 이 아기를 3주전인가요? 그때 낳았습니다. 이름이 Noel입니다. 이 노엘을 만날 준비를 하기 위해 엄마아빠가 얼마나 준비하는지, 이름을 지어놓고, 아이침대, 유모차, 입을 옷등 등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은 신랑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그의 신부입니다. 신부는 신랑을 어떤 모습으로 기다립니까? 순결한 모습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성도는, 신랑에게 부끄러운 짓을 했기에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세번째로, 주님이 왜오십니까? 믿는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7절을 보시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주님이 다실 오실 그때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고, 구원 받기 위해 주를 붙드는 가도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완전히 메말라 버린 것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죽으면 그만이지 하는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0-21절 보시면, 베드로가 마지막 때에 관하여 설교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20절 보시면,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해가 빛을 잃게 되고, 달이 피 빛으로 변한다는 것이죠. 그런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는

'앵무새 처럼' 주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 얻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7:21절의 말씀처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자들은 주님을 믿는 자들인데, 그중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몸부림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제 투산에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제 새벽예배 드리고, 볼일 보고, Ina 를 지나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한참을 돌아 집에 오는데, 다른 길도 다 막혀서 무슨 일이 났는지 알았습니다. 집에 오니, 딸아이가 shooting 있어서 congress가 총에 맞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는 성도에게서 '뉴스 들었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드렸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불청객입니다. 우리에게 사전예고도 없이 막무가내로 쳐들어옵니다. 세상이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저는 누가 죽었다고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그 사람 예수 믿었는지?' 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믿었다면, 어떻게 믿었는지 물어보죠. 어떻게 믿었는지.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앵무새 처럼' 예수 믿었는지? 중국집에서 음식 주문하면 금방 가져다 주는 짜장면 처럼, '믿습니다' 하면 내 앞에 구원이 뚝 떨어지는 것 처럼 믿었는지 알고 싶어서 묻는 것입니다.

 

뛰어난 영국의 성경 주석가 캠벨 몰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밤 내일이 마지막 날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이 켐벨 몰간이 한번은 어느 교회에 초청을 받아 주의 재림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남자가 불손한 태도로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와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맨 앞자리로 나와 앉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 사람은 켐벨 목사님에게 다가와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인사에 켐벨 목사는 이렇게 묻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믿습니까?" 그러자 "그러믄요." 하며 그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몰간 목사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재림이 당신을 붙들고 있습니까?" 이 말에 어리둥절 해집니다. "대체 무슨 뜻입니까?" 묻는 그에게 몰간 목사님은 "주님께서 다시오신다는 진리가 선생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느냐" 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주님을 기다립니까? 주님 오신다는 이 진리가, 우리를 변화 시키며,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주며,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넉넉한 진리이기에 우리는 그 재림의 신앙을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꿈의 성도님들은 이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