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12월15일 수요찬양설교: 선택의 기로에서 - 막 15:1-15

Peartree 2012. 12. 24. 13:32

선택의 기로에서

마가복음 15:1-15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이 만들어 지는 것이죠. 여러분은 오늘 교회에 나오면서도, 여러가지 선택을

하셨을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갈까, 아니면 그냥 갈까, 어떤 옷을 입고 갈 것인가, 추운데 점퍼를 입을까 말까, 투산의 도로는 바둑판 같은데, 어느 길로

갈까, 저는 교회까지 드라이브 하면서도 선택을 합니다. Ina Rd로 해서 Oracle Rd, 로 올까, 아니면 Orange Grove로 해서 Oracle Rd, 로 올까, 그래서 교회 올때마다, 그때 그때 Route 가 바뀝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선택들은 우리의

인생가운데 그렇게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가운데 큰 영향력을 주는 선택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의 선택, 직장의 선택, 비즈니스 업종의 선택, 또는 배우자의 선택문제 같은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의 일생뿐 아니라, 우리 영원을 좌우하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혹시나, 지금까지 선택에 많은 실패가

있었더라도, 이 영혼에 대한 선택만은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선택만은 반드시, 기필코, 옳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재판관으로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빌라도입니다. 이 사람의 지위는 유대인의 총독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오로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죠.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재판할 수는 있었지만 사형권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시의 빌라도는 세상적으로 보면, 왕 다음으로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올라간 사람입니다. 인생의 많은 선택 가운데, 꽤

괜찮은 선택을 하여서 젊은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까지 진급한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이 사람이 지금까지 인생에서 선택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정말 정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12절 보시면,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지금까지는 자신의 인생의 결정을 본인 스스로 결정했겠죠. 그러나 자신의 영원을 결정할 수 있는 그 중요한 순간에, 이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이성을 잃은 군중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그래서 결국 빌라도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죠. 예수님의 편에 서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변호하지도 못하고,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 가운데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는 대목에 우리주님을 죽인 인물로 2000년동안 가룟유다 이름 다음 저주받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빌라도의 선택은 어떤 선택이었는지 살펴보며, 앞으로 우리가 주를 섬기는데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빌라도의 선택은 군중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본문 15절을 읽겠습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의 선택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성을 잃은 군중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빌라도의 심리적 상태는 예수님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14절에도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이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사형을 내릴만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군중들로부터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다른 복음서에도 여러 번 나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확신과는 정 반대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세상이 이렇게 말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세상이 이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그렇게 행동하고, 세상과 같은 방향의 선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서 12장 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초대교회에 당시에 최고의 설교자라 부려지는,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가 당시의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렸을 때, 당시의 사회는 아주 들끓면서 그 결정에 반대하는 보고를 크리소스톰에게 올렸습니다. 그 때 크리소스톰은 이런 유명한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온 세상이 반대한다고? 그러면 우리가 온 세상을 반대해야지." 온 세상이 반대해도 우리 꿈의 교회 성도만큼은 진리에 서시길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가지 마시고, 여러분이 믿는 것과, 여러분이 결단이 선한 것이라면, 확신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도 안되고, 모방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사오정 시리즈 두개 정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사오정은 어떤 캐릭터라고요? 동문서답하는 캐릭터, 엉뚱한 사람.

사오정이 취직시험 할 때마다 계속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오공은 취직시험 할 때마다 붙어요. 그래서 사오정이 어떻게 하면 Job interview 를 잘할

수 있는지 손오공에게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랬더니 손오공이 내가 면접할 때 잘 보고 고대로 따라서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따라가서 손오공이 어떻게 Job interview 를 하는지 유심히 봅니다.

시험관이 손오공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 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누구 요? 전에는 차범근이었으나 지금은 박지성입니다. 사오정은 열심히 뒤에서 외웁니다. 전에는 차범근이었으나 지금은 박지성.

시험관이 고개를 끄떡끄떡하더니 또 둘째 질문을 던집니다. 박찬호 선수는

몇 번이오? 손오공이 씩 웃으면서 61. 그러니까 시험관이 고개를 끄떡끄떡

거렸습니다. 61 두 번째 대답은 61. 열심히 외웠습니다. 카피를 했습니다.

세 번째로 또 시험관이 손오공에게 질문을 던지기를 당신은 UFO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손오공 이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하기를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손오공 이 패스하는 모습을 보고 사오정이 보았습니다. 시험을 끝낸 손오공 이 봤지? 나처럼 하면 돼. 내가

하 는 그대로 카피하면 돼.

이번에 사오정 가서 면접을 하게 되었어요 시험관이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뭐요? 전에는 차범근이었으나 지금은 박지성. 당신의 나이는 몇 살이요? 61.

이말에 심사관이 귀가 사오정이 귀가 안좋은 것 같아, 당신 귀는 잘 들립니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남을 카피하는 일, 잘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말해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1. 두번째는, 빌라도의 선택은 출세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27장 24절 보시면,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빌라도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살리려고 애를 많이 쓰긴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서 민란 (폭동이나 데모)이 날까 무서워, 마음을 바꿔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폭동이 나면 유대인의 총독으로 당국 로마로부터 문책을 다하게 되죠, 그러면 출세에 지장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빌라도는 출세를 위해서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1세기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이 빌라도에 대해서 그의 역사책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 이 사람은 로마정부에서 유대로 파견된 5섯번재 총독이다. 그는 잔인했고, 지나치게 로마정부에 아부했고, 로마 황제 숭배를 강요한 인물이다. 그는 출세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보통 총독의 임기가 5년인데, 그는 유대 지방을 10년을 다스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팔면서까지 출세를 위해 달렸던 빌라도, 그런 그의 말년은 자살로 끝나게 됩니다. 당시에 사마리아 지방에 사마리아 학살 사건이 커지니까, 로마정부에서 빌라도를 소환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제 자기의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오로지 출세만 향해서 산 사람은 그 출세가 멈추게 되면 인생을 비관하게

되는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최고의 스타가 되도, 출세가

목표인 사람은,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목말라 하고, 늘 부족함을

느끼며 살죠.

한국의 재벌 총수가 자살하고, 최고의 스타가 자살하는 것이 이 출세를 해야

된다. 라는 강박관념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꿈의 성도들은 행복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없어 행복하죠. 스타가 아니라 행복하죠.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보려고 모여 들지만, 우리 주님을 그런 사람들 보다 저와 여러분

을 보시는 것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1. 세번째는, 빌라도의 선택은 양심을 저버린 선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14, 15 16절 찾아보겠습니다. 14절 하반절 보시면,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절 하반절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절 "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죄가 없으니 때리고 그냥 풀어주겠다는 빌라도의 속마음이었습니다. 세번씩이나 예수님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로 판결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확신과 정반대의 결단을 내리고 맙니다. 자기의 양심을 거스리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철학자 도예도프스키는 양심을 이렇게 정의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소리치고 있는 신의 목소리' 빌라도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고 내면의 귀를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의 같은 기사를 보시면, 빌라도가 이 결정 직후에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습니다. 손을 씻는 빌라도의 심리 뭘까요.

나는 직접적인 책임은 없어 나는 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이 뜻입니다.

어떤 화가는 빌라도의 그림을 그리면서 지옥에서 대야를 갖다 놓고 손을 씻고

있는 빌라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지금도 손을 씻고 있을지 몰라요. 나는 예수를 죽이고 싶지 않았어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무죄요 나도 무죄요. 이렇게 우길지 모릅니다.

 

그래서 양심을 속이는 것은 큰 죄입니다. 가룟유다가 양심을 속이다가 지옥

갔습니다.

 

일제 말기에 활동했던, 고독한 크리스천 지성인 시인 윤동주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 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 하겠다 세상이 뭐라 그래도"

 

젊었을 때는 이 시의 깊은 의미를 몰랐습니다. 알고보니 젊은 사람들이 연애

편지 쓸 때인용하는 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윤동주 시인은 일제 시대 때

크리스천들이 양심을 버리고, 일본 천황에게 신사참배 하는 것에 대한 반대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신앙인의 양심을 찾자. 라는 의미로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세상이 뭐라 그래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양심을 따라 내가 걸어 가야 할 내 인생의 길을 나는 묵묵히 걸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의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이 양심 때문에 나에게 어떤 손해가 온다 할지라도, 양심 때문에 출세에

지장이 온다 할지라도, 신앙인의 올바른 길, 그 길은 저와 여러분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 잊지 마지길 바랍니다.

 

1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라는 학생이 15명의 교직원과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식 머리에 총구를 대고 "Do you believe in

God"라고 질문을 하고는, "믿지 않는다" 라고 대답하면 때로는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마에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캐시 버넬, 이 소녀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총구 앞에서 차분에게 말합니다.

"I believe in God" 범인은 더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칩니다.

"There is no God" 그때 캐시는 침착하게 한번 더 이렇게 대답합니다.

"Yes, There is God, And you need to follow His Path" 그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플로리다에서는 2500명이 "나는 어떤

상황속에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제목의

집회가 열리면서 도시마다 크리스천들의 양심을 깨우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2000년전 빌라도가 이런 이 소녀와 같은 고백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캐시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양심의 고백을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